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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니아] 이들은 과연 지구를 지킬 수 있을까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Bugonia, 2025)

잠시 장준환 감독의 2003년 영화 <지구를 지켜라!>는 잊어보자. 개봉 당시 ‘7만 명’ 정도가 극장에서 봤다는 그 영화 말이다. 개봉 당시나 그 이후 이 영화는 호불호가 갈렸고 여러 차례 재조명과 재평가가 이어졌다. 그 와중에 마침내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되었다. 그리스 출신의 작가주의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와 할리우드의 반짝이는 선구안의 명배우 엠마 스톤을 통해. CJ도 못 지킨 지구와 흥행 전선을 이들이 지켜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미국 어느 동네. 사촌지간인 테디(제시 플레먼스)와 돈(에이단 델비스)은  양봉을 하고 있지만 사는 게 팍팍하다. 꿀벌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똑똑한 테디는 자폐증세가 있는 돈에게 이런 현상에 대해 사회과학적이며 범우주적인 설명을 해준다. 거대 바이오기업의 환경파괴로 인한 ‘군집붕괴현상’에는 일반인은 결코 캐치 못할 엄청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외계인들이 지구인에게 생체실험을 하고 있으며, 곧 그들의 모선이 지구를 침공할 것이란다. 테디는 이 지구적 위기에 맞서 바이오기업의 CEO인 미셀(엠마 스톤)을 납치한다. 테디는 미셀이 지구침공의 전초기지에 지구인의 탈을 선 채 암약 중인 안드로메다 항성의 외계인이라고 굳게 믿는다. 미치광이에 얼치기 지구방위전사에게 납치된 미셀은 이제 두 손, 두 발이 꽁꽁 묶인 채 이들을 상대로 논리적, 이성적, 과학적 설득과 일생일대의 명연기를 펼쳐야한다. 살기 위해, 혹은 지구를 지키기 위해!

우선 제목으로 쓰인 ‘부고니아’는 낯설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고, ‘황소’(boûs)와 ‘자손’(gonḗ)이 합쳐진 말이란다. 위키피디아 설명에 따르자며 고대부터 지중해 지역에서는 ‘벌’의 생성에 대해 어떤 믿음이 있었단다. 소의 사체에서 벌이 생겨난다는 믿음이다. 마치 똥에서 파리가 생기듯이. 물론, 비과학적인 생물학 탐구이다. 그리스 출신의 란티모스 감독은 ‘양봉업자’가 주인공인 영화에서 기가 막힌 영화제목을 탄생시킨 것이다.


<지구를 지켜라!>를 모른다면 이 영화는 더 신선하고 흥미진진할 것이다. 미치광이가 황당한 이유로 스마트한 기업가를 납치하여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의 불을 지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농약으로 ‘벌들이 사라지는’ 지구환경파괴와 화학제품의 범람으로 지구인의 몸이 망가지고 있다는 현실인식이 관객에게 공감의 공포를 안겨준다. 그리고 스마트한 CEO와는 달리 많이 어리숙한 현장 노동자의 비애가 동정심을 불러일으킨다. 거기에 가족의 비극까지 얽혀 이야기를 끝까지 몰입하게 만든다. 

 자발적 격리주의자 같이 목가적 집에 살고 있는 테디와 돈은 거사를 치르기 위해 분투한다. 어설픈 체력단련과 그 어떤 정신적 공격(외계인의 텔레파시)에 대비하여 화학적 거세까지 감행한다. 반면 미셀은 틈틈이 호신술도 익히고, 미디어도 활용할 줄 알며 ‘다양성을 옹호하는 진취적 기업인 이미지를 내뿜는다.  

 넷플릭스 <파워 오브 도그>와 <시빌 워:분열의 시대>에서 놀라운 캐릭터 연기를 보여준 제시 플레먼스는 이번 작품에서 엠마 스톤과 팽팽한 대결을 펼친다. 테디는 경험과 추론, 연구와 분석, 그리고 상상과 광란으로 세운 음모론으로 미셀을 안드로메다의 고위관료라고 몰아세우고, 미셀은 기업 CEO답게 조곤조곤 설득과 논리적 허점을 찾아 붕괴의 시점을 노린다. 그것은 사실 지구인의 운명을 건 헤게모니 쟁탈전이다. 처음에는 지역사회를 파멸로 모는 악덕 제약회사를 상대로 한 반자본주의 투쟁으로 보였던 납치극은 이제 ’화성침공‘에 맞서는 톰 크루즈의 액션으로 이어진다. 

결국, <부고니아>는 할리우드 버전으로 각색되었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은 <지구를 지켜라!>를 따라간다. 인상적인 차이라면 완전 빅뱅식 엔딩과 ’하나의 종(種)‘만 사라지게 하는 족집게 파멸이다.

참, 사촌 돈을 연기한 에디안 델비스는 실제 자폐증이 있는 배우란다. 이런 증세를 질병이나 장애가 아닌 차이일 뿐이라며 ‘신경다양성’이라고 부른다. 참고하시길. (Reviewed by 박재환)

▶부고니아 (영제:Bugonia)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각본: 윌 트레이시 ▶원작: 장준환 감독〈지구를 지켜라!〉 ▶출연: 엠마 스톤, 제시 플레먼스, 에이단 델비스, 알리시아 실버스톤, 애쉬 스미스, 스타브로스 할키아스 ▶촬영: 로비 라이언 ▶편집: 요르고스 마브롭사리디스 ▶음악: 저스킨 펜드릭스 ▶배급:CJ ENM MOVIE ▶개봉: 2025년 11월 5일/청소년관람불가/1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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