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부터 미국인이 아닌 한국인은 몇 가지 혼돈에 빠진다. 사무엘의 유무죄에 따라, 미국의 국가 도덕성이 살아나느냐 하는 것. 물론 미군은 미국이니까 미군의 잘못은 미국의 잘못이라는 단선적 평가에서부터, 미군이었든 대통령이었든 미국의 가치관에 어긋나면 그 사람은 유죄판결 받아 미국의 장기적인 국익을 챙겨야한다는 지극히 미국적인 법정의까지.
물론, 이 영화에서는 미국영화(!)답게 사무엘의 무죄가 선고된다. 여기서 이 영화의 원제 <룰스 오브인게이지먼트>에 관심이 간다. <교전수칙>이라고 군인이 전투 중에 꼭 지켜야하는 규칙들이다. 물론, 이런 수칙이 베트남 정글에서, 화염병 속에서, 게릴라 독침 틈에서 지켜질지는 의문이지만, 미국은 그러한 것까지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 영화홍보사가 준 보도자료에 미국의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가 몇 조항 있다. 잠깐 보면,
1. 사격받지 않는 한 사격하지 말라
3. 사격 받았을 경우 지역 내의 모든 민간인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라.
4. 사격 받았을 경우 즉각적인 총격을 종식시킬 만큼의 화력만을 사용하라.
9. 편향된 입장을 취하지 말라. 우리의 임무는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며 갈등을 심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뭐, 이런 것이다. 민간 시위대를 마치 전투 중의 적처럼 취급한다는 발상이 무섭지 않은가?
어쨌든 말도 안되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말도 안되는 영웅을 만들어내더니, 말도 안되는 법정 드라마를 펼치고, 말도 안되는 결말을 이끌어낸다. 법정드라마다운 마지막 대반전도 미약하고, 무엇보다도 주인공의 행동에서 한국 관객이 공감할만 정의도 없다.
이런 영화가 왜 미국에서 실패하지 않았을까? <유령>이 한국에서 실패하지 않은 것과 같은 이유라고? 1990년대초에 아프리카 모 국가에서 쿠테타가 일어났고, 미국 기자 하나가 성난 군중에게 잡혀 맞아 죽는다. 그리고 그 시체는 하루종일 아프리카 신생국가의 장터에 질찔 끌려 다녔다. 뉴스위크지는 그 사진을 대문짝하게 미국에 보도했다. 미국인은 분노했지만, 그 아프리카 국가에 원자탄을 떨어뜨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만약, 그 자리에 미군이 -장교가 되었든, 졸병이 되었든, 스파이가 되었든, 취사병이 되었든- 그 꼴을 당했다면, 미국 여론은 눈 깜짝할 사이에 아프리카 전부를 지구상에서 날려버리려 할 것이다. 미국의 번창 뒤에는 기자보단 군인이 중요해서일까? 이제 헐리우드 영화까지 자신들만의 정의를 만들어간다.
어쨌든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는 잘난 미국의 잘난 국익을 잘도 엿보인다. 비바 아메리카! 이거 보느니 <정>을 한번 더 본다. (박재환 200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