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2014. 12. 29. 18:29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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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님아, 그 강을 '혼자' 건너지 마오

 

서로 사랑하여, 서로 인연이 되어 부부의 연을 맺은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운명의 시간은 얼마나 될까. 백년해로(百年偕老)라고는 하지만 한 남자가 한 여자를, 한 여자가 한 남자를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하고, 같이 삶을 마무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문학적 수사일 뿐이리다. 그런데 최근 개봉된 영화 한 편이 블록버스터 공세 속에서 그야말로 아날로그적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바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독립영화이다.

 

영화는 강원도 횡성군 산골마을에 사는 조병만 할아버지와 강계열 할머니의 오순도순 백년해로극이다. 지난 2011년 KBS 인간극장에서 ‘백발의 연인’으로 소개된 커플-노부부이시다. 두 분의 러브스토리가 얼마나 리얼하냐면 실제 나이가 정확하지 않단다. 단지 두 분의 기억과 나중에 등록되었을 ‘주민등록번호’에 따라 98세 할아버지, 89세 할머니라 말할 뿐이다. 어릴 적 데릴사위로 들어와서 궂은일을 하며 부부의 연을 맺었고 아마도 대한민국 현대사의 북새통 속에 겨우 살아남아 강원도 산골에서 오순도순 일생을 사신 두 분의 이야기는 사실 디지털 시대, 초스피드 연애세상 속에서는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기이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족보를 뒤질 필요도 없이 피붙이를 따라 두어 번만 건너뛰면 우리네 부모님, 그리고 그 윗세대에서는 분명 저런 삶과 사랑이 존재한다.

 

영화의 시작은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함께 마당을 쓰는 장면이다. 할머니는 아직도 정신이 또렷하시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시간의 강, 세월의 흐름에 반쯤은 몸과 마음을 맡긴 상태임을 관객들은 눈치 챈다. 두 사람의 남은 사랑의 시간, 또렷한 의식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갈 날은 얼마나 될까.

 

진모영 감독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마지막 세월을 카메라에 묵묵히 담는다.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아프게, 그리고 때로는 영원으로 묶어둔다.

 

1년 넘게 바로 옆에서 지켜본 노부부의 인생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어느 날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읍내 속옷가게에서 내복을 산다. 요즘 아이들이 좋아할 캐릭터 그림이 그려져 있다. 가게주인이 물어본다. “손주 나이가 어찌 되나요?” 할머니가 “셋은 다섯 살이고, 셋은 여섯 살인가?” 아마도 할머니는 올 명절에 손주에게 내복을 안겨주려나 보다.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자기 용돈을 꼬깃꼬깃 아껴두었다가 설이면 겨우 한번 찾아오는 그런 피붙이에게 내미는 사랑의 선물 말이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에 할머니는 그 내복을 불태운다. 할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이전에 먼저 세상을 떠난 자신의 어린 아들, 딸이 춥지 않도록. 반백년은 더 전에 세상을 먼저 떠난 자식이 저 땅속에, 저 내리는 눈 속에서 춥지 않기를 바라며. 이제 할아버지도(아버지)도 그곳으로 가셨으니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 초반에 할아버지가 마당을 쓸다 할머니가 노래를 하라고 하자, 할아버지는 그 나이의 할아버지가 부르는 그런 타령조의 서글픈 노래를 하셨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 할머니의 노래 소리가 마지막으로 흘러나온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당신만을 사랑해요”

 

할머니 오래오래, 아니 건강하게 사세요. 여생을 평안히.  (박재환 2014.12.29  & KBS TV특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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