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디셈버: 끝나지 않은 노래 '김광석 포장하기'

2014. 1. 7. 17:17공연&전시★리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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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12.29 박건형 출연) 프레스콜(12.20)   연습실공개(11.29)  쇼케이스(10.31) 

 

 

최근 모 케이블TV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김광석의 노래를 따라하는 모창시간이 있었다. 모창하는 출연진이나 객석에 앉아있는 패널들은 하나같이 김광석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그리움을 숨기지 않았다. 김광석은 지난 1996년에 유명을 달리했다. 김광석에 대한 사랑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 김광석의 노래와 김광석에 대한 애정을 생각한다면 그의 영혼을 담은 대중문화 작품이 이제야 나왔다는 것은 늦어도 한참 늦었다는 느낌이다. 작년과 올해에 걸쳐 김광석의 노래를 앞세운 뮤지컬 작품은 무려 세편이나 된다. 그날들, 디셈버,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다. 이 중 ‘디셈버’가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작품이다. 단지 김광석이 미발표노래와 초상권(퍼블리시티권)까지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영화판의 자본이 들어온 셈이고, JYJ 김준수라는 강력한 엔진을 달았으니 뮤지컬 디셈버는 태생부터 ‘김광석 같지 않은’ 블록버스터급 작품이었다.

 

1990년대는 민주(화)의 시대, 순수의 시대

 

때는 1990년대. 대학가 하숙촌과 낭만이 넘쳐나는 캠퍼스만을 보자면 ‘응답하라 1994’분위기이다.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 지욱(김준수)은 하숙집 옥상에서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갑작스레 옆집 옥상으로 뛰어올라온 여학생을 보고 그 자리에 못이 박힌다. 모자를 깊숙이 눌러쓴 긴 머리 소녀. 지욱은 그 순간부터 그 소녀에게 영혼을 빼앗긴다. 그런데 학교 수업시간에 그 여학생을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교수가 강단에서 516에서 518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의 민주화의 굴곡에 대해서 장광설을 펼치고 있지만 귀에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오직 그 여학생과의 재회에 가슴이 뛸 분. 알고 보니 이 여학생은 골수 운동권학생 ‘이연’. 이연과의 로맨스가 채 피기도 전에 꽃은 진다. 학생회관에 들이닥친 백골단. 그리고 추락! 20년의 세월이 흐른다. 지욱의 캠퍼스 친구, 선배들은 나름대로 사회에 자리를 잡았다. 지욱도 공연연출가가 되어 있다. 그런데 지하철 여의도역 개찰구에서 ‘이연’을 쏙 빼닮은 여자를 보게 되면서 다시 한 번 그의 가슴이 요동친다!

 

장진의 뮤지컬

 

뮤지컬 ‘디셈버:끝나지 않은 노래’를 만든 사람은 장진 감독이다. 영화배급사로 한국대중문화계에 파워맨으로 부상한 ‘NEW’가 뮤지컬에 뛰어들면서 장진 감독을 콜한 것이다. 장진감독은 대학로 연극판과 충무로 영화판을 열심히 오가며 재기발랄한 스토리와 참신한 연출력으로 도드라지는 성과를 올리고 있는 대중문화계의 멀티 플레이어이다. 업계에서는 그가 흥행성과 작품성을 고루 갖춘 크리에이터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작품을 관심 있게 지켜보면 조금 특이한 면이 있다. 그의 영화감독 데뷔작인 ‘기막힌 사내들’(98)은 감방 동기인 노친네들이 의기투합하여 ‘딸’을 위해 감동드라마를 ‘작위적’으로 연출한다는 내용이다. 굉장히 재기발랄한 데뷔작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개봉당시 이 영화의 전단지(리플렛)를 보면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든다. 영화 속 등장인물-잡범-들이 전과자가 되는 사건을 소개하는데 이런 식이다. 1961년 5월 16일 담을 넘다 잡히고, 1979년 10월 26일 도둑질을 하다 잡히고, 1980년 5월 18일.. 어쩌구 식으로, 실제 영화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하지만 한국현대사와는 떼놓으려야 떼놓을 수 없는 ‘그날들’의 활용한다. 전단지만 보아서는 무슨 장대한 민주투사의 혁명기로 오해할 수도 있을 정도이다. 장진의 이런 ‘정치과잉’ 혹은 ‘정치오남용’은 SNL코리아 위켄드 업데이트에서도 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 “풍자를 합니다!”라고 떠들면서 뭔가를 말하는데 정작 그게 풍자인지, 개그인지 알수가 없다는 것이다. 장진 감독이 ‘디셈버’의 극본을 맡았는데 그의 오버하는 습관은 여전하다. ‘김광석의 노랫말에 너무나도 잘 어울릴’ 순수청년의 연정을 담은 멜로드라마를 구상한 모양인데 장진 감독은 그 실마리로 ‘김광석세대 캠퍼스의 분노’를 피상적으로 가져온다. 그래서 ‘이연’이 부르짖는 ‘파쇼타도’나 ‘군정철폐’가 전혀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하물며 강의실 교수의 민주론과 지욱과 이연의 논쟁은 코웃음이 날 정도이다)

 

장진은 아주 공들여 ‘디셈버’의 이야기를 펼쳐놓았다가 공연이 막이 오른 뒤 황급히 자르고, 편집하고, 생략하느라 한동안 고생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공연 뒤 열린 프레스콜에서는 “외국의 유명 뮤지컬들도 오랜 기간 시행착오 끝에 다듬어진 것이다. 우리도 열심히 완성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180분짜리 공연을 30분 줄인다고 해결될 내용이 아니란 것이다. 장진 감독은 이야기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하여 곁가지 스토리를 하나씩 쳐내는 방식을 택했다. 어차피 ‘순수청년’이 ‘닮은 여자’에게 혼이 빠진다는 내용은 그대로이니 말이다.

 

김광석의 뮤지컬

 

김광석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은 ‘그날들’이 먼저 무대에 올랐고, ‘디셈버’ 김준수 열풍의 뒤안길에도 대학로 소극장에서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잔잔한 감동을 주며 공연 중이다. 아마 그 시절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캠퍼스의 낭만을 즐긴 – 혹은, 최류탄 가스를 좀 마셔본 세대라면 김광석의 노래는 ‘그루터기’의 정서를 바탕에 깔고 있다. 당시 캠퍼스의 많은 ‘공연패’들은 김광석의 정서에 많은 것을 기댄 셈이다. 그의 노래는 기타 하나만 있어면 되고, 한사람의 선창에 모두가 스며들어 대합창이 되는 마법의 힘이 있었다. 물론, 고독한 기타맨이 김광석을 부르면 듣는 사람은 입을 다물게 되고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의 노래가 ‘요즘 뮤지컬’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경천동지할 일이다. 김광석의 노래는 대학로 소극장 기타하나 달랑 콘서트가 제격인줄로만 알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50억원짜리 뮤지컬로 올려지다니. 김광석이 살아있었다면 황송해서 몸둘 바를 몰라할 일임에 분명하다.

 

김광석의 노래는 분명 위대하고, 그의 노래를 대형 공연장의 뮤지컬로 편곡한 것도 명곡일 것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분명 듣는 사람은 한편 감동받으면서, 한편 가슴 한쪽이 우울해지는 것도 감출 수 없다. 왜냐 ‘김광석이 없으니까....’ 아마도 ‘디셈버’를 본 사람이라면 최고의 노래로 몇 곡을 꼽을 것이다. 대체로 1막 마지막 곡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에 감동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노래를 부르기 전과 부른 뒤가 완전히 다른 사회가 될 터이니 말이다. 그런데 의외로 가장 울림이 큰 것은 할머니(조윤희)가 죽은 뒤 영안실에서 송영창이 부르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이다. 노래를 썩 잘하는 것도 아니고, 무대연출이 훌륭한 것도 아니다. 단지 김광석의 힘일 뿐이리라.

 

김준수의 뮤지컬 ‘디셈버’

 

‘디셈버’가 만들어져서 무대에 오르게 된 것은 김준수의 힘이 클 것이다. 그 큰 공연장을 그렇게 열광적으로 관객으로 채울 수가 있으니 말이다. 김준수의 노래는 가히 천상급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제일 앞자리에 앉아 이 작품을 볼 때 그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부르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김준수를 본다면 따라 울컥해질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뮤지컬 디셈버는 마치 충무로의 ‘대작영화’같다. 잘난 감독, 멋진 캐스팅, 충분한 제작비, 그리고 다 만들어져서는 ‘어마어마한 광고/홍보 공세’까지. 영화는 한 번 만들어지면 감독이나 제작자로서는 그다지 할 일이 없을지 모른다. 그런데 뮤지컬은 공연 중에도 다듬을 수 있고, 재공연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분명 더 나아지고 정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디셈버:끝나지 않은 노래’는 많은 희망을 안겨주는 뮤지컬인 셈이다.

 

공연 전에 미디어 파사드를 활용한 멋진 공연을 약속했는데 ‘요즘 무대기술’로 보자면 그다지 감동받을 만 하지는 않다. 전방 지뢰폭발장면은 실망스러울 정도이다. 연습실 공개 때 이창용이 부르는 ‘이등병의 편지’는 정말 폐부를 찌르는 듯한 충격이었는데 말이다. 장진감독이 영화판에 있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공연 초반부 ‘백골단(전경)과 학생들과의 대결’ 장면에서 ‘화염병이 날아다니고, 최루탄이 뒤덮는 그런 특별한 특수효과를 기대했는데 말이다. 단지 군무로는 ’응답하지 않을 1990년‘대였다. (박재환, 20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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