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귀학당] ‘3류’ 왕가위, ‘배우’ 왕가위 (유진위 감독, 猛鬼學堂 1988)

2008. 2. 21. 08:34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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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01-8-14) 아마 정성일 전 키노 편집장이 저 제목을 본다면 굉장히 화낼 것 같다. 그 분은 진짜 왕가위의 열성 팬이니깐 말이다. 왕가위 감독 작품을 극장에서 처음 본 것은 춘천에서 본 <중경삼림>이었다. 몇 번씩 꼬였던 내 인생에서 뒤늦게 찾아온 왕 감독은 나에게 다시 한 번 영화에 대한 환상을 품게 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각설하고.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홍콩영화’라면 주성치 아니면 왕가위로 대변되는 소수의 ‘오타쿠’급 수준의 팬을 거느린 키치 혹은 엽기문화의 아이콘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도 한때는 <영웅본색>의 비장미에 두 주먹 불끈 쥐고 눈물 흘리던 시절이 있었고, 왕조현의 각선미에 가슴 뛰던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다.

그럼, 우리가 일반적으로 정의하는 ‘홍콩영화’는 어떤 영화인가. 몇몇 ‘홍콩’에서의 스타급 배우들이 얼굴을 내비치고, 쿵후나 경찰, 도박, 강시 등 몇 개의 장르(소재) 습관에 함몰된 자기복제와 자아분열, 그리고 패러디와 붕어빵 제조공정을 거쳐 단시간에, 효율적으로 만들어진 함량미달의 작품을 일컫는다. 만약,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전형적인 ‘홍콩’영화가 아니라, 홍콩에서 보기 드물게 나온 홍콩’영화’인 셈이다. (사실, 따옴표를 저렇게 하는 것은 키노의 수법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주성치 영화는 모두 ‘홍콩’영화이고, 왕가위 감독의 작품은 모두 홍콩’영화’인 셈이다.

과연 그럴까. 지난 달 홍콩에서 개봉되어 기록적인 흥행성공을 거둔 주성치의 <소림축구>는 2년 여의 준비 기간과 특수효과에 들인 공로를 염두에 두면 홍콩’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왕가위가 관여한 이 한편의 영화가 바로 왕가위가 만든 ‘홍콩’영화라는 것이다.

서극을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영화감독들이, 그리고 대부분의 홍콩 영화배우들의 출발은 홍콩의 TV프로그램이다. 기록에 따르면 1988년 7월 7일, 홍콩에서 <열혈남아> 즉, <몽콕하문>이 개봉되어 왕가위 감독이 갑자기 홍콩의 쓰레기영화 더미에서 우뚝 쏫아 오를 때까지 그의 궤적도 여느 홍콩영화인과 다름없었다. 그도 TV프로그램 제작으로 영화인생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곧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판에 뛰어든다. 왕가위 감독의 첫 시나리오 작품은 1983년 진훈기 감독의 <공심대소야>(空心大少爺)이다. (그 전 해 만들어진 <채운곡>(彩雲曲)의 시나리오 작업에도 이름이 올라있다) 그리고 장국영 주연의 <용봉지다성>(85)과 담가명 감독의 <최후승리>(87) 같은 비교적 잘 알려진 작품을 포함하여 10편 남짓의 시나리오를 썼다. 그리고, 놀랍게도 몇 편의 영화에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배우 왕가위라.

어쨌든 쓰레기영화(이 표현은 왕정이 자신의 영화를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와 진배없는 홍콩영화판에서 자기만의 영화세상을 만들기 전에 왕가위가 시나리오를 맡은 작품 중에 <맹귀차관>(猛鬼差館: Haunted Cop Shop)(87)이란 작품이 있었다. 유진위가 감독을 맡았고 왕가위가 함께 시나리오를 담당했었다. (유진위와는 <동사서독>-<동성서취>관계로 유명하다) <맹귀차관>은 장학우와 ‘허’브라더스의 허관영이 출연한 골든 하베스트 작품으로 개봉당시 1,100만 홍콩달러를 벌어들이는 흥행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는 발 빠르게 속편이 만들어져서 이듬해 <맹귀학당>(猛鬼學堂 Haunted Copshop II)이 개봉되었다. 여전히 유진위가 감독과 각본을 맡았다. IMDB에 따르면 왕가위는 속편의 시나리오도 맡은 것으로 되어있지만 홍콩쪽 영화DB에는 왕가위는 執行監製(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를 맡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왕가위는 배우로도 출연한다. 눈을 부릅뜨고 지켜봤더니 ‘출연’이랄 것은 없고 ‘카미오’ 정도이다.

이 영화는 전편 <맹귀차관>과 비슷한 줄거리에, 똑같은 출연진이 등장하는 전형적인 ‘홍콩’영화이다. 홍콩 시내에 강시가 나타나고 홍콩당국은 긴급회의를 갖는다. 난상토론 끝에 홍콩경찰이 강시들을 일망타진하기로 결정한다. (비디오 자막으로는 ‘김매기’라고 나오는) 金麥基(장학우)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맹초(허관영)와 함께 강시 소탕에 나선다. 물론, 7~8명의 엄선된 홍콩경찰들이 홍콩강시영화 특유의 소란을 떨며 유치한 웃음과(난 한 차례도 웃지 못했다. 비극이다.–;) 한숨만 내쉬게 하더니 서둘러 막을 내린다. 솔직히 평가하자면 이 영화는 꿈 많은 아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안겨주고자 영화를 만드는 심형래의 수많은 영화와 비슷한 레벨이다!!!

‘강시’는 홍콩영화의 또 다른 스타이니 다음에 홍금보의 <귀타귀>리뷰할 때 자세하게 설명하겠다. 영화에서 허관영이 강시가 된다. 그의 신체변화에서 강시의 존재를 알 수 있다. 일단 기존 강시에게 목을 물리면 보름달이 떠오르면 강시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달이 구름에 가리면 그는 다시 인간이 잠깐 돌아오고 말이다.

홍콩의 강시는 서구의 드라큘라와 마찬가지로 전염성을 가진다. 이것은 오늘날 에이즈의 무한복제가 상징하는 세기말적 공포를 상징한다.(고 오버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홍콩 강시는 인간이 유효적절한 소도구(망치와 말뚝)와 상징체계(각종 부적)등을 동원하면 제어가능하다. 그리고 그들의 원혼을 달래어주면 인간세상은 만사형통된다는 것이다.

참, 왕가위가 언제 나오냐고? 홍콩경찰들이 강시박멸에 총동원될 때 한 살인현장에 나타난 형사반장 역을 맡는다. 머리가 잘려진 시체가 발견되고, “(머리는) 찾았어?”같은 짧은 대사 몇 마디를 하고는 후다닥 트렌치 코트를 휘날리며 사라지는 역이다. 윽!

이 영화를 보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졸작 <1941>이 생각날 것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이 영화 때문에 왕가위가 비난 받을 이유는 전혀 없다. 이 영화는 유진위 영화이다. 이 영화가 유진위 영화임을 염두에 둔다면 “와, 어찌 재밌더라~”라는 소리가 나와야 할 것이다. 역시 영화수용에 있어 작가주의란 기대치가 다른 모양이다. “쩐더마?” (박재환 2001/8/14)

[맹귀학당|猛鬼學堂, Haunted CopshopII ,1988] 감독: 유진위 출연: 장학우,허관영,임억련 홍콩개봉: 1988/4/28 票房: HK $10,188,536 

[百度|豆瓣電影|時光網] [王家衛 Wong Kar-Wai 위키|百度|豆瓣電影|時光網|IMDB|hk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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