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테레비'에 네 개의 다리가 붙어있고 브라운관 앞에는 좌우로 펼쳐지는 여닫이문이 달려있을 때, 그 시절 본 영화 중 기억에 단편적으로 남아있는 영화가 두 편 있다. 하나는 <새벽의 7인>이란 영화로 마지막에 물이 차오르는 지하실에서 주인공 둘이 총으로 자살하는 장면이 10여 년이 지나도 절대 잊혀 지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작품은 누군가 마지막에 탈출하는 기차를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뒤에선 독일군들이 총을 마구 쏘며 저지한다. 이 남자 빨리 뛰어 올라타라는 동료의 애타는 손짓에도 불구하고 아주 슬프게도 죽고 만다. 난 이 영화제목이 뭔지 도대체 떠오르질 않았다. 국민학생 때 보았을 영화이니 당시로선 프랭크 시나트라가 누구인지도 몰랐을 것이니 말이다. 괜히 철교가 생각나서 <레마겐의 철교>아니었을까 하고 있던 중에 오늘 EBS에서 이 영화를 하는 거였다. 제목은 <탈주특급>이고 원제는 ‘Von Ryan's Express’이다.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날 듯도 하다.
이 영화는 1965년도 작품이다. 나보다 더 오래된 영화이다. 영화의 배경은 2차 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의 이태리이다. 이태리는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히틀러의 나찌스와 함께 '구축국'이 되어 연합군과 막판 치열한 전투를 벌일 때인 줄 알았는데... 사실 1944-5년 전후하여 이태리 국민의 정서는 모르겠다. 영화를 보면 이태리 사람들이 독일군을 상당히 증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영화의 배경은 이태리의 한 전쟁포로수용소 (POW camp)이다. 400여 명의 포로 대부분이 영국군이다. 그런데 어느 날 미국공군조종사 라이언 일병이 아니라 라이언 대령이 붙잡혀온다. 이제 그는 포로수용소내의 최고 군관이 되어 포로를 통솔하게 되는 것이다. (콰이강의 다리를 본 사람은 알 수 있듯이 영국인은 꽤나 원리원칙에 얽매이고 답답하다. 이는 뭐 최근의 <타이타닉>만 봐도 느낄 수 있다) 영국군 장교는 탈출을 기도하지만, 라이언 대령은 곧 연합군이 승리할 것이니 그때까지만 무사히 수용소에서 지내자고 한다.
어쨌든 땅굴 파서 탈출하려는 영국군 장교를 저지한 라이언 대령은 대신, 더러운 군복을 갈아입히고, 샤워를 시키도록 주선한다. 이 와중에 연합군은 이태리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포로수용소 근처까지 진출하고 있다. 포로수용소의 이태리 군인들은 다 도망가고, 이제 포로들은 떼거리로 몰려 수용소를 탈출한다. 아니 걸어 나온다. 그런데 웬걸 이번엔 독일군들이 이들을 몽땅 잡아들여 기차에 태우고는 독일군 수용소로 이송시키려한다. 이 영화는 바로 이 "Kriegsgefangenzug" (발음이 맞나 모르겠다 '크리그게파엔주크', 뜻은 a train of prisoners of war이란다..)에서 펼쳐지는 액션극이다.
달리는 기차에서 벌어지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액션극이 재미있다. 최근에 EBS에서 보여준 <북국의 제왕>에서처럼 '기차'는 호쾌하고, 남성적이며, 또한 전진을 의미한다? 어쨌든 한다.
라이언 대령은 달리는 기찻간의 밑바닥을 뜯어내고 독일군을 물리친다. 그리곤 독일군 복장을 입고는 독일군처럼 행동하며 이태리 국경을 벗어나려한다. 포로를 실은 그 기차 바로 뒤에는 독일병정을 잔뜩 실은 기차가 뒤따르고 있고, 지나가는 역마다 보고를 해야 한다. 독일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곤 군목(군대목사) 장교 뿐이다. 그들은 갖은 곡절 끝에 마침내 스위스로 기차를 몰고 탈출하기로 한다. 기차의 진행코스를 이상하게 여긴 독일군은 마침내 전투기까지 동원하여 그들의 진행을 저지하러 나선다. 이제 저 다리만 건너면 자유인데....
독일군은 줄기차게 쫓아오고, 스위스가 바로 코 앞이다. 그런데 독일 전투기가 나타나서 철로를 폭격한다. 포로들은 한편으로 철로를 보수하고, 라이언 대령의 지휘 하에 독일군의 진격을 저지한다. 마침내 철로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기차는 출발 신호를 알린다. 라이언 대령은 마지막으로 기차에 오르기 위해 달리지만, 독일군의 총에 맞아 쓰러지고 만다. 내가 십여 년 전에 보고 충격 받았던 바로 그 장면이다. 미국영화는 해피앤딩이 주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많은 포로들이 탈출하다 죽는다. 주인공도 물론 죽고 말이다. 그런 특이함 때문에 오래 기억되는 모양이다.
전쟁포로와 탈출을 그린 영화는 꽤 많다. 스티브 맥퀸이 오토바이 타고 철조망을 뛰어넘다 결국은 도로 잡히고마는 <대탈주>, 그리고 포로들 가운데 첩자가 있는데 그를 찾아내는 아이디어가 돋보였던 <제 17포로수용소>, 포로들의 강제노역을 보여주는 <콰이강의 다리>, 최근 것으론 축구이야기가 등장하는 <승리의 탈출>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쟁이 전쟁인만큼 포로를 다룬 이야기는 참으로 비참하다. 그런데 내가 계속 흥미를 느끼는 것은 허영만의 만화 <오!한강>의 거제도 포로수용소 부분이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이 시대, 이 장소의 북괴군 포로수용소는 정말 비참하고, 정말 끔찍했다. 포로들에 대한 대우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포로들 내부의 정치활동과 위계질서가 그렇다는 것이다.
감독인 마크 롭슨을 찾아보니 그다지 유명한 작품은 없다. 그런데 하나 흥미를 끌만한 것은 그가 <시민 케인>의 편집에 참여하였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David Westheimer의 원작소설을 Wendell Mayes가 시나리오로 옮긴 것이다. 웬델 메이어의 작품으로는 이 영화 이전에 <Anatomy of a Murder(59)>, <Spirit of St. Louis(57)>, <Enemy Below(57)> 등 꽤 유명한 작품이 있다.
영화제목 폰 라이언에서 "폰"은 라이언의 이름은 아니다. 그가 영화에서 독일군 복장(유니폼)으로 위장을 하기에 그런 의미가 내포되어 있단다. (박재환 1999/6/30)
**Von Ryan’s Express (1965, dir. Mark Robson)** is a gripping World War II escape story set in an Italian POW camp. When American Colonel Ryan joins a group of British prisoners, his pragmatic leadership clashes with their strict discipline, leading to a daring train escape toward Switzerland. The tension peaks as Ryan heroically sacrifices himself to ensure the others' freedom—an unusually tragic ending for a 1960s Hollywood war film. The reviewer recalls first seeing the film on a black-and-white TV as a child, struck by its dramatic finale and the rare portrayal of Allied unity under pressure. With Frank Sinatra in a commanding role and a script by Wendell Mayes, adapted from David Westheimer’s novel, the film stands out for its tight pacing, masculine energy, and moral ambiguity. ★Reviewer: Park Jae-hw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