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영화제, 살아남나?

2010. 9. 3. 11:23연예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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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유럽에서는 베니스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시네마디지털 서울(CinDi)과 EBS의 국제다큐영화제가 열렸고, 다음 주에는 DMZ다큐멘터리영화제가 열린다. 추석 지나면 부산국제영화제가 열혈 영화팬들을 맞을 것이다. 물론, 이런 영화제 말고도 우리나라에서는 의외로 꽤 많은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이주노동자영화제, 이천국제음악영화제, 서울국제가족영상축제, SF영화제 등등. 모두 저마다의 색깔이 있고 이름만 들어도 그 콘셉트가 명확하다. 올드 영화팬에게 흥미로운 영화제로 충무로국제영화제가 있다. 올해로 4회째이다. 고전영화를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발견과 복원’에 초점을 맞춘 복고주의 경향의 영화제이다. 그런데 이 영화제는 4년 만에 큰 시련을 겪게 되었다.

충무로, 고전과 정치 사이에서 줄타기하다

충무로영화제는 지난 3년 동안 호기롭게 성장해왔다. 부산영화제가 부산이, 전주영화제가 전주가 호스트 노릇을 하듯이 충무로영화제는 행정구역상 서울특별시 중구가 주도하는 영화제이다. 당연히 서울 중구청장이 영화제 조직위원장이다. 물론 영화제를 후원하는 서울시도 충무로영화제에 대해서는 (적어도 예산 면에서는) 큰 손이었다. 국내에서 열리는 모든 영화제는 공통된 고민을 안고 있다. 영화제의 정체성과 그 호화찬란한 영화제를 치르기 위한 예산문제가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는 여야를 막론하고 문광위 소속 의원중심으로 국회의원들이 대거 출동한다. 대선기간에는 각 당 후보자들이 총출동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영화팬들로서는 생뚱맞은 광경이지만 영화제 위상을 높이는데는 한류스타 오는 것만큼 효과적인 VIP영접효과이다. 그런데 충무로영화제가 그런 고질적인/원천적인 문제를 노출했다. 출범당시는 여당 구청장이었는데, 지난 62선거에서는 야당소속 구청장이 당선된 것이다. 그리고 그 구청장은 현재 선거법 위반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상태이다. 충무로영화제의 예산을 쥐고 있는 서울시는 (야당이 다수인) 의회가 나서서 영화제예산을 전액 삭감해 버렸다. 이런저런 사유로 충무로영화제는 난감해져버렸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지자체의 전시성 영화제’에 대한 지적은 항상 있어왔다. 게다가 문화부까지 나서 영화제 길들이기 논란이 일 정도였다. 지난 8월 4일, 충무로영화제 개최를 앞두고 기자회견이 준비되었다. 한동안 영화제 개최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이야기가 나돌았기에 기자들이 기자회견장에 모였다. 그런데 곧바로 그날 기자회견이 취소되고 말았다. 예산문제가 끝까지 미해결이었단다. 결국 중구의회는 서둘러 추경예산을 짜고 15억 원을 마련했다. 1회 때 예산이 40억, 작년 60억 원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초저예산으로 영화제를 치르게 생긴 것이다. 그리고 지난 주에는 영화제 개최를 얼마 안 남기고 겨우 기자회견이 열렸다. 허겁지겁 열리는 기자회견장에서는 사전에 공지된 ‘홍보대사 위촉식’마저 이뤄지지 않았다. 그 날 기자회견장에는 영화제 집행위원장도, 부집행위원장도 참석하지 않았다. 위원장은 원로영화감독 김수용 감독이, 부위원장은 부천영화제가 파행을 겪을 때 대타로 나선 적이 있는 정초신 감독이었다. 하지만 정/부 집행위원장이 모두 충무로영화제 감투를 사양하고 사퇴서를 제출했다.


마이크를 잡은 김갑의 부조직위원장은 조직위원장(중구청장), 정/부 집행위원장 없이 혼자서 영화제 개최를 위해 독전하고 있었다. 충무로영화제에 쏠린 우려와 비난의 소리에 대해 이런 발언도 한다. “그동안 영화제가 너무 전시성, 낭비성, 사치적인 경향이 있었다. 깐느는 예산이 1,000만 달러에 이른다. 부산도 80억, 90억 원에 이른다. 모두 낭비이다. 불필요한 홍보비로 규모를 과시하고 정치적으로 영화제를 이용해왔다.. 이번 영화제 15억 원으로 충분하다.”며 영화제 정상 개최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신성일, 그리고 최무룡

충무로영화제 프로그램은 흥미로웠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벤허> 정말 고전적인 ‘고전영화’는 <성난 황소>, <살수호접몽> 같은 영화, 신성일 회고전 등이 영화팬을 찾았었다. 물론,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그런 회고전은 있다. 하지만 충무로국제영화제는 충무로라는 상징성이 보여주는 한국영화의 어제, 할리우드 황금기 영화, 독일 초기영화, 무성영화 등 여타 영화제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콘텐츠를 내세워왔다.

김갑의 부위원장은 15억 원으로 충분하다고는 했지만 당초 45억 원으로 기획되었던 이번 4회 충무로영화제는 규모 면에서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해외 게스트 초청이 거의 모두 취소되었고 많은 섹션 영화가 취소되었다. 10일까지 아흐레간 30개 나라에서 온 115편의 영화가 9개 섹션으로 나뉘어 상영된다. 물론 단편 39편을 빼면 장편영화는 76편에 불과하다. 그래도 당신이 정녕 올드 시네마 팬이며, 영화제 마니아이며, 고독한 영화사냥꾼이라면 챙겨볼 여지는 있다. 프로그래머들이 한정된 예산으로, 자기들의 인맥을 총동원하여 세계에서 모아온 영화들이니 말이다.

어제 오후 6시,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는 4회 충무로영화제 개막식이 열렸다. 작년 개막식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로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가 취소되었었다. 올해는 태풍 곤파스의 영향으로 레드카펫 행사가 아슬아슬했다. 예상대로 레드 카펫 행사는 참석한 스타도 얼마 없었고, 취재열기도 상당히 저조했다. 성장통인가?

이번 영화제 개막작은 오스카 산토스 감독의 <포 더 굿 오브 아더스>이다. 오스카 산토스는 신예 감독이다. <떼시스>와 <오픈 유어 아이즈>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이 제작을 맡았다. 없는 예산에도 불구하고 감독과 주연배우가 개막식 행사에 참석하여 무대 위에서 자신의 영화를 소개할 수 있었다. 폐막작은 홍콩의 토니 찬, 윙샤의 <핫 섬머 데이즈>이다. 홍콩영화를 영어식으로 소개하면 꽤나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이미 볼 사람은 봤을 영화 <전성열련>이란 영화이다. 진국휘(陳國輝)와 하영강(夏永康)이 공동감독을 맡았다. 20세기 폭스가가 중국영화에 투자한 첫 번째 작품이다. 장학우, 사정봉, 유약영, 서희원, 서약선(비비안 수), 오언조, 채탁연, 장만옥 등이 화려한 캐스팅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그나마 흥미로운 외국영화는 아마도 홍콩영화일 듯. 그 옛날 오우삼의 <영웅본색>과 함께 한국 젊은이의 피를 끓게 했던 <천장지구>와 왕가위의 감독 데뷔작 <<열혈남아>가 상영된다. <열혈남아>와 <천장지구> 상영 뒤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홍콩영화전문인 주성철기자의 시네토크가 있을 예정이니 상영시간을 확인해둘 필요가 있을 듯하다. <하이자오 7번지>의 범일신이 출연하는 대만영화 <갱스터 록>(混混天團)도 상영된다.

충무로영화제에서 가장 충무로다운 선택은 <최무룡 회고전>이다.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마련된 이번 회고전에서는 <5인의 해병>, <오발탄>, <남과 북> 등 6편이 상영된다. 그 외에 주목받는 한국영화로는 ‘충무로 나우 섹션’에서 소개되는 <반드시 크게 들을 것>(백승화 감독), <살인의 강>(김대현 감독), <영도다리>(전수일 감독), <이웃집 남자>(장동흥 감독), < 청아> (김한정호 감독) 등이 상영된다.

어제 개막식 행사에는 한류 톱스타의 레드 카펫이 없었다. 그래서 당연히 일본 아줌마 부대의 원정응원도 없었다. 기자들도 그다지 오지 않았다. 영화제 부조직위원장이 혼자 고생하는 것 같았다. 서울시 한복판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임에도 ‘중앙’정치인은 보이지 않았다. 단지 이 지역 지역구 의원인 나경원 의원만이 개막식에 참석하여 자리를 정말 ‘빛낸’ 셈이다. 나 의원은 무대 인사말을 통해 "충무로영화제가 내실있는 영화제로 영화팬의 사랑을 받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내실'은 예산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 많은 국제영화제를 다 챙길 수도, 자기(지역구) 영화제를 편애 내지 문닫게 할수도 없는 입장인가?  정말 특이한 것은 당연직 조직위원장(중구 구청장)이 참석을 ‘못’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정동일 전 조직위원장(전직 구청장)이 VIP로 참석했다는 사실. 그리고 개막식 행사가 진행될 때 정초신 부집행위원장이 살짜기 극장을 찾아 관계자와 한담을 나누는 것이 목격되었다. 정 부집행위원장은 ‘충무로영화제의 파행’을 우려하면서도 영화제의 존속에는 모든 영화인들처럼 한가락 기대 내지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어정쩡한 VIP로는 조희문 영화진흥위원장도 마찬가지이다. 제일 앞자리에 앉아있는 조 위원장의 불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충무로영화제가 내년에도 살아남을지 여부는 발견과 복원, 그리고 창조라는 충무로영화제에 얼마나 공감하느냐에 달린 것 같다. 한번쯤은 고전의 재미에 푹 빠져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상영시간표는 공식홈페이지를 참조하시길. (박재환, 201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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