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 역사 삼국지, 소설 삼국지, 영화 삼국지

2008. 7. 17. 14:08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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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이문열을 재벌반열에 올려놓은 소설 [삼국지]에서 가장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인 ‘적벽대전’을 다룬 영화가 중국에서 만들어졌다. 당시 통일제국이었던 한(漢) 헌제(獻帝)가 유명무실한 군주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중원의 패권을 다투었던 위-촉-오의 기라성 같은 영웅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삼국지연의]는 지난 천여 년 동안 중국 최고의 이야기 근원이었다. 이 중 서기 208년 겨울 무렵 장강의 도도한 물결이 흐르는 적벽 아래에서 있었던 전쟁은 독자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이 이야기를 [영웅본색]과 [첩혈쌍웅]의 오우삼이 영화로 만든 것이다. 오우삼이 누구인가. 암흑가 악당들이 곧 죽어도 폼 내는 영웅주의 철학과 비둘기-쌍권총으로 대표되는 폭력적 영상미학을 뽐내던 인물이다. 그가 할리우드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다시 중국에 돌아와서 영화로 만든 것이다.  

  적어도 중국 사람에게는 [삼국지]라는 콘텐츠는 세 살배기 꼬맹이도 다 안다. 한국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이문열 삼국지든, 온라인게임 삼국지이든, 중간급 지성(?)만 갖추어도 ‘적벽대전’이나 ‘삼고초려’, 유비 관우 장비가 의형제를 맺었다는 ‘도원결의’ 정도는 알고 있다. 오우삼 감독은 누구나 다 아는 이 이야기를 경악할만한 수준의 제작비를 끌어들여 영화로 만든 것이다. 제작비는 8000만 위안. 역대 중국 최고 제작비 기록이다.

오우삼의 삼국지 

 오우삼은 어린 시절 유리창에 삼국지 인물을 그려놓고 플래시로 맞은 편 벽에 그림을 영사하는 방식으로 삼국지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1990년 그의 영화 <첩혈쌍웅>이 깐느영화제에서 상영될 때 오우삼은 꼭 만들어보고 싶은 영화로 ‘중국인의 삼국지’를 꼽았었다. 그리고 18년이 걸린 셈이다.

  영화 [적벽대전]은 우리가 다 아는 그런 소설 [삼국지연의]의 하이라이트 ‘적벽대전’을 다룬다. 영화는 모두 이 결전의 순간으로 인물과 사건이 쏠리는 구조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조조(曹操)가 한 헌제를 윽박지르며 남정을 요구한다. 조조의 꿈은 다시 중원을 통일시키고 천하의 패권을 잡는 것. 허울뿐인 헌제는 어쩔 수 없이 “조조, 당신이 알아서 잘하시오!”라고 한다. 조조는 ‘100만 대군’을 이끌고 유비가 머물던 형주를 치고 강동으로 진출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유비의 책사 제갈량은 조조에 대항하기 위해 오나라 손권과의 연합을 제의한다. 이 위태로운 시국에 오나라로 건너간 제갈량은 속셈을 알 수 없는 손권과 그의 책사, 주유를 세치 혀로 구슬려 연합결성에 성공한다. 과연 유비(제갈량)와 손권(주유)의 연합군은 조조의 ‘100만’ 대군에 맞서 싸워 이길 수가 있을까. 장강 적벽에서는 건곤일척의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 짠~

  허걱! 영화 관객은 놀란다. 여기서 영화가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진짜 말로만 듣던 ‘10만개의 화살을 거저 얻어’ ‘동남풍을 빌어’, ‘연환계에 발이 묶인’ 조조의 배들을 몽땅 태우는 ‘적벽대전’ 이야기는 올 겨울에 개봉되는 [적벽대전2]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거대한 낚시질’이라는 말이 나오는 모양이다. 

전 후편 800억 원짜리 영화
   중국 5세대 감독 장예모의 소싯적 작품을 보면 소박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중국이 세계의 큰 공장 역할을 하면서 중국영화의 규모도 덩달아 커졌다. [영웅]-[무극]-[황후화]를 거치더니 [적벽대전]에서는 8,000만 달러 영화가 등장한 것이다. 상하(上下) 두 편으로 만들어지는 영화가 8000만 달러이니, 편당 400억 원짜리인 셈이다. 이 액수도 최고 액수이다. 사실 오우삼 감독은 영화제작 내내 맘고생이 보통 심했던 것이 아니다. 오래 전 함께 홍콩느와르를 이끌었던 주윤발이 중도 하차하고 우여곡절 끝에 양조위가 허겁지겁 복귀하는 등 주연급 캐스팅부터 시끄러웠다. 영화의 규모가 커지면서 제작에 참여하는 영화사(배급사)도 늘어갔다. 이에 따라 의외의 소속사 배우들이 잇달아 캐스팅되었다. 배우 캐스팅만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촬영감독 등 스태프들의 참여와 중도하차가 계속되었다. 그러더니 1편 완성 뒤 마지막 편집을 하고 있던 사이 스튜디오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사람이 죽는 사고까지 나버렸다. 그 과정에서 제작비는 눈덩이처럼 부풀어갔다. 오우삼 감독은 제작비 지출초과로 인해 자신의 감독 개런티까지 돌려막기로 제작비에 투입해야했다고 한다. 오, 마이 가드, 영화가 제대로 나오려나.

역사 삼국지와 소설 삼국지 

  역사관련 기록에 대해서는 그 어느 나라보다 풍성한 자료를 남기는 중국답게 삼국(위촉오)시대를 다룬 역사서 또한 많다. 소설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이 시대의 역사서로는 서진(西晉)시기 진수(陳壽)가 쓴 [삼국지](三國志)가 기본 텍스트로 취급된다. 삼국시기는 의외로 짧다. 조조의 위, 유비의 촉한, 그리고 손권의 오, 세 나라가 어떻게 세력을 형성하고 싸우고 멸망해 가는지 대략 서기 220년에서 280년 사이, 60년의 시기를 말한다. 진수의 역사 [삼국지]에 대해 후대 많은 학자들이 풍성한 주석을 덧붙인다. 그 중 배송지(裴松之)의 [三国志注]가 유명하다. (김원중 교수가 진수의 [삼국지]를 번역했다.) 

영화 [적벽대전]을 이야기하면서 왜 진수의 [삼국지]이야기를 꺼낼까. 알다시피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 [삼국지연의]는 ‘뻥’이 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인물에 대한 평가도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소설 삼국지]영향으로 조조는 교활한 놈으로, 제갈량은 천하의 꾀주머니로, 주유는 음흉한 놈으로 낙인 찍혀버렸다. 역사인물에 대한 평가(褒貶)는 그렇다 치더라도 사실관계에 있어서도 많은 창작과 조작, 자의적 해석이 넘쳐난다. 그래서 흔히들 소설 삼국지 대해서는 실삼허칠(實三虛七)- 사실 30%-창작 70%라고 말한다. ‘적벽대전’만 해도 그렇다. 조조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내려와서는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과 건곤일척의 대결을 펼치는 것이 소설 삼국지에는 몇 개 장에 걸쳐 엄청나게 묘사된다. 그런데 역사서에는 달랑 몇 줄로 기록되어 있다.  

  權遂遣瑜及程普等與備幷力逆曹公遇於赤壁 時曹公軍衆已有疾病 初一交戰 公軍敗退 引次江北 <<三國志 周瑜传>>
  (손권이 이에 주유와 정보를 보내어 조공에 힘써 맞서라고 이른다. 적벽에서 조우한다. 이때 조조의 군중에서는 다수가 질병에 걸렸다. 처음 교전이 있고 조조군대는 패하여 강북으로 돌아간다.) 

얼마나 간단한가. 조조가 데리고 온 군사 수도 100만 대군이라지만 전형적인 중국식 과장법이다. 적벽대전이 있은 뒤 1800년이 지났다. 중국 학계에선 적벽대전의 진상을 밝히려는 시도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요즘은 조조가 20여 만의 군사를 이끌고 장강을 타고 내려오다가 적벽 근처에서 손권의 3만 수군과 조우전을 펼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조조가 이 전투에서 패전한 것도 거의 설명이 가능하다. 쉽게 말해 보병 위주의 급조된 조조 군사가 흔들리는 배 위에서 펼치는 수전에서는 필패일 수밖에 없었고 물설고 낯선 남쪽 땅에서 풍토병까지 도져 제대로 싸우려야 싸울 수 없었다는 것이다. 조조는 남쪽을 포기하고 짐 싸들고 북쪽으로 간다. 이후 위촉오 삼국정립의 형상을 띠게 되는 것이다. 물론 중국 학자들은 ‘적벽’이 어디인지 찾기 위해 노력했다. (마치 백제 의자왕의 3천 궁녀가 뛰어내린 절벽을 찾듯이..) 좀 놀랍지만 정확한 ‘적벽’ 지역을 찾기도 쉽지 않다. 

이야기 하는 김에 더.. 

소설 삼국지의 전투는 제갈량의 공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오랫동안 주유는 조조처럼 저평가 받거나 오해된 역사인물이었다. 물론 정사를 파고든 사람들은 주유에 대해서도 괜찮게 평가하고 있다. 오우삼 감독이 주윤발을, 그리고 결국은 양조위를 주유로 캐스팅한다고 했을 때 한국 영화(삼국지) 팬들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왜 유비나 제갈량이 아니고 주유이지? 오우삼은 주유의 명예회복, 즉 주유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번 기회에 주유가 올바른 평가를 받는다면 [삼국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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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에서 ‘적벽대전’의 장관은 보여주지 않지만 나름대로 거대한 전투 장면이 두 번 펼쳐진다. 소설 삼국지에서 장판파(長坂坡) 전투라고 일컫는 장면과 삼강구(三江口)에서의 대결이다. 장판파 전투는 유비가 조조에 쫓겨 도망가면서도 백성을 내버릴 순 없다며 느릿느릿 이동하다가 결국 조조 추격대에게 박살나는 장면이다. 여기서 조자량(조운)이 등장하여 ‘군주’ 유비가 내팽개친 처자식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장면과 장비가 다리에 떡하니 버티고 서서 고함을 질러 조조를 쫓아내는 장면이다. (물론 나관중의 넘치는 상상력의 결과물이다!) 먼저 개봉된 [용의 전설]에선 유덕화가 조자량 역을 맡았는데 이 영화에선 중국배우 호군(胡軍,후쥔)이 조자량을 맡아 오우삼식 활극을 제대로 보여준다. 그 다음 장면이 흥미롭다. 조조의 군사를 몰아내는 장비의 방식은 ‘고함소리’가 아니다. ‘제갈량’이 일러준 대로 황동 방패막을 이용한 햇빛 반사로 조조 군사의 눈을 어지럽히는 지극히 과학적인 방식이 사용된다. (물론 소설 삼국지에는 없다) 흥미롭긴 하다. 그런데 이 장면은 B.C.200년 경 그리스의 아르키메데스가 로마 군사를 물릴 칠 때 활용했다는 ‘청동경이용 태양광반사 적선 침몰’ 이야기를 변형시킨 것이다. (오우삼은 서구영화관람객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이 작전을 사용한 모양이다) 

적벽대전 직전 조조는 하후연에게 2천의 군사를 주어 수전을 준비 중인 손권 연합군을 기습하는 작전을 펼친다. 물론 제갈량과 주유는 조조의 작전을 예상하여 대책을 내세운다. 이른바 구궁팔괘진이라는 정말 중국다운 전술이다. 영화 보면 꽤 흥미롭다. (소설 삼국지에도 팔괘진은 나오지만 적벽대전에서는 없다) 어쨌든 이 볼만한 전투에서 장비, 관우, 조자룡, 게다가 주유까지 나서서 활약을 펼친다. 구궁팔괘진이 누가 창안해 냈는가는 중국전쟁사가들 사이에서도 이론이 분분하다.  

부채 부치는 제갈량, 부활하는 소교와 손상향 

적벽대전은 거의 겨울 무렵에 펼쳐졌다. 그런데 제갈량은 줄곧 부채질을 한다. 주유가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니 제갈량은 “냉정을 유지하기 위해서요.”라고 대답한다. 이 대사는 중국에서 요즘 유행어가 되었단다. 물론 역사서와 제갈량 그림에 꼭 등장하는 부채의 정체에 대한 연구도 있어왔다. 제갈량이 머리에 두르고 있는 두건의 정체도 궁금한 모양이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제갈량이 병이 있어서 그걸 감추기 위해 늘 부채를 들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진짜 흥미롭다. 쿨럭 쿨럭~ 

오우삼이 [적벽대전]에 출연할 배우를 찾기 위해 중국과 대만, 홍콩을 오갈 때 가장 관심을 모았던 인물은 대만의 톱 모델 임지령(린쯔링)이다. 모델과 방송활동만 하던 이 꺽다리 모델은 극영화 데뷔작에서 양조위와 러브씬까지 하게 되었으니 어찌 주목받지 않으리오. 그녀가 맡은 역할은 주유의 처, 소교 역이다. 역사서엔 교공(橋公)에겐 두 딸이 있었으니 큰딸은 손책(손권의 형)에게, 작은 딸은 주유에게 시집갔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이 두 딸이 역대 최고 미녀로 손꼽힌다. 남자 영웅의 이야기만 다루는 삼국지에서 아녀자의 운명에 대해서는 그다지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다. 그러니 대교와 소교가 천하절색의 미녀이고 삼국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카드였다는 내용은 순전히 나관중의 상상력의 소치이고 그걸 받아 오우삼이 최대한 뻥튀기한 셈이다. (영화경제학적으로 보자면 관객의 눈요기와 호기심 유발로 흥행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었다는 말씀!) 조조가 소교를 얻기 위해 남벌에 나섰다는 것은 영웅 조조에 대한 모독일 수도 있고 말이다. 조조가 이교를 취한다는 내용은 제갈량이 주유의 화를 돋우기 위해 사용된 꽤나 지능적인 수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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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령만큼 놀랄 배역은 중국 여배우 조미이다. TV드라마 <황제의 딸>에서 소연자로 나왔던 조미는 이 영화에서 딱 그런 역할을 맡았다. 손권의 여동생 ‘손상향’으로 나와 남자 못잖은 활약상을 보여준다. ‘손상향’이란 이름 없는 존재도 나중에 재발굴, 재개발, 재창작된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손상향이 “천하의 일은 여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라는 말을 하는데 벌써 유행어가 되었단다.  

나올 사람 다 나왔나 

물론 유비도 관우도 장비도 등장한다. 영화 시작되자 조조가 한 헌제를 윽박지르자 분연히 일어서는 신하 공융, 조조에게 ‘여자에 골몰하니 머리가 아픈 것이다’고 말하는 천하명의 화타, 주유 옆에서 얼쩡대는 노숙도 삼국지에선 유명인사이다. 주유 밑에서 군사를 훈련시키는 감녕도 나온다. 이 영화에 자본을 댄 일본 측 영화사가 민 일본배우 나카무라 시도가 감녕 역을 맡았다.  

글이 너무 긴가? <소설 삼국지>가 길고, 영화 <적벽대전>이 길다보니 이 글도 길다. 그래서 영화가 재미있냐고? <삼국지>가 재미있어서 읽나? 읽다보니 재미있는 거지. 아마 이 영화도 그런 삼국지 마니아용인 것 같다. 보고나서 비교해보는 그런 작품 말이다. 영화가 개봉되고 나서 중국에서는 소설 삼국지와 오우삼에 대해 잘 아는 네티즌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삼국지의 콘텐츠가 더욱 대중화되고 재미있어지는 모양이다. (박재환 2008.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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