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이메일] 아버지가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홍재희 감독 My Father's Emails, 2012)

2017. 8. 19. 21:49다큐멘터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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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17.1.21)  오늘(21일) 밤 12시, KBS 1TV에서 방송되는 <독립영화관> 시간에는 홍재희 감독의 지극히 사적이면서, 굉장히 공적인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다큐멘터리 한 편이 방송된다. 지난 2014년 극장에서 잠깐 개봉된, 그리고 많은 영화제에서 상영되어 호평 받았던 <아버지의 이메일>이다. <아버지의 이메일>은 정치적 논란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본다면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만큼이나 한국의 비극적 현대사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다큐멘터리 감독 홍재희는 아버지 홍성섭(1934~2008)이 세상을 떠난 뒤 늙은 나이에 컴퓨터를 배워 딸에게 보낸 이메일 마흔 세 통을 본다. 아버지의 한 많은 인생, 가족에 대한 부끄러운 고백이 가득한 이야기이다. 딸 홍재희는 아버지의 이메일을 토대로 가족과 친지와 주위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홍성섭과 그의 가족(자신도 포함된)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황해도 출신의 아버지는 인민군 치하에서 고생을 하다, 1948년 무렵에 삼팔선을 넘어온다. 그때 나이 겨우 14살. 그리고, 남쪽에서의 힘든 삶이 이어진다. 결혼과 월남전, 오일쇼크와 사우디 건설 붐, 그리고 아파트재개발, 놀랍게도 88서울올림픽 자원봉사 이야기도 있다. 아마도 이력서를 쓴다면 한 줄로 남은 그의 궤적에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목숨 걸고 남으로 넘어와 고생 끝에 돈을 모으고, 젊은 시절에 해외로 나간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고. 아마도 나이 들어서는 전형적인 반공단체 꼰대가 되어버린 모양이구나.”라고.

 

그런데, 홍재희 감독은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아버지의 분노와 가족의 고통을 털어놓는다. 육이오 때 보도연맹에 연루된 처가 쪽 문제로 발목이 잡힌 이야기. 연좌제는 아버지의 남쪽에서의 삶을 옥죈다. 게다가 놀랍게도 사우디에서의 개인적인 경험 – 전라도 사람의 해코지 때문이라는 피해의식 –까지 겹쳐 완벽하게 빨갱이를 증오하고, 전라도를 혐오하는 꼰대가 되어간다. 그의 대부분의 삶은 술독에 빠져 허우적댄다. 술만 마시면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그런 아버지와 따뜻한 교류가 없었던 자식들. 홍재희 감독은 그러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생존해 있는 어머니와, 그런 아버지가 싫어 미국으로 일찌감치 떠나버린 언니, 그리고 뒤늦게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남동생의 이야기를 통해 가슴이 먹먹해지도록 한 남자의 사정을 소개한다.

 

열네 살 어린 나이에 목숨 걸고 삼팔선을 넘을 만큼 빨갱이가 싫었던 그 남자, 그런데 아내 때문에 빨갱이가족(연좌제)의 족쇄를 찬 남자. 개인의 경험과 고통은 고스란히 주위 사람들에게 지독한 트라우마를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을 남긴다. “아버지가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는 말은 술에 취해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그런 아버지를 회상하며 남동생이 한 말이다.

 

이 작품은 홍성섭 씨의 한 많은 삶 고비고비가 가슴 아프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그가 죽기 몇 달 전에 있었던 일이다. 함부로 삶을 소비하고, 세상을 증오하던 아버지는 죽기 몇 달 전 하수구에 빠진 틀니를 찾아 하수구 속으로 들어간 적이 있단다. 어두운 땅 밑에서 상처투성이에 온 몸이 오물을 뒤집어 섰겠지만 틀니를 찾는다. 기뻐서 웃었단다. 자신의 70여 인생에 남은 기쁨은 무엇이었을까. 아내도, 자식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번듯한 집도 없이. 남은 틀니가 무엇이기에. 아버지는 이메일을 통해 뒤늦게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가슴이 시리도록 아프고 의미 없다. 그의 삶이 황폐화된 것은 술일까, 연좌제일까, 빨갱이일까, 그를 해코지한 사람들일까. 참 고달픈 대한민국의 어르신이셨다. (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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