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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영화리뷰

[산사나무 아래] 암울한 시절에도 로맨스는 있기 마련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10.10.08 09:41

[산사나무 아래] 암울한 시절에도 로맨스는 있기 마련

해마다 추석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올 즈음엔 해운대 바닷가에서는 영화의 대향연이 펼쳐진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올해로 15회째를 맞이한다. 세상의 모든 영화제 는 항상 자신들의 영화를 더욱 풍성하고, 더욱 특색 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프로그래머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은 당연히 상영작품 선정. 특히나 개폐막작은 최고의 과제이다. 영화제의 위상을 높이고, 어느새 차갑게 느껴지는 바닷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수영만 요트경기장 야외상영장에서 영화를 관람할 PIFF팬들도 만족시켜줘야 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아바타>를 내걸 수는 없잖은가. 프로그래머들이 1년을 공들여, 아니 영화제작단계에서부터 찜을 해둔 작품이라도 막상 뚜껑을 열었을 경우 관객을 굉장히 실망시킬 수도 있으니 말이다. 부산영화제도 15년을 하다 보니 그런 실망을 안겨준 경우도 꽤 된다. 이번 15회 개막작품은 중국 장이모우(장예모) 감독의 <산사나무 아래>가 선정되었다. 저녁 개막작 상영에 앞서 기자들을 위한 사전 기자시사회가 열렸다.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백화점으로 등재되었다는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9층의 CGV 6관에서 진행되었다. 영화상영 뒤에는 감독과 배우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식기자회견이 있었다. 이미 4회 때 폐막작으로 <책상서랍 속의 동화>가 상영되었고 이후 몇 차례 한국을 찾았던 장예모 감독은 인사말을 통해 이번 영화제를 끝으로 15년 동안 헌신한 부산영화제 조직위원장 자리를 물러나는 김동호 집행위원장에게 깊은 존경과 신뢰, 감사의 말을 전했다.

문혁, 순진남녀 연애하다

영화는 중국의 문화대혁명(문혁)시기를 다룬다. 중국현대사에서 문혁에 대해 보통 이렇게 서술되고 있다. 모택동의 광적인 사회주의 대중운동으로 10년간 진행된 문화대혁명은 중국을 정신적으로 황폐화시켰고, 경제발전을 수십 년 정체/역행시킨 전대미문의 이데올로기 투쟁이었다고. 모택동의 반대편에 있던 사람은 모조리 숙청되었고, 공산주의를 기치로 내건 시대상황에서 자본주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주자파’(走資派)라는 올가미를 세워 여기에 걸리면 누구라도 자아비판과, 숙청, 죽음을 면치 못했다. 문혁의 최선두에는 모택동의 열혈 지지자인 어린 홍위병이 있었다. 이들의 무자비한 ‘나대기’로 인해 군대에서는 계급제도가 무너졌고, 대학은 문을 닫아야했다. 장예모의 <인생>, 진개가(천카이거)의 <패왕별희>, 그리고, 소설 <부용진>이나 <사람아 아 사람아> 등을 보면 문혁이 몰고 온 인성의 파멸과 역사의 퇴행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영화는 중국 베스트셀러였던 동명의 원작소설을 영화로 옮겼다. 소설은 1975년, 그러니까 문혁의 끝단을 다루고 있다. 도시의 학생들이 농촌으로 하방한다. 모택동의 지시로 모든 학생들은 농촌의 어려움, 농민의 고난을 몸소  겪고 , 인민과 함께 부대껴야한다는 것이다. 지식인들은 하방당하고 학생들은 방학동안 시골로 가서 농활 비슷한 것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강제사항이지만 당시의 사람들은  농민혁명으로 공산주의 국가를 보위하기 위해 기꺼이 힘든 고난의 길에 나서는 것이다. 징치우도 그렇게 선생님의 인솔로 농촌마을에 들어선다. 비탈에 선 나무 한그루.(분위기는 엽기적인 그녀에 등장하는 그 나무 같다) 마을 이장이 설명하기도 전에 인솔교사가 그 나무에 얽힌 사연을이야기한다. “저 산자수 나무는 영웅의 나무이다. 항일시기에 수많은 투사들이 일본군과 영웅적으로 싸우다 장렬하게 죽어가는 것을 다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외지인들은 마을사람들보다 더 낭만적으로, 그리고 더 의식적으로 그 나무에 매료된다. 징치우는 이장 댁에 머물게 된다. 징치우는 그곳에서 라오산이라 불리는 한 젊은이를 만나게 된다. 지질탐사대 대원으로 이곳에 와있는 고위간부의 아들이다. 징치우의 아버지는 주자파로 몰려 투옥되고, 어머니는 학교교사에서 한순간 청소부로 전락하고 항상 사상투쟁의 대상이 되어 어렵게 살고 있는 형편이었다. 징치우에게 있어서는 라오산은 출신성분이 다른 존재였다. 그런데 라오산은 징치우의 낡은 만년필을 보고나서는 새 만년필을 갖다 주고, 체육시간에 운동복도 없이 배구를 하는 것을 보고는 옷도 사준다. 그리고 노동개조 막노동판에 나가 발을 다쳤을 때는 기꺼이 장화도 사주고 자전거에 태워 자신의 지위를 활용하여 군병원에서 치료도 받게 해준다. 징치우는 출신의 벽을 실감하면서도 어느새 조금씩 라오산에게 끌린다. 징치우의 어머니는 불가능한 현실을 직시하고 어린 딸에게 이야기한다. 혹시 아무 일도 없었냐고. 사람들이 알게 되면 우리는 사상투쟁에서 끝장날 것이라고. 징치우와 라우산의 정은 깊어 가는데 어느 날 청천 벽력같은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라오산이 백혈병이란 것이 아니다. 징치우는 만사 제쳐놓고 병원을 찾아가서 하룻밤을 같이 지내게 된다. 백혈병이 아니라는 그의 말을 믿고 싶지만...

젊은 남자여자는 손만 잡아도 애를 갖는다?

영화는 순진무구가 점철된 순수의 영화이다. 문혁이라는 숨 막히는 시기에 젊은 남자와 어린 여자가 연애를 하면 어떻게 얼마나 하겠는가. 그나저나 문혁에서 연애가 가능할까. 혈기에 넘치는 젊은이들이 저 먼 시골, 산골, 보리밭에서 아무 일이 없을 수 있을까. 문혁을 다룬 또 다른 영화
<미인초>라는 작품에서도 하방한 여학생이 덜컥 임신하는 이야기가 잇다. 이 영화에서도 징치우의 학교친구 여자애가 같은 반 남학생을 좋아하다 임신한다. 그런데 이 남자 “내 아이 아니다”며 도망가고 여학생은 현립병원에서 몰래 낙태를 한다. 이 친구는 징치우가 라오산을 좋아하는 것을 알기에 “넌 아무 일 없었지?”라고 묻는다. 징치우는 불안하다. 남녀가 하룻밤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면 임신한다는데... “손만 잡았는데...” (관객들은 그 순진무구함에 폭소)

인성을 파괴한 문혁이라지만 청춘의 열정과 사랑의 달콤함은  어찌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순진한 청춘커플의 마지막을 어떻게 그릴까. 홍위병의 난리부르스로 끝날까.  어디론가 사랑의 도피라도 떠날까. 결국 남자는 죽는다.

장예모의 데뷔작은 <붉은 수수밭>이다. 항일전쟁시기를 배경으로 중국의 전통을 잘 묘사한 작품이었다. 이런 드라마 장르를 문예물이라고 한다. 장예모 감독은 문예물에 대해서는 탁월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한동안 중국식 블록버스터(연인/영웅)에 매진하더니 다시 옛날 자신의 장기로 돌아온 셈이다. 그가 <붉은 수수밭>에서 공리를, <집으로 가는 길>에서는 장쯔이를, 그리고 <책상서랍 속의 동화>에서는 위민지라는 초짜 연기자를 데뷔시켜 자신의 질박한 영화를 보석같이 빛내더니 이 작품에서도 두 남녀배우를 신인으로 캐스팅하여 놀라운 성과를 보여준다. 우선 여주인공 징치우 역을 맡은 저우동위는 전국적인 오디션을 거쳐 캐스팅되었다. 저우동위는 자신이 최종 선발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고. 남자 주인공 두오샤오 역시 마찬가지. 미국에서 공부한 두오샤오는 훤칠한 키에 시대의 순수함과 비극적 종말을 눈물 나게 연기한다.

이 영화는 지난 달 중국에서 개봉되어 최근 1억 위앤을 돌파했다. 블록버스터가 아닌 문예물로서는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원작소설이 워낙 유명한지라 중국영화팬들의 반응도 적극적이다. 그중 흥미로운 것은 한국 드라마 같다는 것. 중국영화팬이 보기엔 순수한 로맨스와 불치의 병에 걸려 눈물로 마감하는 드라마가 한국산 드라마의 특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장예모는 영화의 결말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사실 나도 불치병으로 죽는다는 원작의 결말에 대해서는 불만이다. 하지만 읽고 감동받은 사람으로서 원작의 순수성을 살리고 싶었다.”

장예모의 <인생>을 보면 마지막에 이런 대사가 있다. 온갖 험난한 중국의 현대사의 고비를 다 넘긴 할아버지가 병아리를 키우는 손자에게 “이 병아리가 자라 양이 되고, 소가 되고, 차가 되고 비행기가 될 것이다.” 이건 분명히 자본주의 발전을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아니면 인류역사의 거대한 진보를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이 영화에서도 비슷한 역사의 진전을 말하는 장면이 있다. 사람을 옭아매는 문혁이 언제까지 갈 것인가라는 말에 곧 달라질 것이라는 암시와 기대를 말한다. 자고로 중국인들은 현실지향적이며 체념 속에서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양이다. “상부에 정책이 있으면 우리에겐 대책이 있다”는 그런 삶의 노하우를 포함해서 말이다. 문혁이 아무리 비인간적 이데올로기 투쟁이었더라도 <햇빛 쏟아지는 날들>이나 <발자크와 재봉녀>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나저나, 왜 젊은 남자는 손만 잡고 잠만 잤을까. 미스터리다. (박재환, 2010.10.8)

*사진이랑 추가내용은 서울 올라가서.. 추가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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