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순수의 시대, ‘세 남자와 한 여자’

2015. 3. 4. 20:29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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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감독의 영화 ‘색,계’(色,戒 Lust,Caution)는 제목부터 철학적이었다. 더군다나 중간에  ‘쉼표(,)’를 넣은 것은 뭔가 한 단계 더 생각하게 만든다. 내일 개봉하는 안상훈 감독의 ‘순수의 시대’는 제목부터 문학적이다. 게다가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을 다룬다니 뭔가 근사한 작품이 나올 것도 같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제목부터 관객을 단단히 속인다. 아무리 보아도 순수하지 않은 캐릭터가 치명적이지도 않은 사랑이야기를 펼치기 때문이다.

 

‘순수’의 상징은 주인공 김민재 장군(신하균)일 것이다. 여진족 어미의 소생으로 정도전이 거둬 키운 민재는 정도전의 승승장구와 함께 태조 이성계의 오른팔이 될 정도로 출세가도를 달린다. 강골 무사 기질의 그에게 태조가 직접 자신의 왕권과 조선의 운명을 부탁할 정도였다. 민재의 아들 진(강하늘)은 왕의 부마이다. 역사서에 부마에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없다. 공주의 존재만큼이나 부마는 역사의 뒤안길에서 조용히 숨만 쉬다 사라진 존재였다. 진은 그런 자신의 운명을 저주할 만큼 공주 옆에서는, 왕의 면전에서는 최대한 엎드린다. 하지만 사가(私家)에 나가 패악질을 저지르는 성정이 나쁜 놈이다. 그의 패악질에 걸린 여자 중 하나가 바로 기녀 가희(강한나)이다. 운명적으로 김민재 장군이 가희에게 경도된다. 또 한 남자. 왕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난 이방원(장혁)까지. 세 남자는 한 여자와 이래저래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분명 이들은 각기 원하는 바가 있었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칼을 잡고, 옷고름을 푸는 것이다.

 

사극이 처음인 신하균은 완벽한 무인의 몸을 만들었다. 조선시대에 초콜릿 복근이라니. 그런데 그 황홀한 복근은 칼과 칼의 부딪침이 아니라 강한나와의 정사 씬에서 빛을 발한다. 정사 장면이 어지러워질수록 치명적인 ‘왕자의 난’을 보여줘야 할 영화가 흔들린다.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인 캐릭터는 가희이다. 주요한 세 남자의 공통분모가 되는 흔치 않은 캐릭터이다. 강한나의 연기도 충분히 도전적이다. 이방원의 야심과 김민재의 순정을 극적으로 교차시키고 싶은 감독은 이 가희라는 여인을 최대한 활용한다. 물론, 가희라는 인물을 너무 ‘남용’하다 보니 영화를 핏빛이 아니라 핑크빛으로 물들이고 만다.

 

이 영화를 감독이 의도한대로 ‘한 여인을 향한 무인의 순수한 애정’으로 보고 싶다면 ‘조선초 정도전-이방원의 대결구도’라는 사전정보를 뇌리에서 지워버려야 할 것이다. 칼과 칼이 부딪치고, 왕권이 어수선하던 어떤 '불특정의' 시기에 왕과 무사와 왕자와 파란만장한 한 여인네가 서로 얽히고 설켜 권력과 사랑을 얻고자 몸부림을 치는 것으로 이해해야한다. 물론 그 ‘몸부림’에 방점이 찍히게 되면 ‘순수’가 퇴색하고만다. 이 영.화.처.럼.  (by 박재환 2015.3.4. +KBS TV특종★영화)

 

2015년 3월 5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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