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현 감독의 신작 <사냥의 시간>이 우여곡절 끝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윤성현 감독의 10년 전 작품 <파수꾼>은 이미 넷플릭스와 왓챠플레이에 올라와 있다. 다시 봐도 잘 만든 작품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버려진 기차 역사 철길을 따라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건들대며 등장한다. 이어 한 학생이 욕설을 퍼부으며 한 학생을 폭행하기 시작한다. 나머지 학생들은 멀거니 지켜보기만 한다. 그들이 어떤 학생인지, 누가 짱인지 단박에 인식시킨다.
영화의 첫 장면 때문에 이 영화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나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을 떠올리게 된다. 대한민국 그 또래 학생들은 얼마나 나쁘고, 얼마나 험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윤성현 감독의 2010년도 작품 <파수꾼>은 고등학교 2학년 교실을 비춘다. 기태(이제훈)는 학교의 ‘짱’이다. 중학교부터 단짝이었던 동윤(서준영)은 갈수록 거칠어지는 기태를 옆에서 지켜본다. 베키라고 불리는 희준(박정민)은 이들과 같이 어울리면서도 마음이 썩 편치가 않다. 영화는 이들 세 친구, 그리고 다른 학급 친구들이 어울리는 것을 보여주면서 조금씩 갈등구조를 쌓아간다.
시시덕거리고, 몰려다니고, 어울리지만 ’짱‘과 ’꼬붕‘(’부하‘란 뜻의 일본말임), 그리고 불편한 관계는 숨길 수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기태가 죽어버린다. 그의 아버지(조성하)가 찾아와 아들의 죽은 이유를 캐묻기 시작한다. 친구들은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들과 자신들이 생각한 것을 쉽사리 말할 수가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누구의 잘못이었는지 판단하기엔 다들 어리고, 연약하고, 부끄럽기 때문이다.
<파수꾼>이 호평을 받는 것은 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이제훈은 겉으론 마초 같지만 여린 구석이 있다. 편부슬하 혹은, ’남들과 비교했을 때 행복하지 않은‘ 가정환경에 대한 열등의식을 가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대해 괜한 ’존심‘으로 입안의 가시를 돋운다. 그 공간에 함께 있는 ’친구‘의 영혼은 상처받지만 여전히 사과에 둔하고, 공감에 약하다. 문제의 핵심은 기태(이제훈)인 셈이다. 더 주목받고, 더 우쭐하고 싶은 아이는 ’친구‘의 악에 받친 독설, 혹은 진심에 송두리째 흔들린다.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제목을 생각했다는 윤성현 감독은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어른이 되고 싶어, 흉내 내고 싶어 발버둥 치는 10대의 초라한 자화상을 완성했다.
그 또래, 그 무리에서 자신이 다 자란 수컷이라고 여기는 놈이 있으면 우스꽝스러운 권력게임이 펼쳐지고 쉽게 ’친구 사이‘라는 명찰을 붙인다. 그렇게 꼬봉이 되거나 척을 지고 버텨야한다. 그런 세상에서는 학교선생님도, 그들의 부모들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여자문제가 끼면 가뜩이나 연약한 그들은 더욱 센척하며 으스댈 것이다.
’오해‘라고 말하기 전에, ’너만 없었으면‘이라고 한탄하기 전에, 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이다. 그들이 문과였으면 알아들었으리라. 어쨌든 대단한 내공의 감독의 탄생이다. (박재환 20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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