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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르인의 사막] 군인은 요새에서 죽는다 (발레리오 추를리니 감독, The Desert of the Tartars, 1976)


지난 주, 정말 아주 적은 극장에서 제한적으로 개봉된 영화가 한 편 있다. 1976년 이탈리아 영화 <타타르인의 사막>이란 작품이다. 감독은 발레리오 추를리니. 영화 제목도 감독 이름도 처음 들어볼 만큼 낯선 작품이다. 50년이나 된 작품이 ‘4K 디지털 리마스터링’이라는 아름다운 기술적 성과로 지금, 극장에서 스크린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은 디노 부차티라는 이탈리아 작가의 소설을 영화화 작품이다. 소설은 1940년에 출간된 작품이다. 1940년의 이탈리아를 상상해 보라. 무솔리니의 파시즘 광기가 이태리 반도를 휩쓸 때이다. 아마 소설과 영화를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 때 작가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는지를 생각해야할 것이다. 영화는 148분으로 꽤 길다. 이탈리아 말이 나오지만, 영화 속 배경은 이탈리아가 아니다. 유럽의 어느 나라, 왕이 통치하는 나라이다.

이야기는 1907년 시점에서 시작된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조반니 바티스타 드로고(자크 패랭)는 첫 부임지로 떠나고 있다. 엄마의 포옹, 연인의 키스, 그리고 절친의 배웅을 받으며 말을 타고 사흘을 달려간다. 유럽풍 중세도시를 벗어나 그가 도착한 곳은 황량한 사막이다. 저 멀리 요새가 보인다. 그는 국경에 위치한 바스티아니 요새에 신임장교로 파견된 것이다. 그를 맞이하는 제국장교들은 격식을 차려 그를 맞이한다. 드로고는 이곳에서 이제 국가와 민족, 국왕의 영광을 위해 군 복무에 임한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는 달리 바스티아니 요새는 그에게 엄청난 중압감을 안겨준다. 요새에서 내려다보는 사막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사령관과 선임 장교들이 들려주는 요새의 임무는 오리무중 그 자체이다. 오래 전 저 사막 너머 타타르족이 쳐들어왔었다고. 또 언제 침입할지 모를 그들을 막기 위해 이곳에 요새가 세워졌다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도 적의 침공은 없다. 장교들은 격식을 차려 상황을 지켜보고, 군사들은 훈련을 거듭한다. 소위가 중위가 되고, 중위가 대위가 되고, 신임 장교는 어느새 부사령관이 된다. 하지만 요새 밖 풍경은 변함이 없다. 아니 없다고 믿는다. 타타르인의 사막에서는 의심스러운 움직임이 포착되지만 사령관은 애써 무시하고, 하급 장교의 보고를 묵살한다. 시간 속에서 그들은 요새의 귀신이 되어가는 듯하다.

 영화는 표준화, 규격화, 관료화된 군대문화를 풍자하는 듯하지만 그들의 고립된 생활을 지켜보면 20여년의 시간 속에서 박제된 요새 군인들의 정신세계를 옭아매는 인간성을 다룬 것 같다. 그들은 마치 ‘고도’를 기다리듯, 저 너머 보이지 않는 적을 기다린다. “올 것이다, 올 것이다, 언젠가는 올 것이다”라며 준비하는 듯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오지 않을 것이다, 오지 않을 것이다,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고 믿으려고 한다. 유럽의 도시에서 사흘이면 이르는 거리에 있다는 가상의 요새인 바스티아니도, 너무 오래전 이야기라서 이젠 유령이 되어버린 것 같은 타타르인의 존재도, 생생한 청년군인 드로고도 그렇게 세월에 풍화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태리 감독의 이태리 영화지만 프랑스 배우, 스웨덴 배우, 이탈리아 배우 등 유럽의 톱스타들이 대거 등장하는 진정한 의미의 EU영화라고 봐도 될 것이다. 영화의 시각적 스타일은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엔니오 모리코네가 만들어내는 섬세한 피아노 선율조차 환상적이다.


영화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란 남부도시 밤(Bam)에 있는 요새도시 아르게 밤(Arg-e Bam)에서 촬영되었다. 이 지역은 2003년 12월 26일 지진으로 일대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지금 사진을 보니 성채는 재건된 것 같다. 원작소설 <타타르인의 사막>은 문학동네에서 번역출간되었다. 영화의 환상적 이야기가 궁금하면 이 책도 찾아볼 것 같다. 

참, 영화는 “1907년 8월 2일 월요일 아침”이라며 시작된다. 그런데, 이날은 금요일이란다. 참, 특이한 오류이다. (박재환 리뷰)

▶타타르인의 사막 (Il Deserto dei Tartari/The Desert of the Tartars) ▶감독: 발레리오 추를니니 ▶원작: 디노 부차티 ▶주연: 자크 페렝, 막스 폰 쉬도브, 비토리오 가스만, 줄리아노 젬마, 장루이 트랭티냥, 헬무트 그림, 필립 누아레, 레르난도 레이, 로랑 테르지에프, 프란시스코 사발  ▶음악: 엔니오 모리코네 ▶수입/배급 | 일미디어(IL Media) ▶개봉: 2025년 10월 29일/12세이상관람가/1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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