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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영화리뷰

[24시티]二十四城 지아장커의 중국 한 도시 이야기

by 내이름은★박재환 2009.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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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장커 만세만세만만세!

 

  중국에는 지아장커(賈樟柯,가장가)라는 감독이 있다. 1997년 그의 영화 <소무>가 세상에 처음 알려졌을 때 세계영화(비평)계는 이 깜짝 놀랄만한 중국의 신예감독에게 열렬한 찬사를 보냈었다. 10년 만에 그는 장예모나 진개가가 빠져나간 중국영화계에 ‘예술혼의 상징’으로 급속히 자리매김했다. 1970년생 감독이 말이다. 물론 그의 작품들은 장예모나 진개가의 최근 작품들과 비교하자면 대중성은 지독히도 없다. 하지만 그의 놀라운 예술적 성취는 그를 이 시대 가장 유망한 중국영화감독으로 당당히 올려놓기에 족하다. 작년 한국의 영화주간지 <<씨네21>>에서는 창간 13주년을 맞아 국내외 영화감독과 영화평론가를 대상으로 ‘신세기 영화 베스트10’을 뽑은 적이 있는데 그때 당당 1위를 차지한 작품이 바로 지아장커의 <스틸 라이프>였다. <스틸 라이프>는 2006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물론, 중국의 ‘놀라운 신예감독’들은 정치적 이유로 어렵게 영화란 것을 찍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내용이다. 주로 외국의 아트계열 자본으로 ‘영화제용 예술영화’만을 찍는다는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버렸다. 지아장커 감독 본인은 자신의 영화가 일반 대중들에게도 널리 ‘수용’되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스틸 라이프>가 중국에서 개봉될 때 같은 날 개봉된 영화가 ‘하필이면’ 장예모 감독의 휘황찬란한 스펙터클 사극 <황후화>였다. 지아장커는 “예술영화도 숨 쉴 공간이 있어야 한다”며 영화홍보를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대중의 벽’은 높았다. 사실 중국에는 우리에겐 그나마 있는 ‘예술전용관’이나 ‘스크린쿼터’ 같은 게 없다. 그러니 아무리 해외영화제가 격찬하고 한국영화잡지가 으뜸으로 손꼽은 작품이라도 일반 중국영화팬이 제대로 감상하긴 하늘의 별따기이다. 우리나라도 거의 비슷하지만 말이다. 그런 현실을 감안하고 지아장커의 신작 <24시티>를 관람한다.

50년 된 군수공장 부지 재개발되다

   <24 시티>는 중국의 한 대도시 사천(四川,스츄안)성 성도(成都,청뚜)에 위치한 대규모 군수공장을 둘러싸고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50년간의 운명을 담고 있다. 모택동의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1949년) 되고나서 정치적인 이유로 동북삼성 지역에 있던 군수공장들이 내지로 대거 이동한다. 그때 청뚜에 들어선 공장이 바로 420 팩토리(420廠)이다. 주로 전투기 부품을 생산했다고 한다. 이 거대한 공장에서 일할 노동자들도 중국 각지에서 속속 이주한다. 그렇게 들어섰던 공장이 50년 만에 문을 닫고 그 부지에 오늘의 중국을 상징이라도 하듯이 거대한 규모의 재개발이 이루어진다. 어제까지 인민을 먹여 살리고 국가를 지키던 기간산업이었던 전투기 부품공장에 대규모 호텔과, 상가, 비즈니스 빌딩, 아파트단지들이 들어서는 것이다. 그 이름이 바로 ‘24시티’이다. 마치 동대문운동장을 뜯어내고 대규모 쇼핑몰 건물이 들어서듯이 말이다.

  지아장커 감독은 바로 이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을 찾아내어 카메라 앞에 앉히고는 자신이 언제 어떻게 이 공장까지 흘러들어왔으며 어떤 일을 했으며, 어떤 추억을 갖고 있는지를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놀랍지 않은가. 중국의 현대를 관통하는 다큐멘터리를 찍는데 이런 소재와 이런 방식을 택한다는 것이. 지아장커는 ‘다큐멘터리’와 ‘영화’의 경계를 허무는 시인(詩人)으로 곧잘 이야기된다. 이 작품에서도 그러한 경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아장커는 한 시대가 거(去하)고 새로운 시대가 래(來)하는 중국의 모습을 담기 위해 중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지난 10여 년 동안 중국의 웬만한 대도시에는 어김없이 광대한 규모의 공장들과 오래된 주택단지들이 허물어지고 그 자리엔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고층건물과 찬란한 신도시가 들어서고 있다. 지아장커는 많은 곳을 살폈고 그 중에 사천성 청뚜의 ‘420공장’의 운명을 필름(정확히는 디지털)에 담기로 결정했다. 그는 지역 신문사의 협조를 받아 400명 이상의 노동자의 기억을 문자화했고, 50여 명의 추억을 카메라에 담았으며 최종적으로 8명의 기억을 봉인해 낸다.

그렇게 살려낸 군수공장 노동자의 기억이 새롭거나 충격적이진 않다. 어떻게 대규모 주거이전이 이루어졌으며, 군수공장에서는 어떻게 일을 하게 되었으며, 여가생활을 어떻게 즐겼는지, 어떻게 청춘의 한때를 보냈는지를 카메라를 향해 담담하게 말한다. 공산국가 건설이라는 과업을 달성하고, 문혁이라는 광분의 시기를 거쳐, 자본주의 고속도로에 내던져진 그들의 기억은 차분하고, 아름답고, 열정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마지막 신세대(그들 표현으로는 ‘新新’세대)는 중국의 젊음이 한국의 젊음과 똑같은 처지라는 이상한 모습까지 보여주기에 이른다.

   <24시티>는 지아장커 감독 작품답게 작년 완성되자마자 깐느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았다. 비록 수상은 못했지만 ‘지아장커’의 명성답게 꽤 호평을 받았다. 주로 ‘예술영화에 큰 점수를 주는 일군의 평자들’에게 말이다.

    <소무>에서 <스틸 라이프>(그리고 <무용>)에 이르기까지 지아장커의 카메라는 독특했다. 중국의 지리멸렬해가는 현실을 담담하게 그리면서, 그 화면의 한쪽 귀퉁이에선 중국의 현실과 미래를 예지해볼 수 있는 판타스틱한 매력을 담아왔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의 공존

  ‘다큐멘터리’라는 것도 진화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같은 ‘아주 가짜’에서 히스토리 채널이나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만나보게 되는 역사 재현물까지. 다큐멘터리도 점점 영화화되어가고, 점점 스토리에 매달린다. <24시티>도 ‘진짜’ 다큐멘터리에 ‘가짜’ 다큐멘터리가 결합된다.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인물 중 절반은 가짜이다. 아니, 요즘의 다큐멘터리 추세처럼 ‘타인에 의해 재현된 과거의 진술자’이다. 그중에는 우리에게도 낯이 익은 진충(조안 COS) 같은 배우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에겐 낯선 배우겠지만 중국영화팬에겐 익숙한 얼굴이다. 그들은 일반인이 등장하는 다큐멘터리인 줄 알고 보다가 인기 스타의 연기를 자연스레 보게 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는 셈이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는 지금 이 순간은 제대로 알 수 없다!!)

   지아장커는 서구인들이 기대하는 격동하는 현대중국의 이야기를 전해주지 않는다. 이데올로기의 혼란이나 자본주의의 유입이 공산주의의 인민을 어떻게 병들게 했는지 폭로하지도 않는다. 중국도 이미 새로운 시대의 낯익은 파괴와 재개발을 해가고 있다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기대했던 웅장한 군수공장의 기계소음이나 전투기 프로펠러의 조립광경을 기록필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벽돌공장 내에서 숨 쉬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군수공장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시점에 그 공장의 수명은 끝난다. 기계는 뜯겨져나가고, 벽돌담은 무너지고 유리창은 산산조각난다. 그곳에는 고공 크레인이 하루에 10층씩 쑥쑥 올라가더니 어리어리한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중국 부동산재벌이 돈을 투자한 기이한 영화

24시티 모델하우스에 몰린 중국부동산 열기

  이 영화 제작은 특이하다. 그동안 지아장커는 줄곧 외국의 아트계열의 펀딩을 받아 작업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번 영화는 중국의 메이저 스튜디오인 상하이전영집단(상하이필름그룹)이 제작했다. 물론 여전히  ‘오피스 키타노’같은 외국자본도 들어오고 말이다. 가장 특이한 것은 아마도 ‘화륜’(華倫이)이라는 중국재벌의 존재일 것이다. 원래 홍콩자본에서 출발하여 중국에서 유통에서 건설 등 다방면에서 문어발 확장을 하고 있는 화륜그룹이 영화 제작리스트에 올라있다. 이 영화에서 보이는 부동산재개발이 바로 화륜의 신사업이다. 화륜그룹은 지난 2005년에 이 낡디낡은 210만 평방미터(63만 평)의 군수공장을 21억 4천만 위안(4,300억 원)에 개발권을 획득하여 ‘24城’이라는 부동산재개발을 이끈 것이다. (구글맵에서 찾아본 24City) ‘화륜’은 청뚜 말고도 북경, 중경 등지에서 이런 부동산 투자를 하고 있다. 가장 돈 없고, 억압받을 것 같았던 중국 6세대 (그게 지하전영이든, 7세대든 호칭과는 상관없이) 지아장커 뒤에는 알게 모르게 든든한 전주(錢主)가 버티고 있다는 것이 중국영화의 앞날을 쾌쾌청청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지극한 ‘담담함’보다는 그 화려한 ‘색깔’이 더 관심이 간다.

  참, 지아장커는 이 영화의 각본작업을 사천성 출신 여시인 적영명(翟永明,짜이용밍)과 같이 했다. 작품을 한층 시적으로 만든 '예이츠'의 시와 함께 구양강하(歐洋江河)와 만하(万夏) 등 중국 현대시인의 시구를 엿볼 수 있다. (박재환 20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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