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방동네 사람들] 질박한 사람, 진실된 영화 (배창호 감독 People in the Slum 1982)

2008. 2. 24. 17:22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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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1999.8.6.) 참 개인적인 글이네요. 이 영화는 내가 영화를 좋아하고 나서, 영화라는 인식을 갖고 본 첫 번 째 한국영화였다. 아주 오래전 내가 다니던 중학교의 교장선생님에겐 ‘특별한’ 것이 있었다. 학생들에게 ‘一人一技’라는 것을 갖도록 하였고, 매년 한차례 그 결과물을 제출하여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난 영화관련 신문스크랩을 했었다. 요즘이야 신문, 잡지, 영화팜플렛, 인터넷 등등 늘린 것이 영화관련 자료지만, 80년대에는 그런 것이 거의 없었다. 나는 아침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그 전날 신문을 얻어다가 영화광고와 영화관련기사를 오리고 붙이고 그랬었다. 내 기억으로는 그 당시 ‘일간스포츠’(당시에는 ‘스포츠서울’조차 창간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에 연예관련기사가 가장 많았었다. 그리고, 그 당시엔 드물게 하루에 신문 몇 개씩이나 보던 보기 드문 중학생이 되고 말았다. (연예면-> 문화면 ->사회면 ->정치면 등으로 나의 관심사는 넓어졌으니 말이다)

아직도 기억하는 것은 이 <꼬방동네 사람들>의 신문광고이다. 일간스포츠에 전면광고가 났었는데, 요즘이야 칼라로 2면 광고까지 나는 시대이지만, 당시에는 영화 전면광고가 극히 이례적이었다. 시커먼 잉크가 여전히 묻어나는 그 영화광고. 그 영화는 사실 굉장한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푸른극장’이란 곳의 개관기념작이었을 것이다. (나야 당시 부산 살던 아이라서 그게 얼마나 크고, 어떤 정도의 극장인지는 몰랐다. 아마 이 극장은 폐관되었든지 아니면, 연흥극장으로 이름을 바꾸었을 것이다.) 전면광고의 반은 영화광고였고 반은 ‘이제 새로운 극장문화가 어쩌구저쩌구..’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는 아마 그해 3류극장(재재개봉관)에서 보았을 것이다. 다른 것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노란 우산을 썼던 김보연이 무척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었다.

이 영화 감독은 배창호이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한국의 스필버그’라는 호기로운 명성을 들을 만큼 각광받던 감독이었다. 나도 그 시절부터 거의 배 감독과 궤적을 같이하며 영화에 대한 관심을 가졌으니 말이다. 이 영화하고 같이 공개된(‘개봉된’하고는 또 다르다. 당시 한국영화정책은 아주 특별했다. 이른바 좋은 영화 ‘문예영화’를 하나 만들면 외화수입권이 하나 주어졌었다. 그래서 많은 영화사가 영화팬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화관련 문공부당국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영화를 만들었다. 그때 배창호가 만든 그런 영화가 바로 <철인들>이란 영화였다. 벌써 10년쯤 되었나? 국회의원을 지낸 이명박을 모델로 한 텔레비전 드라마 있었잖은가. 그것의 오리지널 영화버전이었던 셈이다. 현대건설의 주베일 항 건설과정을 담담하게 엮은 작품이었다. 이 영화가 오래 전에 텔레비전에서 한번 방영될 때 보았는데 꽤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배창호는 처음부터 극장판에서 성장한 사람은 아니었다. 배창호는 아마 연대 나왔을 것이다. 그리곤, 종합상사 들어가서 외국에 나가 물건 팔던 수출역군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영화한답시고 회사 때려치우고, 충무로에 들어와서는 이장호 감독 밑으로들어갔다. 이장호 감독의 걸작 <바람불어 좋은 날> 보면 영화초반에 중국집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음식 시킬 때 덩치 큰 사람이 “여기 짜장면..” 어쩌고 하는 대사를 하는 엑스트라가 바로 배창호이다. 멋진 영화계 데뷔장면이었다. 정말 멋진 카미오 롤이었고 말이다.

배창호는 그 후 좋은 작품을 정말 줄줄이 만들어내었다. 난 미성년자 관람불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시절까지는 그의 모든 작품을 극장에서 다 보았을 만큼 열성 팬이었다. 특히 <적도의 꽃>, <깊고 푸른 밤>은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한국영화이다. <우리 기쁜 젊은 날>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내가 마지막 본 배 감독의 영화는 <안녕하세요 하느님>이란 걸 텔레비전에서 본 게 마지막 이었다. 아마 장애인의 날 특집 방영영화였을 것이다. 그리고 배 감독이 충무로의 뒤안길로 사라져갔고, 나도 바로 그 때부터 영화에 대한 관심이 식었었다…..

이 영화는 배창호의 멋진 영화감독 데뷔작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한국영화 말할 때 꼭 들어가는 좋은 작품이다. 그것도 딱 한번 옛날 보고 느낀 감정으로 그랬으니 말이다. 오늘(1999.8.6.) 그야마로 십여 년 만에 비디오로 이 작품을 다시 보고 감격에 벅차서 글을 쓴다.

이 영화는 1982년 전두환이 집권하고, 그저 그런 영화들만이 쏟아져 나올 때 크리스탈처럼 반짝이는 신인감독이 내놓은 역작이다. 배경은 달동네이다. 아침이면 공중’변소’앞에 길게 줄을 늘어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마을 빨래터에서는 ‘빤스’하나 갖고 “훔쳤지 이 년아 저 년아” 하고 싸우는 동네이다. 이런 마을을 배경으로 억척스레 살아가는 김보연 아줌마와 그 주변 사람의 억척스런 이야기이다. 우선 이 영화가 문학적으로 실감나는 것은 이동철의 원작이 워낙 리얼해서일 것이다. 이동철 본명이 뭐였더라? 한때 국회의원 지냈던 것으로 아는데… 이 소설은 정말 <난·쏘·공>이후 사회드라마로서는 보기 드문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아웅다웅 싸우면서, 어렵게 살아가는 마을에 젊은 아낙네가 하나 있다. 무슨 이유인지 검은 장갑을 한쪽 손에 끼고 살아가는 김보연이다. 그녀에게는 말썽만 피우는 어린 아들이 있었고, 태섭(김희라)이란 남편이 있다. 태섭은 방안에 코옥 처박혀 경찰을 피하는 신세이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그는 살인을 저지르고 공소시효가 끝나도록 쥐죽은 듯 지내는 것이다. 달력을 보며 동그라미만 치며, “이제 두 달 남았다. 이제 한 달 남았다…”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김보연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택시운전기사 주석(안성기)이다. 주석은 바로 김보연의 전 남편. 김보연의 기억은 플래시백으로 펼쳐진다. 지하철에서 깔깔대고 명랑했던 경상도 아가씨 김보연이 샤프하게 생긴 안성기와 눈이 마주친다. 둘은 이내 친해지고, 사귀게 되는 것이다. 안성기의 직업은 소매치기였다. 하지만, 그런 걸 모르고 김보연은 결혼하고 둘은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안성기가 결국 잡혀서 감옥 가고, 출옥하고, 이제 새 생활을 할 것이라 맹세했지만, 또다시 감옥 가게 되고(그것은 그의 아들의 돌잔치 날이었다. 선물을 잔뜩 사들고 탄 버스에 소매치기 사고가 일어났고, 안성기는 전과자라는 이유 때문에 범인이 되고 만다!!) 이런저런 일이 벌어지자 결국 감옥 면회소에서 둘은 헤어지자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김보연은 김희라와 살면서 안성기의 아들을 어렵게 키우고 있는 것이다.



이제 김보연-안성기-김희라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보름 후 라는 공소시효까지 겹쳐 거리두기와 다가서기를 거듭한다. 그것은 김보연과 안성기의 부부감정이 아니라, 아들에 대한 ‘양육권’을 둘러싼 접근인 것이다. 안성기는 아이를 데려가고 싶어 하고, 김보연은 지금도 삐뚤어지게 자라는 아들을 전과자에게 넘겨주기는 죽어도 싫은 것이다. 여기에 김희라는 그런 전남편의 아들 놈이 꼴도 보기 싫지만, 김보연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삼각관계를 지저분하게 늘어지게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납득할 만큼 이성적으로 그리고 감성적으로 풀어나간다. 그리고 그 주변사람들. 달동네(사실은 달동네 아님!)의 가난한 이웃주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요인물은 공옥진 할머니. ‘병신춤’이란 걸 추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송재호가 연기하는 달동네 목사. 아마 원작자는 송재호가 연기하는 달동네 목사 신분에서 그 소설을 썼었던 것 같다. 가난하지만, 빈민구제의 열정을 가진 그런 인물 말이다.

안성기가 김보연과 철없는 연애를 할 때가 다시 보아도 상큼하다. 둘이 만나고 연애하고.. 키스할 때 안성기의 입술이 점점 김보연에게 다가간다. 김보연은 무척 수줍어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노란 우산으로 카메라 앞을 가린다. 관객은 그 장면에서 웃었다! 그리고 그 다음 장면은 담벼락 사이로 안성기가 김보연을 애무하는 장면인데 이 영화 통틀어 나오는 유일한 ‘그런’ 장면이다. 김보연의 스타킹 신은 허벅지가 잠깐 나오는데 내가 이런 디테일한 것을 기억하는 것은 일간스포츠에 난 광고사진이 바로 그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영화에선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만, 유일하게 진한 장면이 광고사진으로 채택되는 것이다. 그것이 신문광고보고 주말에 극장가서 볼 영화를 고르는 당시 한국영화팬들의 수준인지, 당시 영화광고의 비참한 현실인지 여하튼 그렇다.


이 영화의 음악은 김영동 교수가 맡았는데 <서편제> 이전에 만들어진 우리영화중 우리 가락이 이렇게 구구절절 멋지게 쓰인 영화는 드물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정말 감탄할 만하다. 김보연, 안성기의 연기도 열연이지만, 김희라의 투박하고 ‘싸나이’다운 연기가 거칠지만 멋있다. 젊은 시절의 말론 브란도 같았다. 안성기는 택시드라이브의 로버트 드니로 같았다. 의상도, 직업도… ^^

처녀시절 김보연은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 둘이 처음 마주치는 게 지하철인데 당시(82년)에는 부산에 지하철이 없었다. 안성기가 감옥 처음 갔다오고 나서 열심히 일할 때 자갈치시장과 영도다리 부근이 화면에 나타난다.

이 영화는 과거는 어렵고, 현재도 어려울 것이지만, 언젠가는 밝은 희망을 가져다주는 어떤 약속을 해주는 영화였다.

좋은 시나리오, 정말 멋진 연기, 반짝이는 연출.. 이 영화는 한국영화의 문제점을 모두 극복한 작품이다. 그것도 데뷔작에서 말이다. (박재환 1999/8/6)

[추가] 이동철의 원작소설은 현암사에서 1981년에 출판되었고, 당연히 절판되었다

감독: 배창호 주연: 김보연, 안성기, 김희라, 김형자 개봉: 1982.7.17. 

[꼬방동네 사람들 (1982, 블루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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