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견 (김성제 감독,2015)

2015. 6. 29. 09:16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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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이 되는 어느 사회

 

 

 

김성제 감독의 영화 ‘소수의견’은 촬영을 끝내고도 1년 반이나 창고에서 필름을 썩혀야했다. 당초 이 영화의 배급을 맡기로 했던 CJ 측이 뚜렷한 이유 없이 개봉을 미루다가 결국 다른 배급사에 의해 가까스로 개봉이 되었다. 짐작은 간다. 얼핏 보아도 용산철거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내용에, 사법정의를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굉장히 불편한 영화일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김성제 감독 말마따나 법정스릴러로 이 영화를 본다면 영화는 어떨까.

 

‘서대문구 북아현 13구역 6블럭’ 뉴타운 재개발을 위한 강제철거가 진행된다. 곧 철거될 운명에 놓인 건물 하나를 본거지로 결사항쟁하는 철거민들이 있고, 진압장비를 갖춘 경찰과 용역이 진입한다. 멀리서 사회부 기자들이 흥분하여 현장을 취재하고 있다. 화염병이 터지고 진압봉이 허공을 마구 가르는 가운데 돌발사태가 발생한다. 철거민의 중학생 아들이 죽고, 진압경찰이 현장에서 죽는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다. 경찰은 서둘러 발표한다. 학생은 철거용역에 맞아죽었고, 죽은 학생의 철거민 아버지가 경찰을 죽였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한국사회에서 일상화된 시위진압현장에서 발생한 많은 사건사고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 사건의 재판에서 철거민 박재호(이경영)의 변론을 맡은 것은 국선변호사 윤진원(윤계상)이다. 뻔한 사건일 것 같았는데 열혈사회부기자 수경(김옥빈)이 등장하면서 거대한 폭력을 감추려는 ‘국가’ 대(對) 보호받지 못하는 철거민 ‘개인’의 재판전쟁이 되어버린다. 어린 아들이 용역이 아니라 경찰의 진압봉에 맞아 죽었다는 것을 둘러싼 진실공방, 사건을 은폐, 혹은 최소화 시키려는 검찰과 큰 집(영화에서는 청와대를 지칭)의 수작, 그리고 정의로운 변호사와 진실을 까발리기 위해 태어난 듯한 기자가 한데 엉켜 영화를 드라마틱하게 끌고 간다.

 

영화는 2009년 초 용산에서 발생한 철거현장 화재사건을 떠올린다. 당시 도시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철거작업이 진행 중이었고 장기농성 중인 철거민과 경찰, 용역이 충돌했다.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컨테이너를 탄 경찰특공대가 투입되고 바닥에 뿌린 시너에서 불이 붙고, 결과적으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죽고 많은 사람이 다쳤다. 진압완료 후 재개발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보상을 둘러싼 반발을 계속되었고, 재판은 이어졌다. 아직 일반화되지 않은 ‘국민참여재판’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고, 검찰이 수사기록열람과 등사를 거부했고, 변호사는 재판부기피신청을 냈다. 물론, ‘용산참사’재판은 이런 신청이 다 기각되었고 대법원 판결까지 끝났다.

 

용산참사의 과정을 지켜보던 작가 손아람은 ‘소수의견’이란 제목으로 소설을 썼고 김성제 감독은 그 소설을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는 원작소설의 정신을 이어받았지만 세부적인 면에서는 다르게 진행된다.

 

대한민국에서의 법 집행과정이나 사법시스템에서 보자면 이 영화는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만큼 흥미롭다. 철거현장의 경찰-용역의 모습부터 시작하여 대형로펌과 일개 국선변호사, 검찰과 권력층의 역학관계, 그리고 야당의원과 야 성향의 언론까지 다양한 ‘관계자의 스탠스’를 확실히 보여준다. 게다가 미국영화에서나 보아온 배심원제도와 유사한 ‘국민참여재판’의 정의로운 모습도 볼 수 있다.

 

법정드라마의 묘미라면 검찰과 변호사의 불꽃 튀는 법리공방, 증거채택을 둘러싼 숨 막히는 대결, 증인을 둘러싼 힘겨루기, 그리고 마침내 등장하는 숨은 증인과 용기 있는 증언, 이런 요소들이 적절히 배합되어 영화를 클라이맥스로 이끈다. 김성제 감독은 이런 법정드라마의 요소를 충실히 배치했다.‘소수의견’에서는 하버드법대 엘리트 변호사 대신 ‘족보도 없는 지방대 출신의 국선변호사’가 정의의 법 지킴이 역할을 해낸다. 그 과정에서 이혼전문변호사(유해진)의 유머감각과 정론직필만을 울부짖는 신문사 기자의 활극이 영화적 재미를 더한다.

 

법정드라마는 결국 정의는 이길 것이고, 약자는 보호받는다는 정석을 보여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현실답게 진실이 승리했다거나, 정의가 이긴다거나, 악인은 처벌받는다는 것은 아니다. 감독은 할 이야기 다하고 나서도, 못다 한 이야기까지 덧붙이는 것이다. 배심원단은 전원 무죄를 주장했지만 판사는 유죄를 판결했다. 그야말로 ‘소수의견’이 최종결정이 된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 적어도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국민적 홍보효과는 있다. 우리나라 국민참여재판에서는 배심원의 유죄·무죄에 대한 평결과 양형에 관한 의견은 ‘권고적 효력’을 지닐 뿐 재판부에 법적인 구속력은 없다. 즉, 국민참여재판에서 판사는 배심원의 평결과 다른 결정(판결선고)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2008년부터 시행되어왔다. 기사를 찾아보니 시행 7년동안 1368건의 형사재판에서 국민참여재판이 시행되었고 1274건(93%)가 배심원의 평결과 판사의 판결이 일치했다는 조사가 나왔단다. 법만 공부하고 법만을 보아온 판사와, 전문적 법 지식 없이 참여하는 국민의 법 감정이 이 정도 많이 일치한다는 것은 다행인 셈이다. 용산참사 재판에서는 국민참여재판이 기각되었었다. (박재환 2015.6.28 +KBS TV특종 +네이버연예뉴스)

 

 


소수의견 (2015년 6월 24일 개봉)
감독: 김성제 출연: 윤계상 유해진 김옥빈 이경영 장광 김의성 권해효
제공/배급: (주)시네마서비스 제작:(주)하리마오픽쳐스 홍보:앤드크레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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