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서독(오리지널)] 타임 쉐이크 (왕가위 감독 东邪西毒 Ashes of Time , 1994)

2008. 2. 15. 08:44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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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영화 잡지 <<키노>>가 부록으로 <동사서독>의 프랑스판 포스터를 부록으로 준 적이 있다. 왕가위 팬이라면 누구나 벽에 붙이고 있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박재환 2003.4.21) 왕가위 감독이 <아비정전>에서 놀라운 문학적 성취를 이룬 뒤 내놓은 새로운 스타일의 무협물 <동사서독>은 ‘시간의 관념’에 대한 영화이다. 그것은 왕 감독이 <아비정전>에서 읊조린 ‘1960년 4월 16일의 1분’에서 확장된 개념이기도하고. 남자 하나, 여자 하나의 열정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수많은 인간들이 패착을 둔 사랑의 궤적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A는 B를 사랑하고, B는 A를 사랑할 수 없다. B를 짝사랑하는 C는 D를 사랑하게 되고 그 때문에 E는 실연한다. F는 C의 사랑을 받을 수 없어 저홀로 저주하고 저홀로 자기연민에 빠진다. G는 A에서게 B의 그림자를 보게되고 E에게 D의 그림자를 본다. F는 A를 C로 생각하고, A는 F를 B로 생각한다.

왕가위 감독이 홍콩의 톱스타를 이끌고 중국의 사막지역에서 모래바람과 맞서 싸우며 2년에 걸쳐 찍어낸 영화는 두꺼운 중국철학서를 읽는 것 같은 부담감을 주면서 시간착란의 난해함을 안겨준다. 관객은 등장인물의 내레이션을 통해 그 사람의 현재를 들여다보고, 그와 이야기하는 또 하나의 무사를 통해 과거를 되돌아본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는 의문부호로 남긴다. 이들은 중국 무사답게 ‘숙명(宿命)’적 선택을 하게 되고 ‘의(義)’에 의해 갈등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남아있는 사람은 여전히 세속적 선택의 갈림길에서 과거를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홍콩의 신필(神筆) 김용이 쓴 <사조영웅전>의 주인공은 ‘곽정’이라는 무사이다. ** 국내 고려원에서는 김용의 연작물 <사조영웅전>, <신조협려>,<의천도룡기>가 <영웅문> 1부, 2부, 3부로 번역 출간되었다.(지금은 김영사에서 ‘사조영웅전’으로 번역출간됨( ** <사조영웅전>에서는 주인공 곽정을 둘러싸고 무협 고수들이 끝도 없이 등장하는데 그중 ‘동사-서독-남제-북개’라는 불리는 인물이 있다. 이들이 바로 구양봉, 황약사, 단지흥, 홍칠공이다. 이들은 각기 일가를 이룬 무술의 대가이기도 하며 때로는 악당 중의 악당으로 등장한다.

왕가위 감독은 <사조영웅전>을 읽고 그 무술의 달인의 영웅담을 따온 것이 아니라, 그 이미지와 이름만을 자신의 영화에 투영시킨다. 그래서, 영화에서 보여주는 인물군들의 설정과 사랑이야기는 원작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럼, 이들 무사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가.

영화가 시작되면 황량한 사막의 한 ‘객잔’을 보여준다. 객잔의 주인장 서독 구양봉(장국영)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먼 훗날 사람들은 나를 서독이라고 부를 것이다.” 서독은 이곳에서 청부살인 중개업을 하고 있다. 누군가 자객이 필요하면 그에게 돈을 건네주며 부탁을 할 것이고, 그는 그에 합당한 칼잡이를 소개시켜 주는 것이다. 가뭄이 들고 세상이 황폐할수록 이런 장사는 잘 될 것이다. 어느 날 항상 동쪽에서 나타나는 친구 황약사(양가휘)가 객잔에 들른다. 그는 어떤 여자가 주었다는 ‘취생몽사’를 마신다.

이후 이야기는 동사 황약사와 서독 구양봉을 비롯하여 맹검객(맹인 검객=양조위), 모용연-모용언, 홍칠, 효순녀 등이 차례로 등장하며 엇갈린 그들의 애정을 이야기한다.

영화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극중 인물의 애정전선을 해부해본다.

▷ 동사 황약사는 서독 구양봉의 형수를 사랑한다. 형수는 서독 구양봉을 사랑하고 있다. 구양봉도 형수를 사랑하지만 자기를 더 사랑하고 있는 셈이다. 형수는 마지못해 그의 형에게 시집간다. 
▷ 모용언은 황약사를 짝사랑한다. (모용언의 정신분열체인) 모용연은 황약사에게 한을 품는다. 모용언은 구양봉을 황약사로 생각한다. 구양봉도 모용연을 형수로 생각한다.
▷맹무사(맹인무사)의 처는 황약사를 사랑한다. 맹무사는 그런 황약사를 죽이려한다.
▷홍칠의 사랑은 간단 단순하다. 그래서 그는 가장 행복하다.

김용의 문학성과 무협물의 철학성을 이해하기 쉽도록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까?

구양봉은 한 여자, 즉 장만옥을 사랑한다. 둘은 서로 사랑한다. 하지만 구양봉은 이기적이다. 그는 여자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아마도) 무예의 길을 택할 것인가에서 후자를 택한다. 그 과정에서 기다리던 이 여자는 구양봉의 형과 혼례를 올린다. 구양봉은 백타산을 떠난 후 때때로 형수가 된 그 여인을 떠올린다. 그는 자신의 객잔을 찾아오는 많은 검객의 ‘사랑’을 시니컬한 시선으로 쳐다본다. 왜냐하면 자신의 사랑이 너무나 잔인하다는 것을 알기에.

동쪽으로부터 ‘취생몽사’를 들고 온 황약사는 이런 사랑의 소용돌이의 정중앙에 있는 인물이다. 취생몽사는 백타산의 ‘장만옥’에게서 받은 것이다. 그는 장만옥을 짝사랑하고 있다. 그가 구양봉을 만나는 이유는 장만옥 때문이다. 장만옥에게 구양봉 소식을 전해준다는 명목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친구(=맹인 검객) 양조위의 아내(=유가령)를 사랑한다. 그 때문에 양조위는 고향을 떠났다.

초반에 가장 관객을 혼란시키는 인물은 다름 아닌 임청하이다. 임청하가 연기하는 두 인물 모용연(慕容燕)과 모용언(慕容焉)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제 영화대본’이 필요하다. 천하의 바람돌이(!), 혹은 한량 황약사는 어느 날 고소성 도화나무 아래서 술을 마시다가 ‘임청하’를 희롱하게 된다. (이 부분은 관객에게조차 상당히 정신분열증 접근을 필요로 한다!) 당시 임청하는 ‘남자같이 보인 여자’였을 것이다. 황약사는 아쉬움에 아니면, 술김에 이렇게 말한다. “자네에게 여동생이 있다면 나의 아내로 맞이할 것이네….”라고. 이에 대한 임청하의 반응은 극단적이다. 자신의 ‘본래의 여성성’은 숨겨지고 ‘남성성’만이 살아남는다. 자신의 내부에 있는 이중의 자신-즉, 여동생이라 일컬어지는 모용언’이 등장한다. 여동생으로 등장할 경우 임청하는 황약사를 한없이 기다린다. 오빠로 등장할 경우 여동생을 기다리게 한 황약사를 죽이러한다. 다시 여동생으로 등장할 경우 자신과 황약사의 사랑을 방해하려는 오빠를 죽이러한다. 한 몸 속에 내재한 두 여자의 질투는 황약사뿐만 아니라 구양봉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어느 날 밤 모용언이 된 임청하는 구양봉을 몸을 더듬는다. 모용언은 그를 황약사로 생각하는 것이다. 구양봉 또한 그 정신적 혼란 속에 형수가 된 여인을 떠올린다.

대본에 따르면 ‘양채니’의 역할은 ‘효녀(孝女)’이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남동생을 끔찍이 사랑하여 그 복수를 꿈꾸는 누나의 역할이다. 너무나 가난하여 계란 한 광주리와 노새 한 마리로 구양봉에게 동생의 복수를 부탁한다. 구양봉은 그런 물건에 목숨을 내놓는 칼잡이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효녀’는 끝까지 기다린다. 구양봉은 그런 효녀를 바라보며 ‘다른 사람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신념에 따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서 효녀에게서 다른 사람을 떠올린다. 바로 그의 형수가 된 장만옥.

장만옥은 그야말로 기다림 그 자체이다. 그녀는 떠나간 사랑을 기다리고, 그를 애타게 찾아오는 황약사를 끝없이 기다리게 만든다. 그리고는 취생몽사만 남겨둔 채 병으로 죽는다.

취생몽사는? 이 술을 마시면 모든 것을 잊어버린단다. 황약사는 그 술을 마시면 많은 번뇌를 잊는다. 그럼 그 술은 실존하는가? 영화 초반 황약사는 그런 술이 있음을 믿지 않는다. 그런데 영화 끝에서 구양봉은 이렇게 말한다. 사실 취생몽사는 그녀(장만옥)와 나눈 농담이었다고. 기다림에 지친 장만옥은 그런 사연을 가슴에 안은 채 황약사에게 술병을 떠넘겼고 황약사는 정말 세상번뇌를 잊고 싶어서 그 술을 ‘취생몽사’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 복잡한 영화가 전해주고 싶은 말은 구양봉이 전해준다. 정말 자신의 영혼을 옭아매는 끔찍한 현실-기억을 잊으려고 할수록 그러한 기억은 더욱 생생하게 떠올려진다고. 그래서 나온 해결책은 ‘당신이 뭔가를 잃게 될 때 그것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기억 속에서 절대 잊지 말라는 것.

이 부분은 중문도 어렵고, 국내 비디오 번역자막도 애매모호하다. 전체적인 맥락은 ‘무언가를 잊으려고 애써 발버둥치지 말고, 차라리 가슴 속에다가 그러한 사실은 꼭꼭 명심해두라는 것’이다. 이 영화의 무사들은, 그리고 그 사랑의 대상은 죽을 때까지 ‘사랑’때문에 번민한다.

이들 무사들이 어떻게 되냐고? 정신분열증 환자 임청하는 물속의 자기와 칼싸움을 하는 독고구패가 되고, 구양봉은 백타산으로 다시 돌아와 패주가 되고 사람들은 그를 서독이 부른다. 황약사는 동해 도화도로 가서 도주가 되고 동사라 칭해진다. 홍칠은 개방(거지집단)의 방주(우두머리)가 되어 북개라 칭해진다.

그러니까, <동사서독>은 훗날에 그렇게 되는 사람들의 끔찍한 정신적 고통의 여정을 그린 셈이다.

이 영화를 그런대로 이해했다면 김소월의 다음 시에 찬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먼 후일 – 김소월(金素月)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 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 때에 ‘잊었노라.’

(박재환 2003.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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