[스피드 4초] 사격왕, 연쇄경찰살인마 장국영 (鎗王,2000)

2019. 7. 25. 17:42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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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04.1.12.) 작년(03년) 4월, 홍콩의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中環文華東方酒店) 24층에서 차갑고 딱딱한 아스팔트 도로 위로 뛰어내려 삶을 마감한 장국영이 죽기 3년 전에 찍은 <스피드 4초>(창왕)란 작품은 그를 아끼는 팬들에겐 정말 끔찍한 영화라 아니할 수 없다. 스스로의 고뇌를 견디다 못해 극한적 행동에 나서는 극중 주인공의 연기는 <이도공간>에서의 장국영보다 더 가슴이 아프다.

영화의 원제목은 <창왕>이며 영어 제목은 ‘더블 탭’, 혹은 ‘CONFUSION OF MIND’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스피드 4초>라는 타이틀로 비디오로 출시되긴 하였다. 이 영화의 제작자 이동승과 감독 나지량은 장국영과 함께 이미 <색정남녀>를 만든 적이 있다. (그리고 장국영의 유작 <이도공간>도 함께 작업했다.)

‘더블 탭’이란 사격대회에서 일반인은 거의 인지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연속 두 발을 쏘아 표적지를 관통시키는 최고난도 사격기술이란다. 이 영화에서 장국영은 바로 이 더블 탭의 명사수로 출연한다.

릭(장국영)은 홍콩 경찰이다. 직접 총기를 개조할 만큼 ‘총’에 대한 애정이 두터운 사람이다. 하지만 아주 뛰어난 사격 실력을 가진 그이지만 언제나 총과 사격에 관해서는 엄격하고 조심스럽다. 그에게는 사격에 대해서만은 묘한 신념이 있었다. 총기란 사람을 향하여서는 절대 안 된다는 절대적 기준이 있었다. 그런 릭을 좋아하는 콜린(황탁영). 릭의 사격실력에 견줄만한 인물은 동료경찰 아묘(방중신)뿐이다. 둘은 서로의 실력을 잘 알고 있으며, 서로의 총기에 대해 감탄하고 있다.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있을 수 없다’라고 했던가. 둘은 사격대회(IPSC;International Practical Shooting Conferation)에서 자웅을 겨루기로 한다. 막상막하의 뛰어난 사격솜씨를 선보이던 두 사람 앞에 뜻밖의 장애물이 나타난다. 주식투자로 파산한 동료경찰 하나가 총기를 들고 사격대회장에 난입하여 마구 총을 쏘아대는 것이다. 총기관리가 엄격한 사격대회장에서는 한창 릭과 아묘의 결승전이 열리고 있었기에 이를 제지할 사람은 비장의 총기를 손에 쥐고 있는 ‘릭’ 아니면 ‘아묘’ 뿐이었다. 하지만 이 극한 상황에서 아묘는 감히 총을 쏠 수가 없었다. 뜻밖에 릭이 상대의 머리에 단 한발만을 쏘아 절명시킨다. 자신이 평소의 신념과는 달리 살인을 저질렀다는 죄책감에 깊은 고뇌에 빠진다. 그런데 심리 치료를 받고 나오면서 릭은 콜린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사실은…. 사람을 죽였을 때 묘한 쾌감을 느꼈어.”라고. 그리고 3년의 세월이 흐른다. 홍콩에서 경찰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발생한다. 재판정에서 중대범죄에 대한 증언을 약속한 V.I.P.가 홍콩 중안조의 철벽같은 보호 속에서 누군가의 총에 맞은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경호작전에 참가했던 G4요원 다섯 명이 이 정체불명의 살인자에게 순식간에 사살당한 것이었다. 이런 놀라운 사격술을 가진 사람은 홍콩에 몇 안 된다. 결국 릭이 용의선상에 오른다. 하지만 릭에게서 아무런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다. 대신, 경찰은 콜린을 불법 무기소지죄로 잡아들인다. 이에 분노한 릭은 경찰을 상대로 일인전쟁에 뛰어든다. 내일 정오까지 콜린을 풀어 주지 않으면 한 시간마다 경찰 한 명을 저격하겠노라고 공언하면서. 릭의 뛰어난 사격 실력에 중무장한 경찰들이 하나씩 쓰러진다. 결국, 극장에서 릭과 아묘는 처절한 총격전을 펼친다.

장국영이 이런 피도 눈물도 없는 악한 역을 맡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장국영이 <스피드 4초>에서 맡은 역할은 <람보>(1편)에서 실베스터 스탤론이 맡은 역할과 비슷하다. 엄청난 살상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권력기관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자 혼자서 분연히 일어서서 ‘자신만의’ 정의의 전쟁을 펼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액션과 심리드라마가 적절히 배합된 영화이다. 냉정한 장국영은 자신의 야성(살인의 유혹)을 숨기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뜻밖의 사건으로 살인을 하게 되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끝없이 고뇌하고 갈등한다.

원래 이 영화는 장민광(張民光)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극중에서 총기 전문가로 등장하는 장민광은 실제 홍콩 국가대표 사격선수 출신이다. 그의 전력을 살려 그는 몇몇 영화에서 총기감정가로, 배우로, 감독으로 활약했다. 그런 그가 제작자 이동승에게 들러준 이야기는 이랬다. ‘아주 뛰어난 사격선수가 있었는데 표적지는 백발백중으로 맞추지만 실제 사람을 쏠 수는 있을까? ‘ 이게 <스피드 4초>에서 장국영에게 맡겨진 과제인 것이다. 가만히 멈춰 있는 표적지, 생명이 없는 목표물에 대한 전심전력의 사격이 과연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으로 그 표적물이 대체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릭과 아묘가 선뜻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 것은 외형적인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내면의 본질적 갈등인 것이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영어제목은 ‘Confusion of Mind (마음의 혼란)’이다.

장국영이 어쩔 수 없어 사람을 죽였다지만 심리치료사에게 숨기고 연인에게 뱉은 내면의 소리는 “살인은 짜릿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킬러로 변신한 장국영은 거리낌 없이 옛 동료들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총으로 제거해 버린다. 물론, 장국영의 고뇌는 처절하다. 그가 제어할 수 없는 자신의 살의(殺意)에 절망하여 총구를 자신의 관자놀이에 대고 흐느낄 때는 <이도공간>에서 건물 끝에서 지상으로 뛰어내려 죽으려는 모습과 교차될 수밖에 없다. 장국영의 깊은 슬픔은 자신의 능력과 자신의 의지, 자신의 본심이 겉으로 드러난 평온함을 뒤흔든다는 것이다. (박재환 2004.1.12.)

[스피드 4초|鎗王] 감독:나지량 출연: 장국영,방중신,황탁령,진법용,곡덕소 (Double Tap,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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