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 손목을 자르라, 아름다움을 봉인하라 (2017년 대명문화공장)

2017. 8. 19. 21:20공연&전시★리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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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에는 끔찍한 장면이 있을 수 있고,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  공연: 2017/08/01~10/15  예스24스테이지 2관 (구 대명문화공장 2관)
출연: 조성윤, 최재림, 김종구, 이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인도의 타지마할 궁전은 정말 근사한 건축물이다.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이기도 한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보면 타지마할 장면이 나온다.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을 상대로 등쳐먹고 사는 인도 하층민의 삶이 묘사되어 있다. 멋진, 근사한, 위대한 건축물 뒤에는 인간의 노역과, 생이별이 담겨 있을 것 같다. 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을 보면 실감하게 된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호평 받은 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Guards at the Taj)'이 지난 1일부터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물론 국내 초연무대이다. '타지마할의 근위병'은 인도계 작가 라지프 조셉의 2015년 작품이다. 라지프 조셉은 극강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타지마할’을 배경으로 아름다움의 본질적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단아한 소극장에 주섬주섬 자리를 잡은 관객들은 장내를 떠도는 역겨운 냄새에 얼굴을 찌푸리게 된다. 아마도 새 무대에서 느끼는 ‘새집증후군’의 일종인가 생각을 하다가, 몇 차례 무대를 채웠던 그 피바다 때문인가 상상하게 된다.

(공식적 공연) 시작 5분전부터 근위병 하나가 무대에 자리 잡고 꼼짝도 않는다. 그의 이름 휴마윤. 5분 뒤 공연이 ‘진짜’ 시작되면 또 다른 근위병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와서 나란히 자리를 잡는다. 바불이다. 둘은 오랜 친구이다. 두 사람은 타지마할 궁전(공사장) 입구에 서 있다. 그들은 궁전을 등지고 서 있다.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본 적이 없다. 휴마윤은 근위병답게 꿋꿋이 보초를 서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하지만 바불은 한밤의 보초가 지겨운지 끊임없이 수다를 떤다. 둘이서 함께 했던 신병 훈련시절 이야기부터, 가족 이야기, 그리고, 지금의 황제가 거처하는 ‘할렘’에 대한 은밀한 상상까지. 왕조시대 근위병의 충성심과, 청년의 우정, 그리고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수다가 이어진다. 특히 바불은 자기가 상상했다는 발명품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는다. 하늘을 나는 장치에 대해.

그런 이들에게 끔찍한 명령이 하달된다. 그들이 한 번도 뒤돌아서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타지마할 궁전이 완성되던 날이었다. 호기심에 돌아본 그들은 소리조차 지를 수가 없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건축물이 저 너머 펼쳐졌기 때문이다. (물론, 관객은 볼 수 없다) 아그라의 샤 자한 황제는 이런 아름다운 건축물이 다시는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면 끔찍한 명령을 내린다. 공사에 참여한 모든 인부의 손을 자르라는 것이었다. 무려 2만 명의. 90여 분의 연극의 전반부 이야기는 여기까지이다.

휴마윤과 바불은 명령에 따른다. 무대는 마치 지하 감옥 같은 밀폐된 공간으로 바뀐다. 바닥은 피가 흥건하다. 그야말로 피로 연못을 이룬다. 벽에는 핏자국이 선명하고 무대 한쪽에는 잘려나간 손목들이 즐비하다. 그들은 밤새 절단작업에 매달린 것이다. 바블이 2만 명, 4만 개의 손을 잘랐고, 휴마윤이 잘린 부위를 인두로 지지는 작업을 수행한 모양이다. 그리고 아침을 맞은 그들은 이제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자기들이 한 신성한 임무를 변호하기도 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바뀐 생각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상상의 발명품 - 구멍이 없는 주머니-에 대해 집착한다.

휴마윤과 바불의 비극은 거기가 끝이 아니다. ‘아름다운 타지마할의 비밀’을 완성시키기 위한 또 하나의 임무가 남아있는 것이다.

연극이 계속될 동안 관객들은 복잡한 생각을 하게 된다. 효율적 고문도구에 대해, 손목이 잘려나갔을 때의 출혈에 따른 의학적 문제를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공연에 맞춰 한국을 찾은 작가는 “물리적으로 두 사람이 2만 명의 손목을 자르려면 6개월은 걸렸을 것”이라며 작품의 판타지를 이야기한다. 이집트 피라미드도 그렇고, 중국 시황제의 무덤도 그렇다. 엄청난 대 역사(役事) 뒤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인류의 희생이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 진시황도 자신의 무덤이 완성된 뒤 도굴을 우려하려 공사인부를 파묻어버렸다고 하지 않는가. 물론, 후손들은 그 덕분에 관광수입으로 입에 풀칠은 하겠지만 말이다.

라지프 조셉은 그러한 아이러니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무슨 아름다움? 관객들은 타지마할의 새하얀 대리석 지붕조차 만나보지 못했다. 어두운 밤에 담벼락 앞에 서있는 두 청년을 지켜봤을 뿐인데 말이다. 아마도 군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한밤에 보초병 시절 상상한 세상의 아름다움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철조망 너머, 별이 쏟아지는 저 하늘, 그리고 남쪽에 두고 온 순이 생각을 했을지 모를 일이다.

피로 온통 얼룩진 무대이지만 부지불식간에 ‘백단목’ 이야기와 ‘빨강가슴새’, 그리고 ‘상상의 발명품’들이 뜻밖의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최악의 비극이 벌어지기 직전의 소박한 희망으로 말이다. 죽은 왕비에게 사랑을 바친 샤자한 황제의 아름다움, 라지프 조셉의 아름다움, 휴마윤과 바불이 생각하는 아름다움, 그리고 관객이 생각할 아름다움. 모두 다를 것이다. 아니 다를까? 인도에 가서 타지마할을 직접 보는 사람은 여전히 아름다움을 느낄 것이다. 이 작품은 아름다움에 대한 잔인한 진실을 전해주는 것인지 모르겠다.

조성윤, 최재림이 휴마윤에, 김종구, 이상이가 바불로 각각 더블 캐스팅되었다. 10월 15일까지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에서 공연된다. 이미 짐작했겠지만 비위 약한 사람은 보면 안 되는 작품이다. 그렇다고 하드 고어한 장면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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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달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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