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와 세 남자] 실향민, 고향을 잊지 못하다 (사연 감독 花橋榮記 My Rice Noodle Shop 1998)

2008. 2. 23. 10:19대만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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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 쓴 글입니다) 조금 엉뚱한 소리이긴 하지만. 막상 남과 북이 통일이 되었을 때 발생할 현실적 문제를 몇 개 들어보자. 한국전쟁 전후하여 자유를 찾아 남으로 넘어온 북의 매판자본가세력, 유지들의 재산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들은 땅문서를 품에 간직하고 사선을 넘었을지 모르고, 자신은 그 땅을 되찾지 못할지라도 아들의 아들, 그 아들의 아들 세대에서는 자신의 땅을 되찾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완용의 자손이 이완용의 땅을 되찾는 것이 의 현실이니깐!) 그런데 이미 남북이 고착된 지 50. 이북의 땅은 북한정권이 국유화했을 것이고 그것을 인민에게 나눠주었을 것이다. 통일이 되면 그 땅, 그 집은 누구의 소유가 될 것인가. 또 하나의 문제. 북한에서 이미 결혼한 사람이 남으로 와서 다시 결혼했을 때, 이른바 중혼죄 여부. 결혼문제는 사실 눈감아 줄만 하지만 이 사람이 엄청난 갑부라면? 재산을 둘러싼 남과 북의 아내와 그 자식들이 벌일 재산권 다툼은? 우리나라 일부 학자들도 독일 통일 후 벌어졌던 이러한 사태에 대해 우려하며 유사한 법리논쟁을 미리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갑자기 이런 밥맛 떨어지는 반통일적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요리사와 세 남자>라는 중국영화를 보고 난 후 문득 든 생각이다. 이 영화는 지난 1998년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누들 삽>이란 제목으로 소개되었고 곧바로 <요리사와 세 남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이 영화는 족보가 꽤 되는 영화이다. 우선 감독은 사연(謝衍 시에옌)’이다. <부용진>으로 유명한 중국의 대표적 감독(4세대) ‘사진'(謝晉시에진)의 아들로 더 유명한 영화인이다. 영화 내용은 중국 대륙이 공산화된 후 광시(광서)성 계림에서 대만 수도 대북으로 건너온 실향민들의 이야기이다. 제작은 홍콩 화령(華令)공사가 맡았고 중국,홍콩,대만 배우들이 고루 출연한다. 대만 수도 타이베이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이지만 이들 출연진은 모두 계림에 대한 추억과 계림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흥미로운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때는 1960년대 전후. 주인공 정유령은 타이페이 장춘로에 조그마한 국숫집(榮記米粉店)을 운영하고 있다. 학교 앞 조그마한 분식점이라 생각하면 된다.

정유령의 할아버지는 이전에 중국 광서성 계림 동문 밖 화교(花橋-꽃다리) 앞에 榮記米粉店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집 음식이 워낙 맛있어서 일대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 쌀국수(미펀) 집이었다. 정유령은 손님 중에 국민당 장교 한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지만 곧 전쟁으로 둘은 헤어지게 된다. 정유령은 대만에서 식당을 열고 언젠가는 고향 계림으로 돌아가서 사랑하는 남편과 재회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 식당에 오는 손님 또한 모두 계림 출신의 실향민들. 모두 각자의 사연을 갖고 있다. 향장으로 있던 사람, 엄청난 토지를 갖고 있던 땅 부자 노인, 사랑하는 약혼녀를 데려오기 위해 죽도록 저축만 하는 샌님 교사 등등.

이들은 자신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결국 하나둘 숨을 거둔다. 정유령은 자신의 가게 손님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담담히 내일'(통일)을 기다린다.

원작은 좀 찾아보니 이 영화는 백선용(白先勇)의 원작소설 <台北人花橋榮記>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백선용도 중국 계림 출신이다. 아버지가 백숭희(白崇禧)라는 사람이다. 아마 장개석이나 국공합작 관련 시절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 사람 이름을 한번 들어보았을 것이다. 대만에서는 제갈이라고 불릴 만큼 지략이 뛰어난 군인이었다. 장개석과 같이 대만으로 건너와서 국방부 장관까지 지낸 고관이다. 그의 아들 백선용은 군인 아버지를 따라 중경으로, 남경으로 , 홍콩으로, 대만으로 옮겨가며 자랐고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에서 교수생활과 문학잡지 편집 일을 했다. 그는 자신의 가문, 나아가 자기 민족의 파란만장했던 역사를 기반으로 많은 소설을 집필했다. 아마 이 정도 백그라운드라면 국가적 개념(공산중국-자유대만)보다는 민족적, 아니 더 정확히는 고향에 대한 지역적 정서가 강할 것이다.

영화는 대만의 작은 국숫집을 보여주다가 아름답고 평화롭던 계림의 옛 모습을 보여준다. 중국과 대만이 정치적으로 불편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이런 영화가 나온 것은 조금 의외이다. 아마, 중국 계림을 다녀온 관광객이라면 계림의 수려한 강산을 알 것이다. 영화에선 그런 계림의 풍광이 사람을 평안하게 해 준다.

아마, ‘중국-대만의 불행했던 현대사나 이산가족의 아픔, 비극을 영화로나마 조금 이해해 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기를 권한다. 물론 중국-대만 양안관계에 대한 조금의 이해가 있다면 이 영화가 더 재미있을 것이다. 사연 감독은 양쪽의 과거와 현재의 아픔과 고통, 내재된 갈등을 조심스레 비켜나가며 한 편의 인간드라마로 포장해낸 셈이다.

이 영화가 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두어 번 상영되었었는데, 우리 집사람도 그 때 보았단다. 당시 영사 사고가 있어서 영화 끝나기 직전 환불조치했단다. 혹시 그때 그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 사람이 있을까? (박재환 200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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