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선] 해안초소에서 생긴 일 (김기덕 감독 The Coast Guard 2002)

2008. 2. 18. 22:12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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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03.6.23.) 김기덕 감독의 여덟 번째 작품 <해안선>은 작년(2002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던 영화이다. 그 전 해 배창호 감독의 <흑수선>을 개막작으로 선정하여 분명 깊은 속앓이를 했을 영화제 선정위원들은 영화제의 위상에 걸맞은 작품을 선정하기 위해 골머리를 싸맸을 것이고 국제영화제에서 뚜렷한 위상을 지닌 김기덕 감독의 신작 <해안선>에 큰 기대를 가졌을 법하다. 김기덕 감독이 어떤 감독인지 소문만 들었을 많은 영화 팬들 또한 장동건이 출연하는 영화에 일말 기대를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영화가 언제나 그러하듯이 이 영화는 엄청난 논란(그것도 순전히 영화잡지나 웹에서 한동안 소란스러웠을 뿐이지만)을 야기했다. <<필름2.0>>을 보니 토니 레인즈, 김영진, 그리고 이지훈까지 가세하여 김기덕을 물어뜯었었다. 김기덕 사람이 원래 그렇고, 만드는 영화가 으례 저랬는데 이제 와서 김기덕의 전향을 바라기라도 했었단 말인가. 물론, 한국에 전무후무한 작가주의적 감독에 대한 애정표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김기덕 감독은 원래 제작비 ‘2억'(20억도 아닌 2억!)의 소품을 생각했었단다. 그런데 초절정인기스타 장동건이 “나도 한 아트 한다”며 무보수 혹은, 초염가 개런티로 김기덕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해안선>은 주류영화계의 한복판에 내던져졌다. 뚜렷한 기사거리가 없는 한국영화저널리즘에 있어서 김기덕 감독은 보배 같은 사람이다. 만드는 과정이 쇼킹하고, 만들어놓은 영화가 항상 논쟁을 야기 시키기 때문에 말이다. 근래 들어 어떤 한국영화가 “페미니즘 어쩌구…”나, “분단 한국의 지독한 자화상 저쩌구…”하는 사회과학적 용어를 들먹일 수 있단 말인가.

여하튼 사연 많은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의 줄거리를 보자.

지구상 유일의 분단국가 한국의 남쪽에선 북쪽의 무장간첩 침투를 막기 위해 해안선을 따라 철책을 둘러쳐놓고 24시간 불철주야 감시를 하고 있으며, 한밤에 잘못 들어온 민간인들도 사살될 수가 있다는 살벌한 자막이 있은 후, 영화는 어느 해안초소를 보여준다. ‘박쥐부대’의 고참병 강 상병(장동건)은 언제나 ‘초전박살 공비색출!’을 오매불망 꿈꾼다. 고문관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는 열심이다. 그는 한밤에 침투하는 무장공비를 박살내어 포상휴가가고 일계급 특진과 함께 조기전역을 노린다. 물론, 해안마을 건달들은 “요즘 간첩이 어딨어? 국민세금만 축내는 돼지”라고 시비를 건다. 어느 날 야심한 밤에 마을 청년과 약혼녀(박지아)가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에 몰래 들어가서 정사를 나눈다. 하지만 불쌍하게도 이들은 강 상병의 야간 투시경에 걸려든다. 항상 공비사살을 꿈꾸던 강상병은 총알을 아낌없이 쏟아 붓고 수류탄까지 던진다. 결과는? 남자는 팔다리가 사지가 찢겨져 죽고 여자는 공포에 질린다. 물론, 해안마을 민간인들이 항의하지만 강상병은 포상휴가까지 다녀온다. 하지만 부대복귀 후 모든 것이 바뀐다. 민간인 여자는 미쳐서 부대를 돌아다니고, 강상병 또한 조금씩 이성을 잃는다. 결국 강상병은 ‘정신적 사유’로 조기전역을 하게 된다. 미친 여자는 부대원들에게 육체의 노예로 전락한다. 너도 나도 여자를 끌어들인 것이다. 한편 강상병은 자신은 여전히 보초를 서야한다며 초소를 맴돌더니 급기야는 총을 훔치고, 군기를 뺏고 예전의 전우를 상대로 서바이벌 게임을 벌인다.

영화는 정말 끔찍하다. 그 끔찍함은 두 갈래로 진행된다. 군인에 의해 능욕당하는 민간인 여자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군대 자체를 일제시대 위안부를 능욕하던 제국주의 군인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강제 낙태장면 등은 도저히 한국군 군복을 입히고 펼칠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나라 국방부에서 가만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할 정도이다. (이 영화 처음 촬영당시 국방부가 협조를 해 주지 않는다고 언론플레이를 펼친 적이 있는데 국방부에서 명예훼손으로 소송 걸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또 하나는 강 상병의 행동이다. 그는 잘 훈련받은 초소병이고, 적을 때려잡겠다는 의지로 충만한 군인이다. 게다가 민간인을 쏘아 죽였다는 죄책감에 피아의 구별마저 망각한 정신분열체가 되고 만다. 그가 숨어서 초소병들을 하나씩 죽일 때, 그리고 박쥐부대원 개개인들을 이간시켜나갈 때의 광기란 ‘김기덕답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그 리얼리티에 우선 의문이 갈 것이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판문점에 관광온 외국인을 상대로 한국분단 현실에 대해 가이드가 무슨 말을 하는데 조금 오버한 면이 있었다. 모자가 바람에 날렸을 때 그걸 주우러 선을 넘으면 한국에선 보안법으로 감옥갈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나는 웃으면서 들었지만 자막을 통해 그 영화를 볼 외국인들은 남과 북의 첨예한 대립의 비극성을 엿볼 대목일 것이다. …. 아시다시피 김기덕 감독은 해병대에서 5년을 복무했다고 한다. 그의 영화에서 보게 되는 해병대 에피소드는 그게 어느 정도는 실제 경험에서 나온 것임을 관객을 쉽게 짐작하게 된다. (나는 전라도 함평에서 근무했었고, 전라도 해안초소에 대한 전설적인 군대식 이야기를 지겹도록 들었었다!) 민간인 오인 사살에 대해서는 해안초소 어디에서든 있는 이야기이다. 여하튼 그런 개별적인 군 복무중의 사고와 에피소드가 적당히 영화적 상상력에 의해 구현된 것이리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분단 국가의 비극성 어쩌구’하는 것은 애시당초 끼어들 틈이 없는 영화였다. 큐브릭 영화(풀 메탈 자켓)에서 군사훈련을 받으며 반쯤 미쳐가는 장병들이 결국 살인병기로 둔갑하는 것이 설득력 있게 묘사된다. 하지만 민간인을 죽였다는 ‘사고’ 자체에서 부연되는 김기덕식 스토리라인은 장동건의 부담스런, ‘째려보는 눈빛’만 남기고 결코 공감할 수 없는 장벽만을 쳐버린다.

그런데, 완전히 다른 시선을 가져보면 색다르다. 김기덕 감독이 애당초 생각하지 않았던 또 다른 면이 돋보인다. 이 영화는 내가 여태 본 한국영화 중 최고의 호러물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미쳐 버린 여동생 떄문에 광기에 휩싸여 박쥐부대를 점령해버린 오빠 유해진의 모습이 그러하다. 광기에 사로잡혀 민간인에게 기합 받는 군인들. 그 썩어빠진 형상에서 그 어떤 논리적 부조리를 논하리오. 어둠 속에서 스나이퍼로 변신한 장동건의 행동은 이 영화를 완벽한 공포물로 만들었다. <배틀 로얄>보다 더 섬뜩했다.

김기덕 감독 영화는 참 묘한 마력이 있다. 내게는 확실히.(박재환 2003.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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