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느와르] 정성일, 소원성취하다 (정성일 감독 Cafe noir, 2009)

2019.09.02 17:49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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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10.12.15) 10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가 막 자리를 잡아갈 무렵, 얼터너티브 무비(대안영화)를 내걸고 출범한 영화제가 하나 있다. 전주국제영화제이다. 초대 영화제위원장은 프로그래머는 당시 영화잡지 <<키노>>의 편집장이었던 정성일 씨였다. ‘종이영화저널이 점차 종말을 고해가던 시절에 <키노>라는 잡지는 특이했다. 정 편집장의 현학적인 글과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우린 이런 영화만 본다라는 자만심과 자긍심으로 가득했던, 정말이지 안 팔리던 잡지였지만 일부 소수 매니아(오덕후)는 그 잡지와 그 편집장의 글에 열광했었다. 1회 전주영화제를 통해 정성일 편집장은 솔직히 자신이 보고 싶어했던 영화만을 주로 프로그래밍한 게 분명하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사담 탱고>라는 작품이다. 상영시간이 무려 438(7시간 28)에 달하는 끔찍한 영화였다.(이 영화는 8년 뒤 9회 전주영화제를 통해 재상영되었다) 영화제에서는 영화상영 전에 프로그래머가 무대 앞으로 나가 영화소개를 짧게 해준다. 거의 영화에 대해서라면 수다쟁이인 달변가, 그리고 무엇보다 열혈 시네필인 정성일 프로그래머는 <사담 탱고> 시작도 하기 전에 그 영화만큼이나 긴 소개를 해주려고 안달이었다. 그러자, 영화변방 전주에서 처음 펼쳐지는 국제영화제 심야상영관에서, 정성일이 누군지 모르는, 객석에 앉아있던 관객 한 분이 소리를 지르며 영화나 보자고 채근하는 돌발사태가 벌어졌다. 그날 그 영화를 끝까지 본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나도 모른다. 영화는 저녁에 시작되어 철야상영 되었으니. 내가 본 장면은 흑백화면에 소 한 마리가 나온다. 느릿느릿.. 꿈결같이.. 잠이 든다. 그런데 언뜻 깨어보니. 여전히 소가 느릿느릿 걷고 있다. 그런 영화였다. 정 편집장, 아니 정 프로그래머는 이 영화를 다 보기나 하고 소개했는가 싶은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정 프로그래머는 전주영화제를 떠났고, 잡지 <키노>는 폐간되었다. 정 편집장은 마감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교수생활과 글쟁이 평론가로 여전히 막강한 저널권력누군가에게는 휘두르며 건필을 과시하였다. 그가 영화감독으로 입봉할 것이라는 소문은 그때부터 나돌았고 결국은 소원성취했다. 

<카페 느와르>라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이미 공개되었다. 이 영화도 상영시간이 198분이다. 3시간 18분에 이르는 역작이다. 소는 안 나오지만, 사람이 밑도 끝도 없이 걸어가는 장면이 속출하는 작품이다. 남자 하나가 여자 셋? (넷인가) 연애담을 펼치는, 얼핏 들으면 홍상수영화의 정성일버전으로 착각할만한 영화이다. 

이 남자, 여자 때문에 방황한다 

학교선생 영수(신하균)는 치정의 한복판에 서 있는 연약한 남자이다. 동료선생 미연(김혜나)과 사귀다 요즘은 학부모 미연(동명이인, 문정희 분)과 불륜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미연의 남편이 해외에서 귀국하면서 둘의 관계는 위태롭다. 영수는 그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만 괴팍한 남편으로 인해 파경에 이른다. 절망감에 사로잡힌 영수는 광화문 청계천 밤거리를 헤매다 선화(정유미)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통해 순수와 사랑, 기다림과 절망의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하지만 삶은 정해져 있고, 죽으려는 자는 죽게 마련이고, 살려는 자는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다. 

시네필, 영화감독이 되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굉장히 달변가이며, 안나 윈투어를 능가하는 지극히 자의식 강한 편집()증세를 보여주었다. 모든 영화매니아가 그러하듯이 정성일 편집장은 세상의 모든 영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장르의 영화를 섭렵했고, 자신의 기준을 세웠고, 문하생을 양산했다. 쇼 브러더스 깡따위부터 당연히 프랑스 누벨버그까지. 그리고 해마다 <시네21>에서 올해의 영화베스트를 뽑는다면 언제나 난 별점을, 점수를, 등수를 줄 순 없다면서...” 듣도 보도 못한, 그래서 호기심 갖고 나도 한번쯤 찾아보게 만드는 그런 리스트만 나열했다. 그런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카페 느와르>를 만들었으니 우선 생존(?)해 있는 <키노>팬들이, 그에게 심한 모욕을 당했을 영화감독들이, 그리고 충무로의 제작자들이 이 영화를 보고 싶어할 것이다. “그래, 넌 얼마나 잘 만드냐..”며 말이다. 

정성일은 오래 전부터 그런 말을 했다. 프랑스 누벨버그의 트뤼포 감독이 아마 한 말일 것이다. “(영화를) 많이 보고, (영화에 대한 글을) 많이 쓰고, 그리고 자신이 직접 영화를 만들어라.”. 정성일은 누구보다 많은 영화를 보았고, 누구보다 많은 영화에 대한 글을 썼고(나는 <시네21>이 그에게 왜 그리 많은 지면을 할애해주는지 도대체이해가 안 된다.) 결국 소원성취한 것이다. 

카페 느와르에는 액션이 없다 

영화는 정성일 편집장의 취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 이영수라고 드러날 때 듀나가 먼저 떠오른 것은 나뿐인가. 이 영화의 첫 장면은 한 소녀가 햄버거 가게에서 커다란 햄버거를 꾸역꾸역 먹는 장면이다. 여자애가 품의없이. 그냥 한입 베어먹고 말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다. 한 입, 또 한 입, 10, 20... 1, 2... . 그 순간 정성일 편집장이 지독한 후효현(후샤오시엔)의 추종자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는 <남국재견남국>을 자신의 최고영화 리스트에 올려놓았었고 그 영화의 오토바이 롱테이크 씬을 초단위로 읊조리는 평론가였다. 바로 그 첫 장면이후 관객은 끊임없이 걷고, 이야기하고, 한쪽방향으로 이동하는 배우의 롱테이크 씬을 만끽하게 된다. 어쩌겠는가. 지독한 오마쥬일테니 말이다. 그런 반복을 통해 관객은 이영수라는 남자의 심적 방황과 사회적 치유방안을 나름대로 정리할 여유를 가질 테니 말이다. 저 길 끝까지만 일단 가라. 그러면 다음 장면이 나오고 살 방도가 생길테니. , 그런데 어쩌겠는가. 다음 장면에서도 또 걷고 달린다. 

그가 <키노>를 떠난 뒤에도 여전히 <>지와 <시네21> 등의 저널을 통해 홍상수 작품에 대한 흠모의 정을 보내더니 기어이 자기영화에는 영화’ <극장전>출연시키는 파격을 보여준다. 그리고 박찬욱의 <올드 보이>와 봉준호의 <괴물> 등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보여준다. 반면 그가 그렇게 존경하는 임권택에 대한 그림자는 도대체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게 미스터리이다. 아마도 이건 그가 다음 작품을 위해 남겨놓았을 것 같다. 충분히 가능하다. 왕가위도 <동사서독>을 만들었고, <일대종사>를 찍고 있으니 정성일이 다음 작품으로 <최배달>이나 <시라소니>를 찍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기대된다. 

그래서 이 영화가 재밌냐고? 무슨 소리인가. 감히 정성일 편집장의 일생의 역작을 재미로 보다니. 사실 이 영화 무지 재밌다. 홍상수 감독 영화만큼 재밌다. 만약 헐리우드의 파워제작자 손에 필름이 넘어갔다면 이 영화는 정확히 1/3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창고에서 산화되든가 아님 DVD셔플에서나 만나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영화를 많이 보고, 그 영화에 대한 많은 글을 쓰고 그리고 자신의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는 점에서 영화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으로서는 완전 소원성취한 것 아닌가. 영화판에 있는 사람은 그를 알지라도 대부분은 그를 모를 것이다. 그러니 그가 어떤 글을 썼는지 한번 인터넷으로 찾아보기 바란다.

오늘 기자시사회에서 받은 몇 페이지 안 되는 팜플렛에서조차 정성일의 현학적인 만장설을 만날 수 있었다. 

장 뤽 고다르가 <미치광이 피에로>를 만들고 나서 이 영화는 한편의 영화가 아니라 영화를 향한 시도라고 말했다. 이말은 <카페 느와르>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것이다. 여기서는 자연스러움과 조화와 합일이 아니라 부자연스러움과 충돌과 파열이 우선한다. 혹은 그 양자가 교차된다. 의도된 어색함, 다른 인물들에 의해 주문처럼 반복되는 대사들, 내레이션과 화면, 혹은 대사의 시간의 화면의 시간의 화면의 (이건 무슨 문장이지? 편집실수인가? 정 편집장은 실제 가끔 이런 비문을 남용하기도 한다) 시간의 불일치 혹은 시간과 공간의 비약, 넌센스에 가까운 삽입장면들의 가정(假定)과 실제의 혼용, 꿈과 현실의 도착 등등 <카페 느와르>는 하나의 드라마로 받아들여지기를 한사코 거부하며 이 같은 반관습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새롭게 사유하고 있다... 

, 말씀 잘하신다. 정성일 감독은 학창시절, 편집장 시절 영화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서적도 많이 탐독한 모양이다.(모름지기 글쟁이는 탄탄한 인문사회학적 소양을 갖추고 있어야한다) 그와 단 한번 술자리를 같이 했을 때 그가 자신은 난 꼬뮈니스트다라고 말한 것을 난 아직도 기억한다. 그것은 학창시절 열혈 청년들이 사회부조리에 대한 반발심에, 몇 권 읽은 사회서적 나부랑이에 흥분하여 떠들던 그런 차원으로만 받아들였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미연 남편이 뜬금없이 나도 한때는 사회주의자였어.”라는 대사를 내뱉기에 깜짝 놀랐다. 물론 그의 정치적 스탠스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방송 쪽에 있다보니 이 작품에서 영화만큼이나 노출되는 TV화면에 관심이 갔다. 영화에서 가장 서스펜스가 넘치는 순간은 신하균이 미연 남편을 올드보이 장도리로 죽이려할 때 그 남편이란 작자는 TV 심야토론프로그램을 열심히 본다. 나경원, 전병헌 의원과 제성호, 진중권 교수, 김제동 등이 패널로 나왔던 손석희의 <백분토론> 400회 특집이었다. 그리고, 보신각 타종장면과 함께 그 유명한 KBS장면도 나온다. 그 어수선한 상황과 누구누구 물려가라라는 격한 소리가 넘쳐나는 장면이 영화에 나온다. 감독은 영화 틈틈이 자신의 정치적 목소리도 충분히 깔고 있다. 그런데 아마도 외국인이 보면 가장 감탄할 장면은 아마도 청계천일 것 같다. <퐁네프의 다리>를 가볍게 뛰어넘는 청계천 이미지를 주입한다. 순전히 콘크리트 하천으로 폄하하던 그 청계천이 이 영화에서는 절망하는 현대인의 가장 친근한 백그라운드로 활성화되었다. 이게 이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 광경이다. 

이 영화는 홍상수스타일의 여관(여인숙) 치정극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 타이틀 밑에 작게 들어간 세계소년소녀교양문학전집이 대표하는 말랑말랑 멜로 성장드라마이다. 여학생의 성장드라마일 수도 있고, 불륜과 연애의 중심에서 베르테르 운운하는 다큰 남자어른의 비극일수도 있다. 우리의 탄탄한 인문사회학자 정성일 감독은 이 영화에 괴테의 책과 함께 도스토에프스키의 <백야>를 끌어들인다. 알아야 되냐고? 몰라도 된다. 정성일이 누군지 몰라도 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가 누군지 모르고 이 영화를 봐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이다. (박재환, 2010.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