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사이코] 과중한 스트레스, 과도한 살인 (매리 헤론 감독, American Psycho 2000)

2019. 8. 11. 09:04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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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02/7/15) 오늘 중앙일보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미국 실리콘벨리 지역의 베이비시터(보모) 연봉이 4만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날만 새면 천만장자가 수십 명 태어나는 실리콘밸리답게 이곳에는 단순히 ‘졸부’만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부와 명성의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요트, 고급 아파트, 스포츠 카, 고급 오디오 등등. 물론, 이런 이야기보다 앞선 시절의 부자이야기가 존재했었다. 레이거노믹스의 최대수혜자이기도한 월 스트리트의 잘 나가는 금융맨들이 그러했었다. 그들이 하루에 결정하는 돈이 수억에서 수십 억 달러에 이르다보니 이들의 정신적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그들은 보통 나이 30이 되기 전에 은퇴하고, 그들의 평균수명도 상당히 짧다고. 이들이 매일매일 다루어야하는 ‘판돈’과 ‘격무’를 생각해 본다면 그들의 스트레스가 ‘스포츠’나 ‘영화감상’ 같은 한가한 스타일로는 해소하기 힘들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아메리칸 사이코>는 1980년대 미국 월 스트리트에서 M&A(기업합병)을 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패트릭 베이트만은 멋진 아파트에 살며, 멋지게 꾸며진 사무실에서, 남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일을 한다. 그와 똑같은 직업과 똑같은 레벨의 사람들이 모여, 그들에게 적합한 고급 클럽에서 노닥거리는 것까지가 모두 현대판 귀족사회이다. 그들이 만나 나누는 대화는 너무나 고상하여 범인인 우리가 쫓아가기에는 힘들다. 그가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하며 바르는 바디 로션에서부터 이들은 이미 우리와는 너무 먼 공간으로 격리되어 있다. 그들이 레스토랑에서 앞 다투어 제시하는 것이 바로 성공의 상징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플래티넘 카드’이다. 그들은 그들의 고급 슈트를 자랑하고, 저녁에는 고급 레스토랑을 예약하는 것으로 부와 명성을 과시한다. 그리고 때로는 가장 우습게도 그들의 명함을 서로 자랑한다. 그들에게는 고급 디자인, 고급 재질, 금박으로 장식한 명함이 바로 성공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패트릭 베이트만은 어느 날부터인가 이런 따분하고, 자신을 옥죄는 생활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한밤 길거리의 부랑아를 보고 그는 다가간다. “일하지 왜 이러느냐?” “해고당했다고?” “너같은 놈은 인간쓰레기야. 죽어줘야겠어” 하고는 칼로 찌른다. 살인! 그 자신은 그 이유를 모른다. 그의 본능은 갈수록 야만스러워간다. 그는 콜걸을 불려 죽이고, 동료를 죽이기 시작한다. 그의 고급아파트 냉장고와 창고에는 시체가 쌓여만 간다. 영화는 코미디와 드라마가 절묘하게 배합되어있다. 잘못된 선입견일지 몰라도 감독 해리 메론이 여자감독이란 것이 놀랍다. 속물 근성의 등장인물들이 너무나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것이나 돈 몇 푼에 목숨을 내놓는 여자들이 한없이 충격적이다. 요즘 영화계의 추세대로 스플래터 무비에서 차용해온 난도질이 넘쳐난다. 미국에서는 R등급을 받기 위해 몇 장면 삭제해야했다고 한다. 나머지 살아남은 장면은 너무나 처절하고 너무나 광기에 휩싸인 잔혹 씬이다. 주인공이 담담하게 살인을 저지르고, 칼질하고, 시체를 재어 놓는 것에 대해 관객이 납득은 할 수 없지만 그의 광기의 근원은 짐작할 수 있다.

하버드 출신으로 예일 출신을 깔보고, 자신보다 나은 명함과 자신보다 나은 아파트에 분노를 품고, 그것이 살인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가서 패트릭 베이트먼은 지독한 자아분열을 겪게 된다. 영화는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 않는다. 관객도 그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 패트릭 베이트먼에게는 실제였던, 상상이었을지라도 언젠가는 폭발할 살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사이코>를 본 관객이 살의에 빠져드는 패트릭 베이트먼에게서 월가의 ‘레이더스’로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 누구에게나 잠재해 있는 살인본능의 그림자란 것을 느끼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을 듯 하다.

이 영화는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고, 곧 국내에 정식 개봉될 예정이다.

 

감독: 매리 헤론 출연: 크리스챤 베일, 윌럼 대포, 사만다 마티스 한국개봉: 2000/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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