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칼렛 핌퍼넬] 잉글리쉬 로맨티스트 (2013년 LG아트센터)

2017. 8. 18. 22:00공연&전시★리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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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스칼렛 핌퍼넬’  공연: 2013년 7월 6일 ~ 9월 8일 LG아트센터
출연진: 박건형, 박광현, 한지상 (퍼시/스칼렛 핌퍼넬 역), 바다, 김선영(마그리트 역), 양준모,에녹(쇼블랑 역)

(박재환 2013.8.29) 18세기 말 프랑스는 온통 혁명의 물결로 들끓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뚜와네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나서도 프랑스는 한동안 혼란의 연속이었다. 수백 년간 지속된 ‘앙상 레짐’을 일거에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은 법. 참혹한 피의 혁명 시기가 이어진다. 왕족/귀족은 무조건 나쁘고 시민의 정의는 항상 옳은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순간이다. 그런 역사는 역사책에서만 보는 법은 아니다. 만화책 ‘베르사유의 장미’에서도 볼 수 있고 뮤지컬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시기를 다룬 뮤지컬 작품에는 ‘스칼렛 핌퍼넬’, ‘두 도시 이야기’ ‘몬테크리스토’, 레미제라블‘ 등이 있다. ‘스칼렛 핌퍼넬’은 나머지 작품에 비해선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이지만 나름 유명세를 누리는 작품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고 루이 16세가 기요틴의 이슬로 사라지며 대혁명의 불꽃을 내뿜던 1792년 즈음의 이야기이다. 프랑스의 시민세력들이 왕족과 귀족에 대해 뼈에 사무친 원한을 가지고 단두대에서 그들의 목을 싹둑싹둑 자를 때, 바다 건너 영국 출신의 한량 귀족은 몰래 프랑스 귀족들을 살린다는 이야기이다.  볼거리 많은 이 뮤지컬 작품이 지난 달 한국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한국 초연이다.
 
스칼렛 핌퍼넬이 누구? 
 
프랑스혁명의 중심 파리를 배경으로 낭만적 혁명과 국경을 넘나드는 사랑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1903년 헝가리 출신의 바로네스 오르치(엠마 오르치)가 쓴 소설이 원작이다. 헝가리 귀족 출신으로 영국에서 자란 여류작가가 ‘귀족이라면 목을 자르려 덤벼드는’ 프랑스 혁명시민에 대해 무슨 좋은 감정을 갖고 있을까 생각된다. 그가 쓴 ‘스칼렛 핌퍼넬’은 그런 내용이다. 영국의 한량귀족 무리가 비밀결사대를 만들어 프랑스의 혁명 감옥에 갇힌 귀족과 단두대에 오를 사형수들을 몰래 빼돌리는 것이다. 워낙 귀신같은 솜씨여서 영국 사교계와 프랑스 정계에서는 ‘스칼렛 핌퍼넬’이라는 이름이 오늘날 ‘홍길동’과 ‘아이언맨’과 같은 명성을 얻는다. 오르치는 ‘스칼렛 핌퍼넬’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 그리고 연극대본을 남편과 함께 여러 편 내놓았다. 피 끓는 혁명과 낭만적 칼싸움, 사랑과 전쟁이 결합된 내용이다 보니 할리우드와 영국에선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1997년 마침내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만들어진다. ‘지킬 앤 하이드’, ‘몬테크리스토’, ‘황태자 루돌프’ 등 한국에서도 인기를 끈 히트 뮤지컬을 만든 프랭크 와일드혼이 주옥같은 음악으로 ‘스칼렛 핌퍼넬’을 무대 위에 되살려놓은 것이다. 한국 초연무대에서는 박건형, 박광현, 한지상이 히어로 스칼렛 핌퍼넬 역을 맡았고, 바다와 김선영이 퍼시의 부인이자 혁명의 바다에서 갈등하는 마그리트 역을, 그리고 스칼렛 핌퍼넬을 기필코 단두대에 보내고 말겠다는 혁명시민 쇼블랑 역을 양준모와 에녹이 맡았다.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 

 
프랑스 사교계의 꽃이며 ‘코메디 프랑세즈 극장’ 최고의 인기배우인인 마그리트 생 쥐스트는 들뜬 마음에 마지막 무대공연을 갖고 있다. 그녀는 곧 영국의 돈 많은 귀족 퍼시 블레이크니와 결혼할 예정이다. ♬Storybook♬  이때 프랑스 혁명을 이끄는 ‘시민’ 쇼블랑이 등장하여 공연을 중단시킨다. 마그리트와 동생 아르망은 퍼시와 함께 영국으로 떠나고 쇼블랑은 드 생 시르 백작을 단두대에 보낸다. ♬Madame Guillotine♬
 
마그리트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꿨지만 이내 퍼시와 냉랭해지기 시작한다. 퍼시의 친구였던 생 시르 백작의 처형 뒤에는 마그리트의 배신이 있었던 사실을 퍼시가 알게 되었기 때문. 영국 최고의 한량 귀족 퍼시와 프랑스 최고의 사교계의 여왕의 결혼은 첫날부터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Prayer♬
 
퍼시는 한량 친구들과 함께 프랑스혁명의 소용돌이에서 죽음의 위기 빠진 억울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비밀조직을 만들기로 한다. 혁명동지들은 ‘스칼렛 핌퍼넬’ 문양의 인장이 찍힌 종이로만 연락을 취하기로 한다. 세상은 이들 영국귀족 패거리를 결코 혁명의 비밀결사대로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최대한 바보스럽고 한심하게 ‘패션에만 골몰하는’ 한량 패거리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익살스런 이들은 프랑스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구하자는 열정에 불탄다. ♬ Into The Fire♬
 
스칼렛 핌퍼넬 일당의 대활약으로 프랑스 기요틴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할 프랑스 구체제의 귀족들이 영국으로 빼돌려지자 로베스피에르의 분노는 극에 차오르고 심복 쇼블랑에게 스칼렛 핌퍼넬의 정체를 알아내라는 특명을 내린다. 쇼블랑은 기필코 스칼렛 핌퍼넬의 정체를 밝히겠노라며 이를 간다. ♬Falcon In The Dive♬
 
스칼렛 핌퍼넬 비밀조직에 합류한 마그리트의 동생 아르망이 프랑스에 갔다가 쇼블랑에 의해 체포된다. 쇼블랑을 아르망을 교수대에 보내겠다며 스칼렛 핌퍼넬의 정체를 밝히는데 협조하라고 협박한다. 

 
스칼렛 핌퍼넬이 영국 황태자가 연 궁중무도회에 참가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쇼블랑은 그 기회를 이용한다. 이번 한국 공연에서는 이 무도회 장면이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스칼렛 핌퍼넬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혈안이 된 쇼블랑, 동생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그리트, 그리고 여전히 여유롭게 농담을 즐기는 퍼시가 무도회장 ‘거울의 방’에서 춤추며, 노래하며, 절묘한 심리전을 펼친다. ♬The Riddle♬
 
프랑스 귀족을 다 죽여서라도 혁명의 성공을 노리는 쇼블랑과 진중함이라곤 전혀 없는 패셔니스트 퍼시, 그리고 마그리트가 한밤의 다리 위에서 조우한다. 하지만 이 멍청하고 한심한 퍼시가 바로 그 스칼렛 핌퍼넬이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동생을 구하려 프랑스로 간 마그리트도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다. 쇼블랑은 이들을 도망가게 놔뒀다가 스칼렛 핌퍼넬 일당을 일망타진할 계획을 세운다. 숨 막히는 추격전 끝에 퍼시의 정체가 드러나고 쇼블랑과 칼싸움이 펼쳐진다. 결국 퍼시는 쇼블랑에 의해 기요틴에 세워지고 목이 떨어져나간다.
 
승리에 들뜬 쇼블랑 하지만 그 기쁨은 잠시. 단두대에서 걸어 내려오는 퍼시. 이 모든 것이  퍼시의 계략이었다. 쇼블랑의 부하들은 퍼시의 기지로 모두 엉뚱한 곳으로 달려갔고, 기요틴 주위에는 퍼시의 혁명동지들만 남아있었다.  퍼시는 스칼렛 핌퍼넬 문양의 증거를 쇼블랑 품에 안기고는 사랑하는 아내 마그리트와 나머지 한량 동지들과 함께 배를 타고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영국으로 향한다.
 
소설과 뮤지컬
 
한국초연에 맞춰 원작소설 <스칼렛 핌퍼넬>이 국내에 번역 출판되었다. (이나경 번역, 21세기북스) 저자 이름은 ‘엠마 오르치’로 표기되어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그리고 한국무대에 오른 뮤지컬은 소설을 기반으로 다소 변형되었다. 퍼시 블레이크니가 매력 넘치는 멍청이로 더욱 활기차게 그려졌고, 그의 한량 무리들이 더욱 생생하고 코믹하게 등장한다. 또한 뮤지컬에서는 아르망이 마그리트의 남동생으로 출연하였지만 소설에서는 아르망이 8살 손위의 오빠이다.
 
프랑스대혁명 서슬 퍼런 파리에서 스칼렛 핌퍼넬이 펼치는 유쾌한 활극은 소설 초반부에 이런 식으로 등장한다. 당시 혁명의 수도 파리에서는 매일 수십, 수백 명이 기요틴에서 사형 당한다. 귀족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파리를 탈출하려고 하고 혁명수비대는 성문마다 눈에 불을 켜고 보초를 선다. 조금 전 꼼꼼하게 수색을 마친 수레 하나가 지나가자 곧바로 경비대장이 부하 수십 명을 이끌고 숨 가쁘게 달려와서는 그 경비대원을 족친다. “방금 보낸 놈이 누군지 알아? 스칼렛 핌퍼넬이 변장했던 거야. 넌 사형이야!”하면서 허겁지겁 앞 수레를 추격한다. 알고 보니 갑자기 달려와서 호들갑을 뜬 경비대장이 바로 스칼렛 핌퍼넬이었고, 그의 부하들로 분장했던  사람들이 바로 기요틴에서 탈출한 프랑스 귀족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르르 몰려서 성문을 빠져나간 것이다. 소설과 뮤지컬에서는 이런 식으로 스칼렛 핌퍼넬이 대담하고 유쾌하게 프랑스대혁명을 유린, 농락한다.
 
뮤지컬에서는 퍼시의 우스꽝스런 패션 감각에 초점을 ‘더’ 맞춘다.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피의 혁명에도 관심 없고 오직 최신 ‘빠리’ 유행패션에만 얼이 빠진 퍼시의 연기는 효과만점이다. 프랑스의 혁명주체세력을 안절부절못하게 만든 히어로가 이런 허당이다니! 하다못해 쇼블랑도 자기 눈앞에서 그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퍼시/스칼렛 핌퍼넬’의 이런 더블 라이프는 이후 조로, 슈퍼맨, 배트맨, 아이언맨 등 ‘슈퍼 히어로 캐릭터의 숨겨진/가려진 비밀인생의 컨셉트로 많이 활용된다.
 
프랑스대혁명 시기 영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펼쳐지는 혁명과 반혁명의 극적인 이야기는 프랭크 와일드혼의 웅장하고 멋진 음악과 배우들의 맛깔 나는 연기, 벽면을 가득 채운 1만 송이 장미와 거대한 소도구(배), 그리고 기요틴의 등장으로 관객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리기에 족하다. 한국 초연무대는 내달 8일까지 계속된다.
 
 참, ‘스칼렛 핌퍼넬’은 영국 시골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란다. 우리나라에선 ‘뚜껑별꽃’, 혹은 ‘봄별맞이꽃’이라는 예쁜 이름으로 불린다.  (박재환, 2013.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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