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수녀들] 구마의 길, 연대의 힘 (송혜교 전여빈 주연,2025)
‘파묘’의 장재현 감독이 한예종 시절에 만든 단편영화 [12번째 보조사제](2014)는 명동 인근 한 오래된 아파트에서 행해지는 김 신부와 최 부제의 구마(驅魔) 의식을 담고 있다. 여고생의 몸에 든 악령을 쫓아내기 위해 금지된 종교의식을 행한다. 장 감독은 이 이야기를 <검은 사제들>로 스케일을 키운다. 톱스타 김윤석, 강동원이 캐스팅된 영화에서는 박소담의 몸에 스며든 악령을 쫓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검은 사제들>의 제작사(영화사집)는 다시 한 번 인간의 몸에 사로잡힌 악령을 내쫓기 위한 굿판을 펼친다. 지난달 개봉된 <검은 수녀들>이다. 이번 작품에는 장재현 감독이 관여하지 않았다. 영화는 전작의 어두운 그림자를 뛰어넘기 위한 전복의 방식을 택한다.
서울에 ‘12형상’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 희생자는 여고생이 아니라 어린 소년 희진(문우진). ‘장미십자회’ 소속의 수녀 유니아(송혜교)는 아이의 몸에 침투한 악령을 쫓아내려고 애쓰지만 실패한다. 악령의 힘은 더 세지고 희진의 엄마마저 자살하면서 교계는 신중해진다. ‘신부 서품’도 못 받은 수녀에게 구마의식을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심이 아니라 의술로 희준을 치료할 수 있다는 바오로 신부(이진욱) 또한 유니아 편이 아니다. 하지만 유니아 수녀는 포기하지 않고, 의사 수녀인 미카엘라(전여빈)와 함께 구마의식을 진행하려고 한다. 과거 수녀였던, 이제는 무녀의 길을 걷고 있는 효원(김국희)과 제자 애동(신재휘)과 함께 위험한 구마의식에 뛰어든다.
장재현 감독의 구마 스토리는 자의식 강한 신부와 아직은 실력을 알 수 없는 보조사제가 한 팀이 되어 좌충우돌하는 종교의식이 핵심이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인간의 몸에 깃든 악령의 존재를 밝혀내고, 일련의 제의를 통해 악령을 끄집어내어 ‘부마자’에게 평안을 안겨주는 것이다. 권혁재 감독의 <검은 수녀들>도 똑같은 여정을 보여준다. 대신 성별의 전환이 눈에 띈다. 신부 대신 수녀가 앞장서고, 희생자 또한 어린 소녀가 아니라 어린 소년이 된다. 그리고, 이런 변화에 더해 종교(?)간 이종결합, 연합작전을 시도한다. <파묘>가 남긴 영향이랄까. 무당이 구마의식의 재단에 기괴한 북소리를 더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에는 많은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줄곧 담배를 피우고, 말을 거칠게 하는 유니아 수녀에게도 분명 복잡한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수녀가 되기 전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어쩌면 로마에 있다는 김범신, 최준호 신부와의 얽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니아 수녀는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에 ‘가방끈’이 짧다고 잠깐 언급될 뿐 전사는 전해주지 않는다. 미카엘라 수녀 또한 마찬가지이다. ‘의사’이며 ‘수녀’인 그녀에게도 고달픈 과거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귀태’라고 언급되는 그들의 숙명에 대해 감독은 '연대'의 긴 이야기를 하는 대신 현재에 집중한다. 감독은 신부 대신 수녀를 선택하면서 그 보조사제역과 함께 무당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내세운다. 그런데 이 판국에 ‘타로’까지 끌어들이는 것은 설정 과잉으로 보인다. 유니아 수녀의 희생을 발판 삼아, 미카엘라가 부상한다. <엑소시스트> 이후 구마의 길은 계속될 것이고, 굿판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검은 무당>이든 <흰 박수>든 ‘12형상’만 잘 잡으면 되는 것 아닌가?
▶검은 수녀들 ▶감독:권혁재 ▶원안:박수민 임필성 ▶각본:김우진 ▶각색:오효진 ▶출연:송혜교 전여빈 이진욱 문우진 허준호 김국희 신재휘 ▶우정출연:강동원 박소담 ▶제작사:영화사집 ▶배급:NEW ▶개봉:2025년1월24일/114분/15세이상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