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과 쌍벽을 이루며 우주 대영웅들을 벽돌 찍듯이 만들어내는 DC코믹스의 슈퍼히어로에는 배트맨, 슈퍼맨, 원더우먼 등이 있다. 일찌감치 만화책을 찢고 TV로, 영화로 만들어졌다. 작년 개봉된 <슈퍼맨>에서는 데이비드 코런스웻이라는 배우가 슈퍼맨을 연기했었다. 어, 그런데 여동생(조카)이 있었네? ‘슈퍼우먼’이 아니라 ‘슈퍼걸’이란다. 아주 예전에 헬렌 슬레이터가 연기한 ‘슈퍼걸’을 이번에는 밀리 앨콕이 연기한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시즌1)에서 라에니라 타르가르옌(아역)을 연기했던 배우이다.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로 슈퍼히어로의 새 시대를 연 제임스 건 감독이 DC스튜디오로 넘어와서 내놓은 ‘데이비드 코런스웻’의 <슈퍼맨> 마지막에 ‘슈퍼걸’이 깜짝 등장했었다. 완전히 만취한 영웅의 등장이다. 이 철없고, 앳된 여동생이 지구평화를 지킨다고? 꽃병이거나, 병풍이거나, 존 왓슨의 운명인가.영화는 <슈퍼맨>의 그 장면에서 이어진다. 지구에서의 삶, 우주대영웅 ‘슈퍼맨’의 사촌이라는 타이틀이 지긋지긋한지, 아니면 다른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지 카라 조엘은 지구를 떠나 우주를 떠돈다. 오늘도 희한한 행성의 허름한 술집에서 술독에 빠져 허우적댄다. 카라의 그런 공허한 삶에 루시(이브 리들리)라는 열세 살 꼬마애가 끼어든다. 우주해적 크렘(마티아스 쇼에나르츠)에게 부모를 잃은 루시는 칼 한 자루를 들고 복수를 도와줄 사람을 찾아다니다 카라를 만나게 된 것이다. ‘카라’는 사촌오빠 슈퍼맨과는 달리 ‘지구의 평화’도 ‘우주의 정의’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런데 단 하나, 자신의 유일한 동반자인 반려견 크립토가 크렘의 독화살에 맞아 죽게 되자 이제 개인적 복수와 우주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루시와 함께 장대한 우주대장정을 시작한다.
<슈퍼맨>영화를 띄엄띄엄 본 영화팬이라도 슈퍼맨(칼 엘)이 저 먼 우주 크립톤 출신이고, 그 행성이 멸망하기 전 부모에 의해 우주캡슐로 지구에 보내진 아이란 것은 잘 안다. 슈퍼걸도 대략 그 노선을 따른다. 슈퍼맨과 다른 점이라면 크립톤 행성이 하루에 멸망한 것이 아니라 붕괴된 후 오랜 세월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했다는 것. 카라는 그런 붕괴된 폐허 속에서 힘든 삶을 산다. (마치 팔레스타인의 난민 같은) 그리고 크립톤이 결국 폭발하던 날 카라는 크립토와 함께 지구로 보내졌던 것이다. 아주 어린 시절, 지구에 도착하여 지구인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슈퍼맨은 ‘인류애의 화신’으로 성장했고, 태어날 때부터 고통과 고난이었던 카라는 알콜에 의존하게 되는 ‘트라우마의 화신’이 되었던 것이다. ‘슈퍼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히나 ‘슈퍼맨’의 정서적 안정감에 대비되는 카라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런 영웅의 출발점을 알아야 한다. 엄청난 트라우마와 상실감,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슈퍼걸>은 아마 <배트맨>의 팀 버튼이 감독을 했으면 다른 빛깔의 영웅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밀리 앨콕의 ‘슈퍼걸’은 (오래 전)크리스토퍼 리브의 ‘슈퍼맨’만큼이나 인상적이다. 평균적인 미국 청소년 같은 반항심과 청춘의 혼돈이 얼굴에서 묻어나온다. (밀리 앨콕은 호주 출신이다!) 카라가 가진 우주적 규모의 복잡한 사연과 함께 ‘가족복수라는 우주적 정의’ 실현을 위해 철없이 돌진하는 루시(리브 리들리)의 동행도 흥미롭다. 루시의 사연은 몇 차례 영화화된 <진정한 용기>(진정한 용기)의 스토리라인을 따른다. 영화가 달려가는 지점이 과연 어디일까. 루시가 악당 크렘을 처단하는 것인지, 카라가 각성하여 우주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구적 용서와 우주적 화해가 대결말일지.
크렘과 로보(제이슨 모모아)가 개입하는 후반부는 <매드 맥스>식의 거친 액션 톤과 장르적 과시로 기운다. 결국 <슈퍼걸>은 완결된 히어로의 탄생담이라기보다, 방향성을 제시하는 과도기적 서사에 가깝다. 카라는 여전히 불안정하지만, 적어도 이전보다 지구적 감정에 한 발 다가선 존재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DC가 앞으로 구축하려는 세계관의 정서적 기초를 시험하는 작품이며, 밀리 앨콕의 슈퍼걸은 그 출발점으로서 충분한 인상을 남긴다.(박재환.2026)






[박재환] 개봉 전날, 2026년 6월 23일 오후2시, CGV용산아이파크몰 IMAX관 기자시사로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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