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약속] 황유미 vs. 삼성

2014. 2. 7. 12:47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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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분명히 존재하는 사실과 그것을 애써 감추려하는 자들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놀랍게도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알 수 없는 병으로 쓰러져 죽어간 사람의 한 맺힌 투쟁기이다.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도 놀랍지만, 기어코 극장에 내걸려 관객들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이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성숙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영화가 보여주고 들려주고 알려주고 싶어 한 바로 그 이야기를 소개한다. 믿을 수 없다면 ‘추적 60분’을 찾아보거나 기사를 검색하거나 극장으로 가서 이 영화를 직접 꼭 보시라 권하고 싶다. (상영관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고등학교를 나온 뒤 곧바로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한 뒤 1년 8개월 만에 알 수 없는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 결국 2007년 3월 백혈병으로 삶을 마감한 황유미 씨의 이야기를 극화했다. 영화에서는 ‘진성반도체’ ‘윤미’로 등장한다.
 
또 하나의 약속  “500드리죠, 4천 드리죠, 10억 드리죠”
 
“원래는 울산에 있던 바위였는데 금강산이 좋다고 하여 올라가다가 그만 여기 주저앉아버렸지요.”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를 쓰는 택시기사 상구(박철민)는 오늘도 손님을 태우고 울산바위 앞을 지나며 설명해준다. 배운 것 없고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족의 평범한 가장이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 윤미(박희정)는 “이 회사에서 돈 벌어 아버지 차 사드리고 동생 대학 보내줄 거예요.”라며 면접을 통과하고 ‘한국최고, 세계 제일의 기업’이라는 ‘진성반도체’에 취직한다. 이제 '가난 끝 행복시작'이라는 꿈과 희망에 가득하다. 그러나 그 착한 딸아이는 알 수 없는 병을 얻어 낙향한다. 시름시름 앓는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 절망하는 가족들. 회사사람이 찾아와서 수표를 내민다. 항암치료 등으로 빚더미에 올라있는, 배운 것 없는 아버지는 그런 회사가 고맙기만 하다. 그런데 “산재신청 하지 마시고요...”란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개인적인 일을 왜 회사 탓을 하세요.” 과연 그 딸은 ‘먼지 하나만 있어도 전 공정이 올스톱된다는 그 청결하고, 안전한 세계 제일의 회사’에서 왜 이런 몹쓸 병에 걸려 돌아왔는지, 그리고 자신의 택시 뒷자리에서 쓸쓸하게 죽어갔는지 이해할 수 없다. 노무사를 찾아간다. 그리고 딸과 같은 알 수 없는 증상을 보이며 회사를 그만두고 죽어간 동료들이 한둘이 아님을 알게 된다. 믿었던 복지공단의 산재신청도 기각되고 행정심판까지 받게 된다. 회사에서는 더 두꺼워진 돈 봉투를 내밀며 집요하게 회유를 시작한다. ‘또 하나의 가족’은 그렇게 마주선다.
 
“정치는 표면이고, 경제는 본질이죠.”
 
'개인적인 병일 뿐이고, 퇴사한 이후의 일을 우리가 어떻게 책임지냐'는 ‘회사 측 노무관계자’는 끝없이 고압적이다. “우리 회사 1년 매출이 얼만지 아세요?, 몇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지 아십니까” “대한민국 국민을 먹여 살리는 게 누군지 아세요?”  그래, 다 안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세계제일의 사업장, 세계 최고의 청결을 자랑하는 반도체 공장은 수원에 있는 진성반도체이다. ‘관리의 진성’답게 노조도 없고, 문제사원에 대한 해결책도 ‘돈’이다. 진성은 자기주장을 펼침에 있어서 일말의 죄책감도 없다. 법정에서는 근로복지공단을 대리하여 직접 재판정에서 자신들의 공장설비에 대해 세계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갖추었다고 자랑한다. 그 안전하다는 곳에서 죽음의 병을 얻은 유족은 절망한다. ‘진성’과의 재판에 나서려는 변호사도 없었고, 재판장마저 피해자 가족들의 분노를 제지하기만 한다. 그리고 진성반도체를 대하는 대부분의 언론들이 보이는 호의적 시각의 기사들에 대해서도 절망하게 된다. “정치는 표면이고, 경제는 본질”이라는 대사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컴퓨터와 핸드폰에 들어가는 그 반도체가 우리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고, 우리 언론의 광고를 채워넣는다는 것이 어찌 거짓말이리오.

 

“xx를 갈아먹어도 시원찮은 xx...”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고 황유미 씨 사례로 우리가 몰랐던, 혹은 애써 외면했던 장벽 안 내밀한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려준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화공약품의 위험성을 몰랐고, 장기적 후유증에 대한 위험성도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개인적인 스트레스’가 자신의 건강, 아니 생명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칠지도 몰랐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최고의..’소리만 내놓는 회사에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인지상정이리라.
 
팩트, 그리고 전망
 
삼성반도체에서 일했던 노동자 중 다수가 범상치 않은 병에 걸린다는 문제는 ‘우연의 반복’만으로 치부하긴 어려울 것이다. 이에 대한 언론보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KBS의 ‘추적60’에서도 이 문제를 두 차례 다루었다. 2011년 1월 26일 방송된 <추적 60분 - 삼성 ‘직업성 암’ 논란, 다시 불붙다>편(▶홈페이지)에서는 황유미 씨를 포함하여 피해자 가족의 사례를 들려준다. 그리고 삼성 측의 반론/변명도 들어준다. 그러면서 영화를 보며 가장 의아스러운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2008년 반도체제조공정근로자 건강영향 역학조사>>, 그리고 그 조사결과를 근거로 한 근로복지공단의 ‘산재판정 불승인’ 과정도 파헤친다.

 

황유미 씨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판정 불승인에 불복하여 행정심판에 나섰고 6년의 싸움 끝에 지난 2011년 6월 23일, 서울행정법원 14부에서 “백혈병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산업재해를 처음으로 인정받았다. 물론, 여기서 물러설   '진성'이 아닐 것이다. 고(故) 황유미 씨의 산재인정 판결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은 항소했고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추적60분>>에서는 이런 사연도 담았다. 삼성에 투자 중인 글로벌 투자회사인 APG자산운용이 삼성에 대해 객관적인 조사를 하라는 주문을 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기업에 준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요구한 것이리라.
 
이 영화는 이른바 ‘클라우딩 펀딩’으로 제작비가 일부 조달되었다. 영화 엔드 크레디트에는 제작에 쌈짓돈을 내놓은 일반인들의 이름이 한참이나 올라간다. 그중에는 ‘삼성이책임’, ‘삼성아웃’ 등 반(反)삼성적인 닉네임이 눈에 띤다.
 
오는 3월 6일이면 고 황유미 씨의 7주기가 돌아온다. 작년 6주기 때는 강남역 앞 삼성전자 본사 건물 앞에서 추모제가 열렸었다. 올해는 영화개봉도 했으니 더 많은 주목을 받을 것이다. “세계적인 기업 소리 운운”하는 낯 뜨거운 소리는 그만두고, 그만큼 욕을 들었으면 이젠 좀더 인간적으로,  좀 더 스마트하게, ‘또 하나의 가족’을 품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세계최고’ 삼성의 입장을 듣고 싶다면. 삼성반도체의 홈페이지의 블로그 '오해와 진실'에 올라온 이야기도 들어보시길. 그 말만 진실이어도, 그 약속만 지켜도 이런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 같다. (▶홈페이지)

 

(2014/2/28 추가 삼성전자 공식블로그에 올라온 글 )

 

고(故) 황유미와 아버지 황상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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