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에 국내개봉 전 홍콩 비디오 보고 쓴 리뷰입니다] ‘색정남녀’라는 제목만 보자면, 이 영화나 여균동 감독의 그 영화나 제목 하나는 정말 백만 불 짜리이다. 누구라도 <색정남녀> 제목만으로는 적어도 이 영화의 내용을 <옥보단之색정남녀>정도를 연상할 것이니 말이다. 처음 영화 시작되면 쇼킹 그 자체의 오프닝 신을 보게 된다. <해피 투게더>의 오프닝 씬과는 비교가 안 되게 시뻘건 화면에서 등에서는 연신 땀이 쏟아지는 장국영의 뜨거운 러브신을 보게 된다. 아마 이 장면만으로도 장국영 팬에게는 획기적인 영화가 될 것이다. <성월동화> 국내개봉을 앞두고 장국영이 방한했었다. 인터넷으로 생중계된 기자회견장에서 누군가가 이 영화 <색정남녀>가 한국에서 금지되었다가 곧 상영될 예정이란 것을 알고 있냐고 장국영에게 질문했다. 그 질문에 장국영은 “기쁘다. 그 영화는 홍콩에서도 3급이었다. 제목에 ‘색정’이란 단어가 들어가서 오해하겠지만, 에로물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3급은 <색정남녀>, <옥보단> 같은 영화이다.)
<색정남녀>은 첫 장면부터 장국영과 막문위의 아찔한 의상과 아찔한 베드씬이다. 그야말로 몽환의 섹스라도 하는 듯한 격렬한 화면은 이내 그것이 영화 촬영 장면임을 알게 된다. 남과 여가 너무 열을 내니 감독이 “컷!”한다. 이때 장국영이 멈출 수 없다고 한다. 뭘? 그러더니 이 화면은 또 장국영의 현실 생활로 돌아간다. 장국영은 영화 몇 편 찍고 현재는 놀고 있는 백수 감독이다. 아내(동거녀) 막문위가 언제나 힘을 주고, 사랑(!)을 담뿍 주지만 언젠가는 자신의 영화가 성공하게 되기를 기원한다. 이때 오랜 영화판 친구 나가영이 장국영의 새 각본을 영화로 만들자며 제작자에게 데려간다. 제작자는 제목을 보자마자 아주아주 좋아한다. 제목이 <색정남녀>이니까.
“이건 3급 영화야. 벗겨 벗겨. 죽여 죽여.. 그럼 떼돈 버는 거야.” 이때 사무실로 걸어 들어오는 영화사 사장의 젊은 정부, 서기! 아이고 맙소사, 서기가 나오다니. 이 양반 지금 <옥보단지 색정남녀>를 찍을 모양이군…. 그렇다. 제작자는 그걸 원하고 있다! 장국영은 어쩔 수 없이 영화촬영에 들어간다. 맙소사 예술영화를 찍고 싶어 하는 서기는 옷 벗는 것을 한사코 거부한다. 달래고 달래고.. 해서 서기를 결국 벗겨서는 <색정남녀>를 찍기 시작하는데…. (이 영화에서 서기가 제일 노출이 심하다. 완전 올 누드-모노크롬으로 처리됨-까지!) 러시 필름을 보니.. 아이고 맙소사 이건 또 뭐야?
나가영이 맡은 역은 총괄 프로듀서이다. 영화 현장에서 제작비 절감하려고 눈이 벌게지고, 감독과 배우 사이의 트러블을 조정하고, 로케 장소 섭외까지 신경 쓸 일이 많다. 나가영은 발가벗은 서기를 기대했었는데 휘황찬란한 스탭 프린팅 촬영이라니. “속았다!” 나가영이 한 마디 안 할 수 없다. “지금 너가 찍는 것은 3급 필름이야. 왕가위가 아니라니까. 넌 왕정이란 말이야!” 그러자 고뇌에 찬 장국영 감독이 그런다. “그럼 구숙정은?” (영어자막으로는 “여배우 캐스팅이라도 바꿔주든지..”) 구숙정이라도 있으면 왕정 스타일로 찍지, 이건 어디서 굴려온 개뼈다귀인지.. 화가 잔뜩 난 장 감독은 그런다. “난 나의 메시지를 담은 내 영화를 찍고 싶다고..”
나가영은 현실적으로 이야기한다. “홍콩 영화 관객들 중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볼 사람은 아무도 없어!” 지금 찍고 있는 영화는 3급 에로물이다. 방금 찍은 장면은 서기가 총을 든 강도 앞에서 나체를 가리고 있던 옷가지를 땅에 떨어뜨리면서, 두 손을 번쩍 치켜든다. 그리곤 애처롭게 “살려주세요. 절 강간하지 마세요..”라고 소리 지르는 장면이다.
물론, 이 장면에서 기대하는 다음 모습은 상상가능할 것이다. 서기는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 셈이다.
서기는 <색정남녀>에서의 뛰어난(–;) 연기로 금상장 여우조연상과 신인상 두 개 부문을 수상한다!!! 현장 프로듀서 역의 배우가 그런다. “왕정은 지난 십년동안 홍콩 최고의 흥행성적을 올리고 있는 감독이야. 오늘 심야 극장 가서 관객들 반응을 살펴봐. 그럼 알게 될 거야…” 그래서 극장에 가본다. 그래서 보게 되는 영화가 <옥보단> 같은 영화이다. 뭐. 이전에 신문에 쇼킹한 영화 광고가 난 적이 있었다. 고대 중국 性典에 나오는 무슨무슨…자세.. 이런 걸 보여준다. 그럼 극장 안 관객들은 모두 자지러지게 환호성을 보낸다. 영화관객은 저질이다. 기본적으로… 참담한 심정으로 극장 문을 나서는데 건너편 극장은 파리 날리고 있었다. 극장 앞에 진을 치고 있던 방송 카메라맨이 극장 문을 나서는 관객들에게 평을 부탁한다. 그럼 모두 영화평론가가 되어 “이건 어떻고, 저건 별 두 개 짜리..저쩌구…”, “내가 두 번 다시 홍콩영화 보나 봐라..” 그런다.
그때 그 인기 없는 영화의 감독이 아주 처량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동승 감독이다. 이동승 감독이 카미오 롤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유청운이 나와 카미오 롤을 한다. 이동승 감독이 내건 영화는 <바퀴없는 이름의 전차> 뭐 그런 것이었다. 홍콩극장가에서 대접받는 예술영화의 최후를 상징한다.
이동승 감독은 격분에 못 이겨 멋지게 공중제비라도 도는 듯하더니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한다. 그다음 날 보여주는 신문 헤드라인. “영화 흥행부진 이동승 감독 자살” (홍콩의 대표적 스캔들 신문 <동방일보> 제호가 선명하다) ‘색정남녀’ 촬영장에선 이동승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분분하다.
“관객들은 영화를 골라 볼 수 있는 권리가 있어…” 그때 나가영이 나타나서 그런다. “죽을 가치가 있었군. 죽고 나서 지금 그 극장엔 사람들이 미어터지고 있으니 말야. 곧 성룡의 박스오피스 기록도 깰 거야..” 이 영화의 감독/각본은 이동승(爾冬陞), 나지량(羅志良)이 공동으로 맡았다. 이동승은 <신불료정>의 감독이다. 갈수록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는 장국영 감독… 영화 찍기는 갈수록 배우와의 신경전이다.
나가영은 길거리에서의 몰래 촬영을 요구한다. 그래서 스탭진들은 길거리에 대충 자리 잡고, 전화 부스에서 3급 영화의 한 장면을 찍기로 한다. 남자 서금강(徐錦江, 홍콩영화 보면 콧수염 기른 조춘 같은 배우 있잖은가. 그 배우가 바로 서금강이란 배우이다. 옥보단 시리즈에 나온다)과 서기의 연기력이 볼만. 연기랄 것도 없다. 부스 안에서 남자가 서기를 강간하려는 장면이다. 세상에나….. 눈 깜짝할 사이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웬 생포르노냐 하고 불구경보다 더 재미있는 이 구경거리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분노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어 오른 서기. 장 감독에게 “아니 이런 장면 아니잖아. 나 이 영화 못 찍어!” 하고는 가 버린다. (이런 경우는 우리나라에도 종종 있다. 감독이 더 진한 장면을 요구하고 배우는 못하겠다고 버티는 것이다.
장국영과 막문위의 관계도 급냉한다. 하지만, 포르노면 어떻고, 아트 무비면 어떻냐. 그들은 최선을 다하여,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영화 찍기를 계속한다. 마지막에 정말 진짜 ‘3급’ 수준의 베드 신을 찍은 후 장 감독은 “촬영 끝!”을 선언한다. 그때 장국영은 홍콩영화제 금상장 감독상 수상 장면을 떠올린다. 아이고! 그때 불이 난다. 그래서 세트장 다 태워버리고 애써 찍은 필름까지 소실한다. 제작자는 방방 뛴다. “뭐라고? 돈을 그만큼 처들이고, 그딴 영화밖에 못 찍더니 이제 홀라랑 태워버렸다고?…” 하고는 손 떼버린다. 이제 남은 스탭과 배우가 다시 영화를 찍어서 완성시킨다. 아주 행복하게… 영화 보는 내내 영화 찍는 현장의 고민과 영화찍기의 어려움을 실감하게 된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 <죽이는 이야기>와 미국 영화 <부기 나이트>를 적절히 섞어 놓은 유쾌한 영화이다. 수입되면 오랜 만에 볼만한 홍콩영화가 될 것은 분명하다. 그때 감상문 제대로 써야겠다. ^^ 이 영화 수입 안 되었나? 내가 수입할까? 그래서 장국영이랑 서기 불러다가 (요즘 기자회견장은 너무 격조 높다. 그러니까 시뻘건 등 달고, 룸살롱 같이 꾸며서…) 인터넷으로 생방송하는 가운데 두 사람의 베드신 장면을 연출시키고, 서기의 비키니 패션쇼 같은 이벤트도 펼치고… 우와… 그럼 돈 번다 돈 벌어.. “벗어! 더 벗기란 말이야. 죽여.. 죽여란 말이야.. 관객은 원래 그런 거 좋아해. 예술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예술이야? 관객들 속셈은 다 똑같아. 6천원 내고 서기 누드 보려는 거야. 알겠냔 말이야..” 예술감독 (이 영화에선 장국영, 현실에선 후효현 같은 사람)은 그래서 슬픈 것이다….. (박재환 1999/8/11)
[색정남녀/色情男女] (Viva Erotica,1996) 감독: 나지량/이동승 출연: 장국영,막문위,서기,나가영,서금강,유청운,황추생,진패 홍콩개봉: 1996/11/28 한국개봉: 20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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