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심은 사람] 도토리 하나가 지구를 살린다 (프레드릭 백 감독 The man who planted trees, 1987)

2008. 3. 29. 14:36애니메이션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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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1999.1.11.) 식목일마다 TV에서 방영되는 명작만화이다. 비록 30분짜리이지만 감동은 충분하다. 프레드릭 바크의 수묵화 같은 그림은 쉽게 접할 수 없는 포근함과 평안함을 제공해 준다. 밤에 잠이 안 오면 켜두고 보면 잠도 잘 온다. (지루한 화면이 아니라, 엄마 품속 같은 평온함에 말이다) 원작 ‘The Man Who Planted Trees’은 장 지오노의 작품이다.

내용은 부피에(Elzeard Bouffier)라는 양치기의 이야기이다. 이 남자의 위대한 종교적 검소함과 운명이 수묵화 같은 화면에 펼쳐진다. 한 젊은이가 알프스를 지나는 여행길에서 물을 찾아 폐허가 된 마을을 헤매다, 겨우 산에 사는 부피에를 만나게 된다. 이 부피에는 오래 전에 아내와 아들을 잃고는, 프랑스의 외딴 산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는 황량한 이 산과 언덕에 나무를 심고 있었다. 그 고산 지대에는 마을이 띄엄띄엄 있을 뿐이고, 그 남자에게는 개와 그의 양떼들만이 있었다. 그 고독 속에서 부피에는 나무를 심는 것을 일생의 업으로 삼고 있었다.

그가 나무를 심게 된 이유가 있다. 이 황량한 마을은 나무가 없기에 모든 주민들이 포악해지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사람들은 별일 아닌 것에 화를 내고, 싸우고, 자살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계곡물은 메말라 더 이상은 사람이 살 수가 없다. 아주 꼼꼼하게 도토리 100개를 골라내는 것이 이 남자의 나무심기의 첫 작업이다. 그는 잘 고른 도토리를 황량한 들판에 하나씩 씨를 뿌리는 것이다. 그는 참나무를 심는 것이다. 그 땅은 그의 소유도 아니었다. 어느 교구의 땅이든, 아니면 도시에 사는 사람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열심히 나무를 심을 뿐이다. 몇 년에 거쳐 10만 그루를 심었고, 그중 1만 그루는 제대로 자라날 것이라는 것이다. 엘지어드 부피에. 아내와 아들을 잃은 사나이는 나무가 없기에 모든 것이 죽어가고 있다고 판단하여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미래를 위한 훌륭한 일을 하는 것이다. 이 남자의 행동은 결국 인류의 심성을 푸르게 할 것이다. 그는 30년 동안 심은 나무가 어쩌면, 바다의 물 한 방울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메마른 인간세계의 샘물일 될 것이다.

전쟁이 일어났고, 세월은 흘렸지만 이 남자는 여전히 황량한 산에 나무를 심고 있었다. 여행자가 다시 부피에를 찾는다. 자작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숲과 산들의 모습에 감격하게 된다. 부피에는 여전히 자기의 평생의 업인 단순한 나무심기 작업 – 도토리를 가려내고, 씨를 심는- 만을 계속 할 뿐이다. 이제 메말랐던 마을의 계곡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조금씩 자연이 살아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미약한 한 사람의 노력이 얼마나 거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자연이, 지구가 되살아나는 것이다.

앙드레 말로가 20세기 프랑스 문학의 제1인자로 꼽은 장 지오노(Jean Giono)를 오늘 처음 대하다니. 나 자신의 문학적 천박함에 내심 부끄럽기도 했다. 이 오래된 작품이 1987년 캐나다의 한 프로덕션에 의해 세계적인 에니메이션 화가 프레데릭 바크의 그림으로 영화화 되었다. 30분짜리 이 작품은 이듬해 아카데미 단편영화/만화부문에서 상을 수상한다.

배경은 알프스, 프랑스 고산지대이지만, 내용은 계속 중국의 한 우화를 생각하게 했다. <愚公移山> 옛날 중국의 한 마을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실화는 물론 아니고.) 앞에 산이 가로막혀 있기에, 마을사람은 저 멀리 길을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할아버지 한 분이 흙을 퍼 담아 옮기기 시작했다. 모두를 그 사람을 어리석다고 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꾸준히 흙을 퍼 담는 것이었다. 자기가 못다 이루면 자기의 아들 세대가, 그리고, 손자 세대가 흙을 퍼 담을 것이라고. 그래서 결국은 산을 옮기고, 마을사람에게는 길이 생겨난 것이었다. (음. 자연파괴라고 할 수도 있겠네!) 하지만, 개인의 미약한 노력은 그에게는 어떠한 이득도 없다. 하지만, 그 열매는 누군지도 모르는 후대의 사람들이 맘껏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우화는 모택동이 살아생전 수도 없이 인용하며, 중국인민에게 꾸준히 전진할 것을 요구했었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은 이러한 느림, 장구함의 미덕이 부족할 것이다. 대만 국립박물관에 가보면 옥을 깎아, 또는 상아를 조각하여 만든 모형이 있다. 황제에게 진상하기 위해 만든 이 미세한 조각물은 뛰어난 공예가가 수십 년에 걸쳐 만든 것이라고 한다. 아버지가 완성을 못하면, 그 아들이 계속하여, 끌질하고, 파내고 하나의 훌륭한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론, 그 완성품은 황제의 한 번의 눈요기로 끝나고 이렇게 박물관 신세가 되어 버리지만….) 자기 세대에 못 이루는 것이라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인내와 베풂의 미덕이 아쉽다. (박재환 1999/1/11)

감독/작화: Frederic Back 원작: Jean Giono L’homme que plantait des arb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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