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과 무릎사이] 악제와 갈등 사이 (이장호 감독, Between the Knees,1984)

한국의 현실에서 놀라운 청년영화를 내놓았지만 온전한 작가주의 거장이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한 감독이 있다. 좋은 작품과 안 좋은 작품을 오가며 한국적 영화상황을 타개하고 있는 이장호 감독이 그러하다. 1984년에 개봉된  <무릎과 무릎사이> 같은 영화가 그러하다.  이 영화 한편을 가지고 한 시절의 한국영화를 규정짓는 것은 문제이고 이 영화 한 편의 흥행 성공을 두고 당시의 영화팬들의 경향을 이야기하는 것도 웃기는 일일 것이다. 그것은 결국 우리나라 영화의 문제점에 대해서 욕하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 스스로를 쪽 팔리게 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영화계는 그랬다. <애마부인>이 대박나면 벗기기 영화가 판을 치고, 박중훈이 뜨면 몇 년간 박중훈 이름만 나와도 욕하는 영화팬이 생길 만큼 박중훈식 코미디 영화가 홍수를 이루었다. <쉬리> 이후에는 충무로가 당연히 물량 공세로 나가고 있고 말이다. 하지만, 이들 개별적인 요소는 전혀 탓할 것이 못 된다. 특히 박중훈의 경우, 최근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한때 충무로에서 제작되는 70여 편의 영화가 모두 자기 하나만을 바라보고 기획되고 만들어지는 형편이니, 인맥이 중시 되는 한국영화 바닥에서 거절도 못하고 억지로 출연하게 된 경우도 많았단다. 그래서 지난 2년 동안 그는 도망가다시피 외국으로 가버렸고 말이다. 이러한 제작 경향은 불행하게도 한국영화계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든다. 이런저런 영화들, 다양한 시도, 입맛 다양한 영화 팬에게 다가가는 노력 대신, 이미 검증 받은 장르에의 집착은 당연히 우리 영화를  세계영화계에서 변방에 머무르게 만들었다. 이제라도, 한국영화계는 한국영화의 정체성을 가진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어야할 것이다.

 <무릎과 무릎사이>는 1980년대 한국을 휩쓴 에로 영화의 하나이다. 이장호 감독으로선 <바보선언>, <과부춤>같은 불세출의 걸작을 만들어 내놓은 동시에 <어우동>과 이 <무릎..>같은 어처구니 없는 영화도 내놓았다. 하지만, 물론 이 영화는 당시의 장르의 집착에 더해 '있을 것은 다 있는 영화'로 완성되었다. 이장호감독이 직접 각본을 쓴 이 영화는 그럭저럭 기승전결이 있고, 갈등구조가 다양하게 얽혀있으며 또한 영화 팬을 우롱하는 듯한 교훈까지 있다.


자영은 음대에서 플룻을 배우는 학생이다. 그의 주위에는 안성기와 임성민이 있다. 자영은 안성기를 좋아하지만 임성민이가 자꾸 접근하니 짜증 난다. 집에는 하루 종일 워크맨으로 마이클 잭슨 노래만 듣고 (당시 유행한) 문워크 춤만 추는 남동생이 있고, 하루 종일 잔소리에 가까운 간섭만 하는 엄마가 있다. 이 집안의 분위기는 어떤 무거운 짓눌림이 있다. 바로 아버지의 외도에 대한 반발로 어머니는 자영에게 순결을 지나치게 강요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안성기 집안은 한국적 정서로 가득하다. 안성기는 한복을 입고 다니고, 검도를 하며, 명창의 공연을 보러 다니고, 어머니와 다소곳이 앉아 다도를 즐긴다. 그런 상황에서 자영은 갈등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날 밤늦게 귀가하던 자영은 치한에게 겁탑을 당할 뻔 한다. 여기에 어머니의 시선이 곱지 못하자 자영은 집을 나온다. 그리고 산 좋고 물 좋은 시골에서 자유를 느낀다. 그런데 이 곳에서 도회지 놈에게 겁탈 당한다. 하지만, 자영은 이제 진정으로 자아를 느낀다. 서울로 돌아왔지만, 집안은 더욱 시끄럽게 돌아간다. 새 엄마, 새 아빠, 배 다른 여동생...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던 중 시골에서의 그 때 일을 몰래 촬영한 나쁜 놈이 자영을 불러낸다. 사진을 동네방네 뿌리겠다고 협박하면서. 어쩔 수 없이 자영은 그놈을 따라 나간다. 하지만, 이번엔 나쁜 놈이들이 떼거지로 나타나 자영을 윤간하고, 자영은 그 충격으로 자살을 시도한다. 이제 병원 장면. 가족이 모여 처음으로 가족애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모든 방황을 끝낸 자영에게 안성기가 다가간다. 끝.

  몇 가지 요소만 보더라도 이 영화는 짜증 나는 구조다. 여성의 성 관념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과 한계는 요즘 <처녀들의 저녁식사>보면 충분히 알 수 있기에 이 고리타분한 전개에 일단 반감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적인 정서와 서구적인 정서의 갈등은 플룻과 한복으로 대비된다. 그리고, 순결에 대한 강박관념은 요즘 관객을 거의 기절시킬 만큼 한심하다. <인형의 집>의 니나도 아니면서 말이다. 이런 식이다 "이제 전 자유를 얻었어요. 이젠 진정 자아를 느껴요." 스탠리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안성기의 어쩔 수 없는 스트레오 타입 연기는 이 영화에서도 나타난다. 이보희의 연기 또한 그 시절 여느 여배우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그런 단조로운 표정과 신음 뿐이고 말이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러한 내용의 마무리를 짓는 감독 자신이다. 정신과 의사로 카미오 출연한 이장호는 이보희의 자살 시도와 관련하여 이보희의 엄마에게 그런다. "따님과 좋은 이야기 많이 나누었어요. 정신적인 순결을 중시하도록 하세요..."라고. 참 어이가 없는 결론이다. 물론 맞는 말이긴 하다만 그런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플룻을 맨날 갖고 다니는 이보희의 행로를 따라가야 했단 말인가?

  참, 이보희가 풀룻을 애지중지하는 것은 좀 생각해 볼만한 상징성을 가진다. (이보희는 어린 시절 플롯을 가르치는 외국인 강사에게 성적 행위를 당할 뻔했다. 물론 엄마가 그 모습을 보고 뜻밖에도 아이를 때리고 난리였다) 초반에 이보희가 엄마와 짜증 나는 전화통화를 끝내고 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혼선이 되어, 웬 신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이에 이보희가 전신을 부르르 떨며 플룻으로 자기의 몸을 애무하는 장면이 있는데, 1984년에 나온 영화란 것을 염두에 둔다면 상당히 자극적이며 획기적인 장면이었다.

  어쨌든 이 영화는 이장호라는 한국의 대표적 감독이 1980년대 한국 여인의 자아상실과 그 극복과정, 가족애의 복원을 그리려'한' 영화였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오늘날 보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지만. (박재환.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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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Between the Knees) ▶감독: 이장호 ▶출연: 안성기,이보희,이혜영,김인문,김지영,나한일 ▶제작: 태흥영화 ▶개봉: 1984년 9월 30일 ▶상영시간: 97분
박재환 영화리뷰 kinoc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