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류] 차이밍량의 세기말
중국영화리뷰 2008/02/21 08:41 |
[Reviewed by 박재환 1998/?/?] ........ 이 영화에 대해 혹시 호기심을 가졌을 영화팬을 위해 줄거리부터 잠깐 소개한다.
사오강은 부모와 함께 타이페이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포르노 비디오업자를 애인으로 갖고 있는 어머니는 집에 들어오면 방에 들어앉아 포르노 비디오만 본다. 퇴직 후 무료한 나날을 보내는 아버지는 게이 사우나를 드나든다. 그는 방 천정에 물이 새는 것을 막으려고 이리저리 시도해 본다. 어느날 사오강은 길에서 우연히 고교동창 시앙키를 만난다. 그는 그녀가 일하는 영화촬영 현장에 놀러간다. 감독은 마네킹으로 물에 뜬 시체를 연출하는데 번번히 실패한다. 진짜같지 않다는 것이다. 감독은 사오강에게 시체역을 부탁한다. 촬영이 끝난 후 사오강은 시앙키와 섹스를 한다. 다음날 그는 목에 심한 통증을 느낀다. 약도 발라보고 침도 맞아보지만 원인 모를 통증은 점점 심해만 간다. 샤오강은 자살까지 생각한다. 그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심령술사의 치료를 받으러 태창市로 간다. 호텔에 묵는 동안 아버지는 게이 사우나를 찾아가고 샤오강도 같은 생각을 한다. 두 사람은 어두운 사우나에서 서로를 모르는 체 관계를 맺다가 서로를 보고 경악한다. 그 날밤 어머니는 방에서 물이 넘쳐나는 것을 발견하다. (▶ 키노 98년 2월호 87페이지에서)
이 영화는 어둡다. 왠만큼 어두운게 아니라, 엄청나게 컴컴하다. 그것은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장면장면마다 암흑으로 변해버린다. 섹스를 할때는 항상 컴컴하다. 게이사우나를 보여줄 때는 완전히 상상의 나래를 펴야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비정상적인 세상에 대한 보여줄 수 없는 도덕적 한계인가? 그러나 차라리 밝은 세상에서의 섹스보다 암흑의 몸부림이 훨씬 영화적으로 낫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게 많은 상상의 공간과 사색의 시간을 주니까 말이다. 처음 사오강이 여자친구와 관계를 맺을때는 단지 화장실 불을 꺼고 커텐을 쳐야한다는 말에서 바로 연결되어 버리는 섹스 씬에서 당황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 섹스만이 유일한 정상적인 인간관계가 되어 버린다. 이 영화에서는 말이다.
이 영화는 음악이 없다. 그러고 보니 음악없는 영화를 보는 것도 참 희한한 경험이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영화에 음악을 넣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음향효과는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하나는 소음이고, 또하나는 완벽한 침묵이다. 창문을 열면 들려오는 대만의 교통소음은 사람이 살아가는 소리이지만 관객은 사고의 자유를 방해받는 순간이 된다. 그리고 침묵의 순간에는 출연자들이 자기만이 아는 고독을 해소하기 위해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을 때이다.
세대의 단절과 접촉이란게 완전히 뜻밖의 상황설정이다. 이 영화에서 채감독은 한 가족이 맞닥뜨리는 재난의 구조를 보여준다. 결코 한자리에 모이지 않는 분열된 가족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욕망의 탈출구를 찾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게이들 사우나에 가서 동성애를 하고- 음, 아주 속된 표현으로 그런걸 비럭질이라고 한다.그런데 오늘날 그런 표현을 사용한다면 커밍아웃한 우리나라의 동성애자들이 항의하고 인터넷에서 무슨 리본운동 펼치고 난리겠지... - 어머니는 포르노비디오업자랑 놀아나고 집에선 방안에 쳐박혀 포르노를 보는게 일이다. 그런 자랑스런 아버지 어머니 밑에서 커나가고 있는 우리의 대만 청년 이강생은 어떤가? 목을 삐딱하게 하고 오토바이를 탈때 관객들은 분명 그에게 애정을 느꼈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래도 많은 말을 하러 하지만 아들이 아버지에게 한 말은 딱 두 대사뿐이었다.
한번은 아픈 어깨로 오토바이 타고 가다 좁은 길목에서 쓰러질 때 아버지가 괜찮니? 하고 물었을때. 아들이 한 말은 "뿌야오 꾸안(不要關!) 상관말아요!"란 대사. 또 하나는 접골원에서 목뼈 경추부위를 마구 휘젓고는 식당에서 밥 먹을때 아버지가 불쌍한 아들에게 "애야 이 완탕 맛이 어떻니" 그러자 그 놈의 아들이 또 내뱉은 말 "워 뿌 어(我不餓) 나 배 아고프단 말에요"
그렇게 이 부자의 관계는 삭막 그 자체인가? 그래도 낫다. 어머니가 밖에서 놀아날 동안 아버지는 아들을 신경써 주니까.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이 결국은 게이사우나에서 만나 그놈의 비럭질(이건 비럭질이란 표현이 가장 적합한 경우임!)을 하고 나서 상대가 아버지요, 아들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에 아버지는 얼떨결에 아들의 뺨을 때린다. (로마최후의 날 비디오 나왔음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뿐!)
이 영화에서 눈 여겨 볼 것은 물론 섹스이다. 그리고 끝없이 흐르는 물 소리이다. 아버지가 거처하는 방의 천장에선 물이 뚝뚝 떨어지고, 아버지가 화장실에서 오줌을 눌때는 관객들이 전부 숨을 멈출 만큼 오줌소리가 거칠다(!) 또한 잔에 물 따를 때도, 태창의 호텔에 묵을때. 옆방에 여자가 들어갈때 바로 그 장면에서 주전자에 물 따르는 소리가 너무도 크다! 모른게 엄청난 상징효과를 준다. 마지막에 부자간의 비럭질끝에 두루마리 휴지 뜯는 소리마저 그러한 암울한 힘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영화가 그토록 절망적일까? 이강생은 아버지가 나가 버린 여관방에서 겨우 아침을 맞는다. 목을 옆으로 저으며... 그리고 창문을 열어젖히는 순간. 장시간 침묵만이 강요받던 스크린에서 쏟아지는 대만의 소음. 자동차 소리는 생동하는 새출발을 의미한다? 뭐 해석은 자유이고 말이다.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그리고 관객들은 두시간을 꼬박 채우는 침묵과 암흑과 비럭질속에서 채명량이라는 힘있는 감독과 예사롭지 않은 영화세계를 맛보게 된 흥분과 감동에 자리를 뜨게 되는 것이다. (박재환 1998/?/?)
하류(河流) 출연 이강생 마오티엔 류사오링 / 1997년/ 115분
감독: 차이밍량 (蔡明亮)
출연: 이강생,양귀매,허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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