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네모네] 웨이킹 645 (정하용 감독, Anemone: A Fairy Tale for No Kids,2024)


한때 이런 말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라고. 매주 억만장자가 탄생하는 나라라고. 주택복권이든, 올림픽복권이든, 로또든 일단 당첨이 되면 당장 회사 그만두고 팔자가 필 것이라는 희망을 거는 소시민이 넘쳐난다. 실제 당첨자의 삶은 어떤지 몰라도. 여하튼 복권은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준다. 당첨만 돼 봐라. 여기, 복권 당첨 꿈을 야무지게 꾼 사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오늘(7일) 개봉되는 <아네모네>이다. 주인공은 정이랑이다. ‘SNL’에서 눈을 부라리던 그 배우이다. 이미 몇몇 작품에서 연기자의 자질을 보여주었던 정이랑의 첫 주연작품이다.

영화는 손녀가 할머니에게 그림책을 읽어달라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책 제목은 <배신의  꽃: 아네모네>란다. 표지를 본 할머니는 기분이 언짢다. “이건 애들이 보면 안 되는 책”이란다. 그러면서 책 내용처럼 영화가 펼쳐진다. 책은 서울에 사는 용자 아줌마의 이야기이다. 용자(정이랑)는 왕년에 격투기 선수 출신이었고, 지금은 밥만 축내는 백수 남편(박성진)과 어린 딸(신수아)과 함께 아웅다웅, 아득바득 살아간다. 남편은 도대체 일할 생각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생활력 강한 용자가 물불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한다. 그래도 궁핍한 생활은 나아질 것 같지가 않다. 용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매일매일 기도하며 ‘로또가 당첨되기’를 기도하는 것 뿐. 로또는 아무나 당첨되는 것이 아니란다. 1등 걸릴 확률은 ’마른 하늘에 벼락을 맞고, 또 맞고, 한 번 더 맞을 확률‘이란다. 그런데 신의 계시를 받은 듯, 잠을 자다가 숫자 6개를 점지 받는다. 백수 남편에게 꼭 그 번호로 로또를 사놓으라고 한다. 남편은 로또를 사놓을까? 이제 1등 당첨 로또를 둘러싼 부부의 전쟁, 커플의 전쟁, 서민의 전쟁, 배신의 전쟁이 시작된다. 아주 살벌하게. 

● 복권은 운명을 바꿔놓는다

영화 ’아네모네‘에서는 탈출구가 거의 보이지 않는 서민가정의 유일한 동아줄 ’로또‘를 둘러싼 인간욕망의 압축판이 펼쳐진다. 정이랑의 원맨(우먼)쇼로 점철된 작품이다. 무능한 남편 때문에 온갖 고생을 다하던 그녀는 ’사라진 1등 복권‘에 목숨을 건다. 영화는 짧은 전반부를 거치면서 급격하게 ’복권당첨의 진실‘에 접근한다. 과연 남편은 복권을 산 것인가. 복권은 당첨된 것인가. 그리고, 그 진실을 알기 위해서 인간은, 부부는 얼마나 독해지고, 악랄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영화는 단순히 ’SNL’스타일의 과장된 코믹터치 부부심리극 같더니, 점점 현실적인 재산쟁탈전이 시작된다. 정이랑에게는 더 무서운 친오빠 이유준이 있고, 남편에게는 상상도 못한 파트너가 웅크리고 있다. 이제 심리전이 대세였던 밀실추리극은 뒤죽박죽, 우왕좌왕, 헉헉 대는 추적극으로 승화한다. 과연 부부는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까. 

복권의 역사는 유구하다. 이 작품에서 정이랑이 점지 받은 복권 번호는 ’8,10,18,28,38,1‘번이었다. 예전에 미드 <로스트>에서는 ’4,8,15,16,23,42‘라는 숫자가 나왔다. 로또 당첨자들은 꾸준히, 아주 오랜 기간 같은 번호에 투자했다고 한다. 자기 손에서 날아간 로또에 대한 분노는 아마 평생 가슴에 한이 맺힐 것이다. 이 영화는 바로 그런 공허함까지 알뜰히 채운다. 

’아네모네‘는 정이랑을 필두로 덜 알려진 배우들이 열심히 현실연기를 하는 소품이다. 어쨌든 로또는 서민에겐 ’발표 직전‘까지는 희망과 꿈을 안겨주는 활력소임에 분명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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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모네 (Anemone: A Fairy Tale for No Kids) ▶감독: 정하용 ▶출연: 정이랑, 박성진, 신수아, 육미라, 박혜진, 이상훈, 박서율, 테리스 브라운, 이유준 ▶개봉일: 2024년 2월 7일 ▶상영시간: 74분
박재환 영화리뷰 kinoc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