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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리뷰

[세이 예스] 생존 게임 (김성홍 감독 Say Yes , 2001)

by 내이름은★박재환 2013.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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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충무로의 중견감독이 된 배창호 감독이 미스테리 스릴러물을 만든 적이 있다. <적도의 꽃>이란 1983년도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안성기가 맡은 역할은 'M'이라는 정체불명의 사나이로, 맞은 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선영(장미희 분)에게 연정을 느끼고 망원경으로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며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M이 지켜본 바에 따르면 선영은 남자들에게 농락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M은 그 남자들을 한 사람씩 파멸시킨다. 하지만 선영은 결코 M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않는다. 선영은 가스 자살로 삶을 마감하고 만다. 김성홍 감독의 신작 스릴러물 <세이 예쓰>에도 'M'이 등장한다. 이제는 헐리우드 영화까지 찍을 정도로 성장한 박중훈이 미스테리한 인물 M을 맡아 그동안 우리 영화에서 보기 드물었던 사이코 범죄자 역할을 섬뜩하게 해낸다.

 

너무 행복해 보이면 불행해지는 법

 

영화는 너무나 행복해보여 다른 사람이 시샘할 정도의 신혼커플 정현(김주혁)과 윤희(추상미)가 갖게 되는 갑작스런 여행길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살인극이다. 이제 막 데뷔작 소설을 출간하게 된 정현은 그동안 아내 윤희에게 생활의 부담을 전가시켰던 미안한 마음을 갚을 겸, 동해안으로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첫 휴게소에서 윤희는 기분 나쁘게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M을 보고는 휴게소를 급히 빠져나온다. 하지만, 이들 커플의 차가 M을 들이받으면서 이야기는 이들 세 사람의 기묘한 여행길로 변해버린다. 속초에서부터 이들은 맞부딪히고 정현은 M을 폭행하고 만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M이 교묘하게 연출해낸 것. M은 갈수록 수위가 높은 요구를 하기 시작하고 정현과 윤희는 겁에 질려 한밤에 몰래 빠져 달아나지만 이내 M은 이들을 뒤쫓아 온다. 경찰마저 M편을 들더니, M은 어느새 살인마로 변한다. 공포와 분노의 커플은 이 살인마의 손아귀,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유 없는 살인

 

끈질기게 두 사람을 뒤쫓던 M은 시골의 창고에 이 둘은 묶어놓고는 날카로운 칼을 꺼내들고는 정현을 협박한다. "너희 둘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싫어. 널 죽이진 않겠어. 하지만, 니가 살려면 네 여자를 죽여 달라고 해."라고. 이러한 살인게임은 전형적인 사이코의 수법이다. 아마도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기분 나쁠 정도로 끔찍했던 <퍼니 게임>을 본 관객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극단적 상황에서 느끼게 되는 공포를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정현은 자신의 손가락이 다 부러지고 이성적 판단이 마비될 정도로 맞으면서도 "아내를 죽여달라"는 소리를 할 수가 없다. 대신, 그 고통의 장면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윤희는 차라리 자신을 죽여 달라고 소리친다.

 

김성홍 감독은 <손톱><올가미>를 통해 점증하는 공포의 묘미를 선보였었다. 흔해빠진 헐리우드 호러물과는 달리 그의 영화는 정말 가슴 졸이며 보아야 되는 고통이 수반된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초반부 이들 커플이 한없이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련의 유치한 행동들을 관객들은 감수한다. 그리고, 으레 호러물에서 보게 되는 여자 캐릭터의 순진함과 조심성 결여는 파국으로 이끌 비극을 잉태한다. 그리고 살인마에 비해 왜소해 보이거나 문약한 남자-보통, 남편, 남자애인-들은 이처럼 갑작스레 자신의 머리 위에 떨어진 폭력의 공포를 이성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감독은 이러한 잘 짜인 공포의 요소들에 하나씩 무게감을 싣는다. 아내의 실종을 신고하러 파출소에 들른 그는 이내 수갑에 채이고, 그가 믿을 수 밖에 없는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관은 무참하게도 살해되고 만다. 피해자는 가해자로 오인 받게 되고, 아내는 사라지고, 남편은 이성적 판단을 하기 어려워진다.

 

배우 박중훈은 한동안 너무 많은 코믹물에 등장하여 식상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충무로에서 돌아다니던 시나리오의 대부분이 그를 주인공으로 상정한 것이고, 그 영화의 대부분이 그의 코믹함을 강조한 것들이었다. 인간관계에 의해 마지못해 출연하였던 박중훈은 한동안 흥행보증수표에서 희극 전문배우로 낙인찍힐 뻔하였다. 하지만,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통해 제 2의 전성기를 가지게 되었다. 비록 전작 <불후의 명작>은 영화판의 짝사랑을 옮겨놓은 범작에 머물렸지만 신작 <세이 예쓰>에 거는 기대는 남달랐을 법하다. 실제로 박중훈은 이 영화에서 그동안 그에게 고정되었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인정사정없는 사이코 범죄자역에 충실하였다. 단지 행복해보이기 때문에 그들을 파멸시키고 말겠다는 동기를 가진 살인마의 행동양상은 전혀 앞일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불가의성을 지녀야한다. 박중훈은 그러한 정상과 비정상을 오가는 살인마역할을 무난히 해낸다. 하지만 가끔 가다가 돌변하여 웃음을 지을때 관객들은 웃고 만다. 상황의 돌변에서 섬뜩함을 느껴야하지만 그런 중요한 포인트에서 왕년의 코미디 배우였음을 상기시키고만 것이다. 아마도, 박중훈이 이미지 변신을 하려면 당분간 악역을 몇 차례 더 맡아 그의 풍성한 얼굴 표현력을 표백시켜야할 듯하다.

 

가끔가다 일반의 소시민들이 사회의 공적인 보호에서 낙오되는 경우가 있다.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초기작 <듀얼>을 거론한다. 살인마를 스스로 처단해야만 자신이 살아남는 끔찍한 경우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마지막은 우스개가 아니라, 호러영화의 또하나의 특징인 '공포의 변조와 전염'인 것이다. 살아남은 자는 교훈을 얻는다. 끔찍한 교훈을. (박재환 200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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