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빙화(魯氷花)] 아름답고 슬픈 대만영화
중국영화리뷰 2008/02/23 09:10 |
[Reviewed by 박재환 1998/?/?] (이 글은 오래전 1998년 즈음에 쓴 글입니다. 다음에 기회되면 다시 보고 다시 올리겠습니다) 방안에 굴러다니던 오래된 비디오테이프를 돌리는데, 왠 낯선 노래가 들리는 것이었다. 아주 단조로운 멜로디에 구성진 음성. 그래서 화들짝 첫 장면부터 보니, 몇 해 전인가 MBC에서 방영되었던 <로빙화>였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비디오로 출시된 것이니 한번 꼭 보기를 권하는 영화이다. 우리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의 이미지와 <여고괴담>이상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대만영화이다. 가난한 시골 소년의 순수한 꿈과 좌절을 통해 빈부 격차와 교육 문제, 그리고 독재 정치에 대한 풍자를 하나 가득 담고 있는 영화로, 가족 관계에 대한 묘사도 뛰어나다.
먼저, 영화보기 전에 대만에 대한 진짜 짧은 브리핑. 대만의 장개석 독재와 우리나라 박정희의 개발독재시대를 살온 사람들에게는 아마 이 영화가 아스라한 추억들을 상기시켜줄지도 모른다. 개인의 창의력이 말살되고, 국가-민족 문화창달이라는 거창한 국정지표에 내몰리던 그 한 시대가 배경이니 말이다. 오늘날 대만은 <자유중국>이라는 국가명칭때문에 꽤나 민주국가로 대접받지만, 그 나라도 한때는 백색테러와 공산대륙수복이라는 허황된 이데올로기로 신음하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장개석이 죽고, 장경국이 죽고, 새로운 대만 테크노크라트 이등휘가 등장하면서 이 작은 섬나라 대만에도 선진화된 자유민주주의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물론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아름다운 풍경 너머로, 그리고 감동적인 이야기 안에 스며있는 슬픈 현대 대만사를 꿰뚫어 보는 재미 또한 대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무거운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가 1989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특별상과 90년 이탈리아 영화제에서 은상을 탄 것은 아마 그러한 정치적 이유 때문일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현대 영화라는 것은 그 사회의 시대상을 투영하는 것이기에 한번 진지하게 감상하는 기회가 되었음 한다. 정치적 의미가 탈색된 순수 문예물로서, 그리고 붕어빵 찍기와 다름없는 잘못된 교육이 만들어내는 한 '천재소년 죽이기'를 지켜보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화면가득 노란 꽃을 보여준다. 루빙화(魯氷花-dull-ice flower 음..정말이지 꽃에는 조예가 전혀 없는 박재환이어서 설명을 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이다. 그리고 한 귀여운 꼬마 여자애의 나레이션이 흐른다. "이건 루빙화이고, 한때 잠깐 피었다가 시들면 대만 농부들이 그걸 차나무에 거름으로 쓴다. 죽어서도 좋은 향기를 전해주는 것이다"라는 말을. 이 꼬마여자애의 남동생이 주인공이고, 그들의 어머니는 살아생전 머리에 루빙화를 꽂고 다닌 모양이다. 그리고, 그 가족-아버지, 누나, 주인공 소년은 차 밭을 가꾸며 가난하게 살아간다.
곧 호수인지 강인지를 보여주며, 아름다운 대만의 시골풍경- 차 밭을 구경하게 된다. 뒤에 나오는 음악이 싱그럽다.
魯氷花
작곡: 진양(陳揚) 작사: 요겸(姚謙)
天上的星星不說話 地上的娃娃想마마
天上的眼睛zha3yazha3 마마的心ya魯氷花
我知道半夜的星星會唱歌 想家的夜晩
ta就這樣和我一唱一和
我知道午後的?風會唱歌 童年的蟬聲
ta總是gen風一唱一和
當手中握住繁華 心情que變得荒蕪
才發現世上一切都會變卦
當?春剩下日記 烏絲就要變成白髮
不變的只有那首歌
在心中來回的唱 天上的星星不說話
地上的娃娃想마마
天上的眼睛zha3yazha3 마마的心ya魯氷花
家鄕的茶園開滿花
마마的心肝在天涯 夜夜想起마마的話
閃閃的淚花 魯氷花 ya 閃閃的淚光 魯氷花
난 알아요 한밤에 별이 노래한다는 걸
고향 생각에 잠못이루는 밤 우리 함께 노래 불러요
난 알아요 한낮에 바람이 노래한다는걸
어린매미 바람 소리에 맞춰 함께 노래 불러요
가진게 많을수록 마음은 오히려 황폐해지고
세상의 모든게 변하는 걸 알게되는데
젊은시절 어느덧 가버리고 검은 머리 백발로 변했지만
그때 그 노래만은 변함없이 마음으로 부르고 있어요
하늘위의 별은 말이 없고 땅위의 소녀는 엄마를 그리네
하늘 위의 별은 깜박이고 엄마의 마음은 로빙화
고향 차 밭엔 꽃이 만발했지만 엄마와 소녀는 멀리 있네요
밤마다 엄마의 말 생각하며 반짝이는 눈물은 로빙화
아- 반짝이는 눈물은 로빙화
(가사 번역은 MBC자막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풍경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 그리고 그에게 다가오는 우리의 어린 주인공 고아명과 누나.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끝에. "반에서 15등이에요." 누나 왈 " 제네 반은 15명이에요. 하지만 그림은 잘 그려요." 이 장면이 이 영화를 끝까지 붙잡아두는 두 남자 -선생님과 어린 제자와의 눈물어린 첫 만남 이었다.
시골 마을 중산국민학교 (中山은 중국의 국부(國父) 손문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에 새로 미술선생님이 부임하신다. 바로 첫 장면에서 그림을 그리던 남자이다. 이 미술선생님과 꼬마 소년과의 우정이 기본줄거리이다. 소년은 가난한 집안에서 아버지를 돕고, 누나와 사이좋게 지내는 그런 평화로운 분위기이다.
그림을 잘 그리지만 그에겐 높은 벽이 있다. 동네 향장(향장이라니까 마치 우리의 이장쯤 될 것 같은데. 분위기로 보아 적어도 군수 급에는 해당할 것 같다)의 아들이 같은 반이고, 작년에도 이 애가 미술대회에 나가는 빽이 든든한 급우인 것이다.
소년 고아명이 그림을 그리는 장면은 아름답다.
고아명이 개를 묶어놓고 그릴 때. 그 붉은 노을에 개를 빨갛게 그린다든가, 어느날 미술선생님 왈 "파란 것은 무엇이지?" "태양이요?"
"태양이 왜 파란색이지?"
"그래야 아버지가 지쳐 쓰러지지 않죠."
그 전날 아버지는 차밭에서 일하다 태양열에 쓰러졌었다.
어린이의 미적 감각과 심성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무거운 이야기..
미술선생님이 어린이 미술반을 지도하는데. 향장아들이 열심히 색칠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 " 멀리 있는 국기는 자세하게 그릴 필요 없어. 빨갛게만 칠해도 국기인줄 알아." 그러자, 다른 선생님이 거들면서 한다는 소리가.."그건 잘못된 말이에요. 공산당기도 빨간색이에요."
그리고, 웅변대회에서 꼬마 애가 열심히 선생님이 써준 원고를 과장된-원래 웅변대회가 그런 모양인지 모르겠지만-제스쳐로 외친다.
"..빼앗긴 대륙을 수복하고.. 어쩌구.. 중화민국의 장구한 문화를 부흥시키고, 애국애족, 어쩌구. 문화창달..저쩌구...." 도대체 누가 저 꼬마 애들에게서 그런 엄청난 국가대업을 요구하게 되었을까...
선생님들이 미술대표를 뽑을 때.. 하는 소리..
"지금 바야흐로 민주의 시대잖아요. 다수결로 대표를 뽑읍시다."라는 교무회의에서 느낄 수 있는 어설픈 대만민주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
학교에 오는 떠돌이 날품장사가 어느 날 가전제품을 가져와서는 팔고 있다. "이 라디오 성능이 좋아서 공산당 방송도 잘 들려요."라는 귓속말. 그리고 언제나 교실 벽에 따악 걸려있는 손문까지...
향장선거를 앞두고 벌이는 몇 가지 헤프닝은 이 영화의 가볍지 않은 무게를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어린이의 미술만으로도 아름다운 영화이다. 마치 전혀 그런 의도는 아니지만, 한때 신문의 행간을 읽는다는 그런 느낌마저 들만큼 좋다.
예상대로 전국미술대회에 나가는 학교대표로 향장의 아들이 나가고 소년 고아명은 운다. "선생님 모든 게 부잣집 아이들이 잘 하는 것 같아요.." 울며 학교 문을 나선 어린 고아명은 절필(?)을 선언하며 크레파스를 물에다 버린다. 그리고, 어린 고아명은 곧 죽는다. 병으로. 미술선생님은 분노에 치를 떨며 고아명을 그림을 들고 사라진다. 그리고, 그 그림이 세계어린이 미술대회에서 1등상을 타게 되고, 이 작은 시골마을에선 천재 소년 고아명에 대한 찬사 물결이 출렁댄다.
전교생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예의 그 일본 군국주의적 냄새까지 나는 제식동작과 더불어, 향장어르신네의 찬사...
" 이 동네가 명당자리이고 언젠가는 천재가 태어나리라 알았다..제가 향장으로 봉직하는 동안 범죄예방과 민생치안에 힘쓸 것을 힘껏 약속드리며. 또..무엇다도...미술..음악.."
(어릴 때 울면서 본 텔레비전 만화영화- 플란더즈의 개 마지막회 장면이 이런 내용이었다....파트라슈 개 이름은 기억나는데 우유배달꾼 소년이름이 생각 안 난다. 쩝...)
그리고, 영화내내 너무나 귀여운, 애처로운 연기를 하던 누나가 연설대에 올라 동생을 회고한다.. " 아버지가 표준어를 몰라서..제 동생 때문에 이렇게 더운 날씨에 햇볕 아래에 있게 해서 죄송스럽고 감사합니다. 동생이 그린 그림은 괴상했지만 내가 보기엔 아름다왔습니다. 지금은 모두 동생을 천재라 하지만.. 상을 받기 전에는 곽우찬 선생님만이 그러셨습니다. 동생은 마을풍경을 큰 도화지에 그려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는데..
(어린 학생들 흑흑 흐느끼고 나도 흑흑 흐느낀다.) 그만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을의 풍경은 변함 없는데. 동생의 그림은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동생은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 갔습니다."
소년의 무덤에서 그림과 상장을 불태우는 사람들...
흰 새 한 마리가 저 푸른 하늘을 날아간다.
영화에 덧붙여.. 향장으로 출연하는 배우. 진송용(陳松勇)은 대만에서 상당한 파워-정치적 입지를 갖춘 배우이다. <비정성시>에 나온 배우임... 총통선거때는 각 당파진영에서 서로 데려갈려고 하는 국민배우이기도 하고 말이다. 언제나 중국 표준어 대신 대만말-민남어 사투리만을 구사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魯氷花 (1989) 감독: 양립국 (楊立國) 각본: 오념진 (吳念眞)
'중국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로즈] 주윤발과 장만옥의 눈물의 멜로드라마 (1) | 2008/02/23 |
|---|---|
| [천룡팔부] 장편소설 2시간 영화로 줄이는 비법 (1) | 2008/02/23 |
| [색계] 장애령이 쓰고, 이안이 그리고, 탕유가 논다 (1) | 2008/02/23 |
| [전로정전] 정신병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 (1) | 2008/02/23 |
| [럭키 가이]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1) | 2008/02/23 |
| [루빙화(魯氷花)] 아름답고 슬픈 대만영화 (2) | 2008/02/23 |
| [파괴지왕] 악숑 가멘! 주성치 (1) | 2008/02/23 |
| [러브 온 다이어트=수신남녀] 무거운 사랑 (1) | 2008/02/23 |
| [용재변연] 龍在邊緣 위기의 남자 (1) | 2008/02/23 |
| [리틀 청=세로상] 어린이의 눈으로 본 1997년 홍콩 (1) | 2008/02/23 |
| [영웅문 = 양과와 소용녀 = 신조협려] 김용, 옹정정, 그리고 장국영 (1) | 2008/02/23 |
Trackback Address :: http://www.kinocine.com/trackback/352
-
Subject: 로빙화 (The Dull-Ice Flower, 1989) O.S.T 중에서
Tracked from In My Dreams With U~ 2009/03/11 04:27 Delete이 영화를 언제 봤는지 잘 기억도 안난다.주말의 명화 였던가 싶은데..아무튼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때였으니..꽤 오래전 일이지 싶다.이거 보고 눈이 퉁퉁 부었으니,,ㅎㅎ주제곡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등려군이 불렀던 곡보다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천사합창단의 곡이 난 훨씬 더 좋게 느껴진다.영화도 감동깊었고, 곡 또한 상당히 좋다.노래 가사와 자세한 영화 소개는 아래 주소로..http://www.kinocine.com/trackback/352


댓글을 달아 주세요
fgfdgfg
꽃말이나 꽃에 대한 전설이라도 있으면 들어봤으면 좋으련만.....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