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비밀] ‘비밀의 曲’

2008. 3. 5. 20:45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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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d by 박재환 2008-2-4]  대만영화 한 편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대만의 톱 가수 주걸륜이 주연뿐만 아니라 감독까지 겸한 [말할 수 없는 비밀]이란 영화이다. 주걸륜은 (아쉽게도) ‘대만의 비’라고 알려졌지만 중화권에서는 나름대로 꽤 유명한 뮤지션이다. 중화권에서의 그의 인기는 홍콩영화 [이니셜D]와 장예모 영화 [황후화]에 캐스팅된 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싱어송 라이터인 그가 자신의 뮤직비디오를 직접 연출하더니 이제 극영화 감독에까지 나선 것이다. 팬으로서는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면 역시 주걸륜이 대단한 엔터테이너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웹에서 이 영화를 검색해보면 영화 내용, 결말에 대한 구구한 해석들이 올라와 있다. 적어도 영화를 본 사람에게는 이 영화가 충분히 논쟁거리를 제공한다는 말이다. 영화는 시간여행을 다룬다. 우리영화 [동감]과 [시월애], 그리고 타임머신을 다룬 많은 영화들을 염두에 둔다면 이 영화감상에 주의를 한층 기울일 것이다.마치 [식스 센스]를 감상하듯이 이 영화는 한번 볼 때보다는 두 번 볼 때, 10번 볼 때, 20번 볼 때 더 많은 비밀과 더 많은 해석을 가질 수 있다.

영화는 1999년, 대만 수도 타이베이의 북쪽에 위치한 딴수이(淡水)의 한 고등학교(우리나라의 예고)를 배경으로 한다. 주걸륜(극중 이름은 葉湘倫이다)이 전학 온다. 아버지가 이 학교 선생님, 주걸륜은 피아노를 잘 치는 예술고 학생. 교실 복도를 걷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에 이끌린다. 오래된 피아노연습실에서 한 여학생과 맞닥친다. 여학생 이름은 샤오위(小雨,계륜미). 둘은 피아노와, 음악을 매개로 어느새 사랑의 감정이 싹튼다. 그런데 주걸륜 반 친구 중에는 칭이(晴依, 증개현)라는 여학생도 있다. 한 순간의 오해로 샤오위는 사라지고 주걸륜은 애타게 샤오위를 찾는다. 알고 보니 샤오위는 20년 전의 세계에서 온 사람. 20년의 세월을 가로지르는 비결은 피아노연습실에 숨어있는 ‘마법의 곡’이다.

영화는 주걸륜의 화려한 피아노 실력과 함께 흥미로운 시간여행을 보여준다. 우선 시간여행은 독자나 관객에게 복잡한 물리학적 상상력을 요구한다. [타임머신]이란 영화, [백 투더 퓨쳐], [터미네이터] 같은 영화, 좀 더 관심 있는 영화팬이라면 [최후의 카운터다운]이나 정이건-장백지가 출연했던 [무한부활] 등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영화는 이른바 ‘시간의 패러독스’를 이야기한다. 이른바 ‘조부(祖父) 살해이론’. 과거로 돌아가서 할아버지를 죽일 경우 미래의 나는 존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영화는 20년의 시간을 두고 한 공간(피아노 연습실)이 타임머신의 기능을 한다. 시간여행의 방법은 참신하게도 ‘음악’이다. 어느 날 샤오위가 우연히 발견한 ‘백조'란 피아노곡을 치게 되면 20년 후의 세계로 간다는 것이다. 여기엔 하나의 또 다른 설정이 있다. 시공간을 가로질러 만나는 첫 번째 사람만이 그 사람을 볼 수 있다는 사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이 영화를 거듭 보게 보면 주걸륜과 샤오위가 만날 때의 미세한 변화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왜 샤오위가 눈을 감고, 번번이 걸음을 옮길 때 발자국 수를 세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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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생들이 펼치는 이른바 ‘피아노 배틀’이란 장면도 볼만하고 시간 여행을 할 때 피아노 연습실의 벽이 휙휙 바뀌는 특수효과도 (뻔하지만) 흥미롭다. 주걸륜은 확실히 [이니셜D]에 비해서 일취월장한 연기를 보여준다. 감독하랴 시선처리하랴 꽤나 힘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니셜D]에 이어 또다시 주걸륜의 아버지 역으로 출연한 황추생도 푸근한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가 한국에 소개되고 나서 가장 뜬 배우는 아마도 계륜미일 듯. 대만출신이라면 이강생 만큼이나 마이너로 기억되는 양귀매 이후 가장 사랑받을 대만 여배우 같다. (근데 임청하도, 서기도, 성룡 와이프 임봉교도 대만 여배우이다! 임심여도!) 워낙 보기 힘든 대만배우들이다보니 청순미에 더하여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근데 몇 번 보다보면 계륜미 말고도 칭이 역의 여배우에게도 똑같이 청순미가 느껴진다. 증개현(曾恺玹, Alice Tseng)이란 배우이다. 이 배우 찾아보니 ‘LG'의 대만지역 치약광고에 나와 상큼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모델출신이란다.

이 영화는 재밌다. [아마데우스]의 매력과 [러브 레터]의 간절함, 그리고 (왠만하면 짐작할 수 있지만) [식스 센스]의 대반전이 있기 때문이다. 왕가위 감독은 자기 영화의 해석에 대해 언제나 이렇게 이야기한다. “당신이 그렇게 봤다면 그런 것이다.”고. 이 영화도 그러한 해석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주걸륜과 계륜미가 둘 다 좋아한다는 노래는 ‘연인의 눈물’(情人的眼泪)’이란 곡이다. 중화권의 여러 가수들이 부른 곡이다. 계륜미가 원래 좋아했을까? 아님 주걸륜이 알려줘서 좋아했을까?

책상 위에 20년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사랑한다’는 필담을 나눈다. 1979년의 샤오위. 그런데 그 펜은 1984년에 상품화되었다는 고증도 나온다. 참 영화팬들은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에서 주걸륜은 대사 하나하나를 그냥 마련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졸업식 날 럭비부 두 콤비가 사물함을 뒤지면서 꺼내는 “가난한 동네 아이의 펜”이야기도 말이다.

주걸륜이 20년 전의 세계로 갔을 때 샤오위는 그를 알아본 것일까. 주걸륜은 마법의 곡을 아주 빠르게 연주한다. 그러했기에 아마도 20년보다 더 앞선 시점으로 날아간 것일 게다. 샤오위가 악보를 발견하기 전. 미래의 아버지 황추생을 찾아갔을까? 그의 반응은? 아마도 “이 놈도 제 정신이 아니군~”이라고 했을지 모른다.

그럼 세계는 명확히 바꿀 수 있는 미래(과거)와, 바꿀 수 없는 미래(과거)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말일 것이다. [트웰브 몽키스]가 재밌는 이유랑 같다.

어쨌든 재밌다. 꼭 보시기 바란다. DVD출시되면 거듭거듭 보고 주걸륜의 매력, 혹은 계륜미의 청순미에 빠져보시고 자신만의 비밀을 찾아보시기 바란다. (리뷰=박재환 2008-02-04)

말할 수 없는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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