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상해=상하이의 밤] 사랑에는 통역따윈 필요없어

2008. 2. 14. 22:04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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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d by 박재환 2007/8/28]   이번에 열리는 2회 CJ중국영화제에는 그동안 답답한 문예물 위주의 중국현대 영화에서 조금 벗어난 트랜디한 경향의 러브 스토리가 몇 편 선보인다. 그 중 주목할 만한 작품은 장일백(張一白) 감독의 [상하이의 밤](夜,上海)란 작품이다. 중국의 많은 도시 중에서 ‘상하이’는 중국 문학작품이나 영화에서 독특한 경향성을 나타낸다. 지난 세기 초 상하이가 낳은 최고의 작가 장애령이 쓴 많은 작품의 배경이 바로 근대와 현대가 교차하고, 부패와 전위가 공존하는 1930년대의 상하이였다. 그리고 후효현 감독이 그려낸 근대중국의 초상화였던 [해상화]도 이 시절 상하이에 대한 묘한 매력을 불러낸다. 이후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나 관금붕 감독의 [장한가]에서도 꾸준히 ‘올드 상하이’의 독특한 매력을 그려낸다. 최근 와서 상하이는 ‘모던’함으로 등장한다. 여명이 출연했던 [대성소사]가 대표적이다. 헐리우드 영화에서도 상하이의 현대적 모습은 한국인에게 강한 인상을 준다. 최근 톰 크루즈가 뛰어다니던 [미션 임퍼서블3]에도 상하이가 등장한다. 상하이를 직접 가본 사람이라면 상하이 ‘와이탄’의 휘황찬란한 야경과 김정일조차 그 천지개벽함에 놀랐다는 포동지역의 마천루에 숨이 막힐 것이다. 그런 상하이의 모습이 담긴 영화가 바로 [상하이의 밤]이다.

  [상하이의 밤]은 업무차 중국 상하이에 온 일본의 유명 스타일리스트-헤어 디자이너이기도 하고 패션 코디이기도-의 하룻밤 상하이 유람기이다. 상하이에서 열리는 아시아가요제 출연 가수들의 머리와 의상을 손봐주는 이 젊고 잘생긴, ‘앙드레 김’ 같은 존재는 축제가 끝나자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오랫동안 자신과 함께 해온 매니저이며 비서인 미호(니시다 나오미)와의 감정은 언제나 흔들린다. 자신의 격무에 대해서도 고민하기는 마찬가지이고. 하릴없이, 정처 없이 상하이 밤거리를 나선다. 신분증 하나 없이, 돈 한 푼 없이.... 그 시간에 상하이의 한 택시기사(여자!)도 역시 감정의 갈림길에서 흔들리고 있다. 일본유학을 준비 중인 철없는 남동생을 책임지는 조미의 직업은 택시운전수. 언제나 터프하게 드라이빙하는 조미의 차를 수리해주고 손봐주는 정비사 동동(곽품초)에게 연정을 느끼지만 한 번도 자신의 마음을 고백해 본적이 없다. 오늘도 어제와 다름없이 주빗대다 일터로 나간다. 이제 중국말 전혀 못하는 일본 남자와, 일본말 전혀 못하는 중국여자가 한 밤의 상하이에서 조우하게 될 것이다. 서로 감정에 상처입고 사랑에 대해 고뇌하면서 말이다.

  [상하이의 밤]은 중국과 일본의 합작영화이다. 몇 해 전부터 아시아 각국에서는 서로의 장점을 부각시키며 새로운 영화 시장을 창출하기 위한 합작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한국에서는 [무사], [비천무], [중천] 등의 무협물이 중국과 손잡고 만들어졌다. 꼼꼼하기로 소문난 일본에서도 중국과의 영화합작이 오래 전부터 꾸준하게 이루어졌다. 중국영화의 일본소개에 주력해왔던 일본의 ‘무비아이 엔터테인먼트’도 이런 중국과의 합작 프로젝트에 나섰다. [첫 번째 사랑, 마지막사랑](最後の 戀, 初めての恋, 2003), [관우애](關于愛 ,2004)에 이어 [상하이의 밤]이 이 영화사가 세 번째 만든 합작작품이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중국과 일본 사람이 등장하고 , 국경을 뛰어넘는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이건 전혀 뜻밖이다. 멜로에 강세가 있다고 여겼던 충무로는 무협에 매달리고, 사무라이에 능할 것이라고 여겼던 일본은 계속 러브스토리를 찍고 있으니 말이다.

  [상하이의 밤]에는 반가운 얼굴이 등장한다. 10년 전 중화권을 열광에 빠뜨렸던 드라마 [황제의 딸]의 통통 튀는 매력의 중국여배우 조미가 택시 운전사로 등장한다. [황제의 딸]이후 많은 드라마와 많은 영화에 출연했지만 ‘소연자’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상하이의 밤길을 달리는 ‘택시 드라이버’ 조미의 싱싱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일본의 유명 스타일리스트 미즈시마 나오키로 출연하는 배우는 모토키 마사히로이다. 몇 년 전 한국에 일본영화가 정식으로 해금되고 나서 소개되었던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오래된 작품 [팬시 댄스]나 [으랏차차 스모부], [쉘 위 댄스] 등으로 일찌감치 소개된 일본배우이다. 이들 영화에 감초 같은 역으로 출연했던 배우 타케나카 나오토도 여전히 코믹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브루스 리(이소룡) 흉내를 곧잘 내는데 과장된 코믹이라고 할만하다. 조미를 설레게 만들었던 수리공 역을 맡은 배우는 대만의 인기 배우 곽품초이다. 한국에도 팬들이 있다. [메이드 인 홍콩]이후 양아치 같은 역할만 줄곧 맡아왔던 이찬삼이 통역 역할로 출연한다. 반가운 얼굴. 아.. 그리고 올 하반기 홍콩 영화계 최대 기대작 중의 하나인 주성치의 [장강 7호]에 등장하는 장우기라는 여배우도 이 영화에 출연한다.

  멜로물 관점에서 보자면 [상하이의 밤]은 새로운 것은 없다. [로마의 휴일]에서 [비포 선라이즈], [노팅힐] 등 이국적인 환경에 처해진 두 남녀가 하룻밤 정을 나누며 - 단지 서로의 신세타령을 들어주기만 하더라도 - 새로운 존재, 새로운 사랑에 대한 희망을 가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언어가 통하지 않고, 밤이란 시간대에, 택시 속이란 좁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이국적 정취를 만끽하게 할만하다. 이 영화는 흥행에선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비현실적인 설정이 너무 많이 쓰였다는 점이 아쉽다. 조미와 모토키 마사히로의 로맨스를 완성시키기에도 빠듯한데 너무 많은 커플의 로맨스를 펼치다보니 소화불량에 걸릴 정도이다. 그리고 립스틱으로 차장에, 유리창에, 길바닥에 넘치도록 ‘사랑한다’고 써대는 것은 분명히 판타스틱하지도, 로맨틱하지도 않은 오버액션이다.

  상하이 여자가 외국남자와의 로맨스를 어떻게 펼치는지 정말 알고 싶다면 저우웨이후이의 소설 [상하이 베이비]를 권한다. 참 이 영화는 올 9월 22일 일본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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