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을 여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리뷰

2013. 12. 31. 13:41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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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중국의 대문호 루쉰의 작품 중에 ‘아큐정전’이 있다. 중국 대격변의 시기에 자신의 미래를 주체적으로 개척하지 못하고 끌려만 다니면서도 만사를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는 인물 아큐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 인민의 민족성을 통렬하게 비판한 걸작이다. 아큐란 인물은 얻어맞고도, 손해보고도, 결국은 처형되면서도 “에이, 저놈들이 못나서, 저놈들이 날 몰라서..”라고 자위하는 것이다. 얼핏 보면 만사낙관의 초긍정 캐릭터 같지만 중국문화사나 심리학에선 이 아큐를 ‘정신승리의 피폐자’로 본다.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그런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월터 미티’의 경우는 어떨까? 소심한 성격에 애인 하나 없다.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사귈 가망성도 없어 보인다. 게다가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곧 잘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회사의 명운을 진 매우 중요한 업무를 맡게 되는데 그만 큰 실수를 하게 된다. 이 순간을 어떻게 극복하리오. 다행인 것은 이 월터란 친구 ‘상상력만은 세계최고’이다.

 

<<라이프>> 최고의 사진관리사 상상의 늪에 빠지다

 

월터 미티(벤 스틸러)는 16년째 ‘라이프’ 잡지사에서 포토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한때는 세상의 모든 뉴스와 인간의 모든 모습을 다 담은 것 같았던 사진잡지 ‘라이프’. 인터넷의 열풍과 함께 라이프에도 변화의 물결이 불어 닥친다. 해고, 감원, 오프라인 폐간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16년 동안 필름만 쳐다보고, 사진만 사랑했던 월터는 어찌될까. 잡지 라이프 폐간특집호를 위해 단 한 장의 사진이 필요하다. 전설의 사진작가 ‘숀 오코넬’(숀 펜)이 보낸 ‘최고의 순간’을 표지에 싣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라이프 잡지 최고의 사진관리사라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결정적인 순간에 사고가 터진다. 문제의 사진이 없는 것이다. 사라진 것이다! 이제부터 상상력만은 세계 최고인 월터는 그 사라진 그 한 장의 사진을 찾기 위해 지구 끝까지라도 달려간다. 아니 지구 끝에서 ‘익스트림 포토’를 찍고 있을 숀 오코넬에게 달려간다. 이 남자, 해고보다 사진이 더 중요하다!

 

세월이 가도, 상상의 나래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제목만 보자면 이 영화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을 거꾸로 간다’만큼 매혹적이다. 이 영화는 제임스 써버가 1939년에 쓴 단편소설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이 소설은 이미 1947년에 한 차례 영화화 되었었다. 1939년에 나온 소설이니 당연히 ‘라이프 폐간’이나 ‘인터넷 열풍’ 같은 이야기는 없다.

 

원작소설은 우리나라에도 번역 출간되어있다. 얼마나 짧은 소설인지, 그냥 선 자리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다 읽어치울 수 있는 분량이다. 중년의 예민하고 소심한 남자 월터 미티는 아내의 신경질적인 잔소리나 경찰의 고압적인 지시에 이내 ‘방어기제’로서의 상상력이 발동한다. 월터는 금세 딴 세상의 슈퍼맨이 되어 나름 행복하고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소설을 읽다보면 어느새 월터 미티의 삶의 지혜에 동화된다. 작은 상상력이 현실의 괴로움을 한 순간에 떨쳐내는 그만의 삶의 방식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2014년 새해벽두에 개봉되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1939년의 단편소설의 상상력의 규모를 확장시킨다. 그리고 이제는 ‘서점과 가판대’에서 사라진 사진잡지 ‘라이프’를 끌어들여 ‘아날로그적 그 시대’에 대한 정서적 감응까지 더한다.

 

 

 

영화 속 벤 스틸러(2013) -  실제 '존 글렌' (1962) 관련기사보기

 

 

잡지 <라이프>는 시사주간지 ‘타임’을 창간했던 헨리 루스가 1936년 포토저널리즘을 주창하며 창간한 잡지이다. 1972년까지 주간으로 발행되었고, 이후 월간으로 바뀌었다. 2000년 대 들어 인터넷의 열풍으로 쇄락의 길로 접어들더니, 결국 오프라인 종이잡지는 종말을 고한다. 지금은 타임 웹사이트와 구글 사이트를 통해 라이프가 남긴 인류포토문화유산을 즐길 수 있다.

 

영화 속 월터 미티는 현대적 의미의 소시민이다. 연애도 잘 못하고, 회사에서도 기죽어사는. 그래서 해고 1순위의 남자이다. 하지만 ‘이런 류의 영화’가 다들 그러하듯이 월터는 자신만의 세상에서는 왕이고, 자신의 방식으로 관객들을 감화시킨다. 월터의 상상력의 바탕에는 휴머니즘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가득한 것이다.

 

월터를 따라 그린란드로, 아이슬란드로, 중동으로 달리다보면,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이다. ‘사라진 한 장의 사진’인지, 아니면 ‘몰랐던 자신감’인지 말이다.

 

영화 속 벤 스틸러의 이미지는 ‘메리에겐 특별한 것이 있다’(98)에서의 테드 이미지 그대로 이다. 잘 나가는 사람 투성이인 세상에서 주눅들어 사는 시민 캐릭터. SNS에서 “좋아해요”(윙크보내기)라는 클릭 한 번 하는 것에도 주저하는.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2014년이 되었으면 한다. (박재환, 201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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