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2003) 광주국제영화제에서 준비한 비장의 카드가 '1960~70년대 일본액션영화 특별전'이었다. 이 섹션을 통해 일본 닛카츠(日活)영화사의 대표작이 소개되었다. 그 중에는 영화관련서적에서나 볼 수 있었던 스즈키 세이준(鈴木淸順;1923~) 감독의 [살인의 낙인]이라는 작품이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시네마떼크의 왕별 '문화학교 서울'이 내놓은 서적 중에 [폭력의 엘레지 스즈키 세이준]이 있다. 책제목만큼이나 폭력과 낭만이 함께 묻어나는 왕년의 감독의 왕년의 걸작을 다시 본다.
스즈키 세이준의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바로 1967년도 작품 [살인의 낙인]이다. 이 영화에 대한 소개 글을 보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일화가 있다. 스즈키 세이준의 이 작품은 (1967년 당시의 관점에서 보자면) 워낙 난해하고 말도 안 되는 내용이라 제작사 닛카츠는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스즈키 세이준 감독을 해고시켜 버렸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스즈키 세이준 감독은 10년 넘게 새로운 작품을 찍지 못했다. 도대체 얼마나 형편없었으면 이런 소동을 일으켰을까. (사실, 1951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도 제작사로부터 형편없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물론 베니스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고 나서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졌지만 말이다. )
[살인의 낙인]은 프로페셔널 킬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막 뜸이 들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통의 새 밥 냄새에 거의 환장할 듯한 반응을 보이는 사이코 기질의 킬러 하나다는 킬러 계에서 랭킹 3위에 올라있는 인물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이 킬러가 새로운 임무를 부여 받는다. 아마도 암흑 계의 거물인사로 사료되는 '야부하라'로부터 요인 경호를 위임 받는다. 누군가를 차에 태워 약속 지점까지만 모셔 가면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지금 관점에서 보자면 유치하다고 할 수 있는 총싸움 장면이 이어진다. 자동차와 건물, 숲 에서 벌어지는 숨 막히는 액션이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 이 총싸움에서 랭킹3 하나다는 넘버2와 넘버4를 사살하는 전과도 올린다. 일본같이 치안이 좋은 나라에서 어떻게 킬러가 저렇게 총을 쏘아 대고, 저렇게 어설프게 총질을 할까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1967년 닛카츠영화사 사장 마인드이다. 얼마나 멋있는가. 주윤발보다 더 멋있고 왕가위보다 더 우아하며 홍상수 저리 가라의 스타일리리쉬라고 손뼉 친다면..... 그게 요즘 복권된 스즈키 세이준에 대한 정당한 평가이리라. --;
어쨌든 이 넘버3는 곧바로 미모의 여인 미사코에게 빠져 든다. 미사코는 하나다에게 외국인을 암살시켜달라는 부탁을 받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대세를 그르친다. 총구에 날아든 나비 한 마리 때문에 임무에 실패한다. 이건 킬러로서는 치명적이다. 실패한 킬러는 랭킹에서 밑바닥으로 강등 당하고 누군가로부터 암살 당하게된다. 그게 이 동네의 법이다. 하나다는 도피행각에 나선다. 또한 그 와중에 미사코에게 사랑을 갈구한다. 미사코는 누군가에게 납치, 감금, 고문, 살해당하고 하나다는 넘버1과 숙명의 대결을 펼치게 된다. 과연 넘버1이 될 수 있을까?
이 영화에서 눈여겨볼 장면 중의 하나가 하나다가 안과의사를 살해할 때의 유니크한 범죄수법이다. 세면대 밑에서 파이프를 통해 위로 총을 쏘는 것이다. 이 장면은 짐 자무쉬의 [고스트 독]에서 그대로 답습된다.
어쨌든 랭킹에 연연하는 킬러가 주인공이란 것이 유치찬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술과 여자를 가까이하는 킬러는 볼장 다본 킬러라는 사실을 영화초반에 보여주면서도 중반을 넘어서면서 주인공이 그러한 전철을 밟게된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이것이 바로 킬러세계 종사자들의 애환이며 주인공의 휴머니즘을 돋보이게 한다.
스타일 측면에서만 보자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평가를 받을만하다. 기하학적인 공간구조, 나비 표본으로 가득찬 집안, 극단적 명암대비로 주인공의 불안을 극대화시키는 것들이 그러하다. 또한 비와 샤워 물의 교차편집, 나비, 새, 비의 이미지 장난(?) 등은 참신함이 넘쳐난다. 형식과 스타일면에서 분명 이 작품은 이후 많은 감독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영화후반에 넘버1과 넘버3가 지존의 자리를 놓고 우스꽝스런 대결을 펼친다. 넘버1은 여유와 멋, 낭만을 즐기는 존재이고, 넘버3은 처음부터 심리전에서 패한 존재이다. 이들이 테이블 위에 총을 나란히 놓아두고 함께 숙식을 하는 장면은 부조리의 극치이다. 그렇게 해서 상대를 쏘아 죽이면 승자가 얻는 것은 단지 킬러 계의 넘버1이라는 애매모호한 명성뿐인 것이다.
영화는 마치 [태양은 가득히]의 라스트처럼 허망한 승리를 보여준다. 어쨌든 재미와 지루함이 적절히 혼합된 흥미로운 작품이다. (박재환.2004)
.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