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의 앤] "내 아~를 나아도!"

2008. 2. 19. 20:42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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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d by 박재환 2003-1-3]
상식문제 하나,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1564~1616)는 모두 37편의 희곡을 남겼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바로 죽기 3년 전에 썼던 <헨리 8세>이다.

'헨리 8세'는 1509년 잉글랜드의 왕으로 즉위했다. 아버지 헨리 7세의 유약한 첫째 아들이 요절하자 '재수'로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헨리 8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물려받은 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형수 '캐서린'이다.

문화풍속사 시간에 듣게 되는 'onanism'의 기원이 되기도 하는 '형사취수(兄死取嫂)'는 고대 시절에서나 볼 수 있는 관습인줄 알았는데 대명천지 중세 영국의 왕실에서 이러한 일이 생긴 것이다. 어째서일까. 당시 유럽의 패권은 스페인(에스파이나)이 쥐고 있었고, 유럽의 각 왕국들은 정략결혼으로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캐서린이 바로 스페인의 공주 출신. 이런 비윤리적, 비도덕적 결혼에는 로마 가톨릭 교도 한몫을 거들었다. 형은 죽기 전까지 너무나 약해빠져서 육체의 순결성을 지니고 있었고, 그러므로 동생이 형수와 결혼식을 올린다고 해서 전혀 문제가 없다고 '로마교황청'이 정식으로 인정해줬던 것이다. (만약 인정 안 해주면? 스페인이 군사력을 동원하여 바티칸을 점령해버릴 것이니...)

헨리8세는 어릴 적부터 왕궁에서 궁녀랑 귀족부인이랑 자유분방한 '계집질'을 한 터이라, 나이가 훨씬 많은 '간판뿐인 왕비' 캐서린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오직 왕위를 물러줄 남자아이만 낳으면 되는 씨받이일 뿐이니깐. 그런데, 결정적으로 캐서린은 딸 하나만 낳는다. 남자아이는 낳았다하면 곧바로 죽었단다.

마누라가 아이를 못 낳으면 바람피우는 것은 동서고금을 현실인 모양. 최고의 권력을 지닌 헨리 8세는 무도장에서 '앤 불린'이란 처녀에게 빠져든다. 그런데, 여태 헨리 8세가 "너, 수청을 들라!"하면, 모든 여자들이 "아이고, 좋아라!"했거늘.. 앤은 한 마디로 "No!"였다. 이유는 있다. 앤에게는 혼인을 약속한 남자가 있다. 하지만, 그런 문제야 왕이 그 남자에게 "너 죽을래 딴 여자에게 갈래?" 한 마디면 해결될 문제. 또다른 문제는 앤의 언니도 이미 헨리 8세의 눈에 띄어 하룻밤 잤고(수청을 들었고!) 왕의 아이를 가진 상태.(회임하셨나이다!) 하지만 왕비 캐서린이 두 눈을 부릅뜬 상태에선 그 아이는 태어나봤자 사생아이고, 영국왕위 계승과는 인연이 멀다. 앤은 모든 것을 계산한 상태. 지금은 내가 젊고 이뻐서 당신 눈에 띄어 사랑을 나누겠지만 결국은 찬밥신세가 될 것이란 것.

헨리 8세는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품위 없이도 앤에게 매달린다. "그대여, 내가 그대를 위해 뭘 해주면 당신은 당신의 마음을 열겠소?'라고.

앤은 그런다. "정식으로 결혼해 달라"고.

그래서, 영국 왕실역사에서는 한번도 없었던 괴상망측한 일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왕이 이혼을 한다고? 왕이 여자를 갖고 싶으면 가지면 되는 것이지 이혼하고 딴 여자를 데려다 사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헨리 8세는 여자 때문에 미친 모양이다.

앤을 차지하기 위해선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하기 위해선 지금 마누라 캐서린을 차 버려야한다. 당시 이혼하려면 로마 교황청의 허락을 받아야한다. 캐서린을 구하기 위해, 스페인은 군사력을 동원하여 바티칸을 접수하고 로마 교황청(당시 교황은 클레멘트 7세!)에서는 황급히 잉글랜드에 재판관을 보낸다. 그리곤, 이혼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그런다.

그럼? 헨리 8세가 할 수 잇는 일은? "아니, 교황이 뭔데 나보고 이혼을 해라 마라 그러냐"면서 의회를 소집하여 1534년 ‘국왕지상법(國王至上法)’을 발표한 데 이어, 1536년 로마의 감독권을 폐지하는 법령을 발표하였다. 그때까지 신봉하던 카톨릭을 하루아침에 금지시킨다. (그때 새로 만들어진 것은 영국 국교회=聖公會=The Anglican Domain=정교회이다!) 헨리 8세는 캐서린과 이혼하기 위해 치사한 수법을 다 쓴다. 캐서린은 자신과 결혼하기 전에 이미 형과 관계를 가졌으니 더럽혀진 몸이었고 자신과의 결혼은 사기결혼이었으며 신에 대한 죄악이었다는 것이다!!! 반대하는 간 큰 신하? 모두 단두대에 보내면 된다!

어쨌든 갖은 무리수를 둬 가며 캐서린을 쫓아내고 앤을 선택한다. (이런 거 보면 우리나라 TV사극의 여인네들과 왕들이 하던 짓이 거의 비슷한 레벨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왕의 애간장을 녹여가며 입궁에 성공한 새 왕비 '앤'도 결국 아들을 낳지 못한다. 헨리 8세의 절망감. 종교까지 바꿔가며, 그리고 그에 반대하는 수많은 신하들을 처형해 가며 여자를 얻었건만, 아들을 못 낳다니... 헨리 8세가 할 수 있는 일은 또다시 '아들을 낳을 수 있는' 여자와 결혼 하는 길. 앤이 호락호락할까. "다음엔 꼭 아들을 낳겠다"지만, 헨리 8세도 이젠 늙은 몸. 더 늙기 전에 아들을 낳아야한다. 그래서 앤이 외간남자와 간통했다고 뒤집어씌운다. 오빠와 근친상간했다는 죄목으로.

앤은 단두대에서 목이 떨어져나가고, 왕은 또다시 이혼하고, 새 여자를 얻는다. (뒷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헨리 8세는 그 후 이혼과 결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처형을 거듭한다. 6번 결혼한다!! --;)

이 내용이 바로 영화 <천일의 앤> 줄거리이다. 앤 블린이 왕의 눈에 띄어 왕비가 되고 딸만 낳다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1,000일의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구성한 것이다.

물론, 헨리 8세가 여자 하나 때문에 눈이 먼 폭군, 바보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헨리 8세는 이렇다.

.......종교정책 이외에도 왕권강화에 힘썼으며, 웨일스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등의 지배와 방비를 강화하고, 당시의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도 몇 차례나 대륙에 출병하였다. 여섯 왕비 중 두 왕비와 울지, T.크롬웰, T.모어 등의 공신(功臣)을 처형하는 등 잔학한 점도 있었으나, 그 통치는 국민의 이익을 크게 배반하지 않았으며, 부왕이 쌓은 절대왕정을 더욱 강화하였다.....(동아대백과사전)

아.. 아들욕심 뿐이엇던 헨리 8세가 죽은 후 왕실은 더욱 드라마틱해진다. 버림받은 비련의 여왕 캐서린이 낳은 딸 메리(1세)가 (이복동생 에드워드 6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여러 면에서 피의 복수극을 펼친다. 메리가 죽은 후 왕권을 잡은 사람은 '천일의 앤'이 낳은 딸이었다. 바로 '엘리자베스 1세' 이 여자가 바로 케이트 블랑쳇의 <엘리자베스>이며, 귀네스 팰트로우의 <세익스피어 인 러브>의 여왕이다. 엄마(앤 불렌)의 영향인지 그녀는 죽을 때까지 처녀여왕으로 지낸다.

지금 영국왕실은? (1926년에 태어나서) 1952년 즉위한 엘리지베스 2세이다. 이 할머니는 슬하에 찰스 황태자, 앤드류, 에드워드, 그리고 딸 앤을 두었다. 찰스 황태자의 와이프가 다이애나였다. 영국왕실은 참 드라마틱하다. 참, 지금 영국수상(총리)은 1997년에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이다. 20세기 최연소 총리란다.

우리나라 왕실? 조선 27대 왕, 순종(李拓)은 1910년 한일병합조약으로 왕좌를 내놓는다. 26대 왕 고종의 일곱째 아들이자, 순종의 이복동생이었던 이은(李垠)은 황태자(영친와)로 책봉되었다가 일본에 의해 일본여인 마사코(方子)와 정략결혼하게 된다. 순종이 죽고, 왕좌없는 나라의 유일한 왕위계승자가 된다. 이은은 일본에서 교육받고 일본육군중장에 이른다. 해방 후 1963년 병든 몸으로 귀국했다가 병상에서 한많은 인생을 마친다. 미망인이자 마지막 '비(妃)'였던 마사코(이방자)는 창덕궁 낙선재에서 생을 마친다.

그런데, 이 이방자라는 분이 꽤나 드라마틱하다. 출신은 분명 일본인이다. 그는 일본국왕 메이지의 조카 모리마시 친왕의 딸로 원래 히로히토 왕사제 비로 정해졌었단다. 그러다가 한일 정략에 따라 일본에 볼모로 붙잡혀와 일본육군사관학생이 되었던 영친왕과 약혼을 하였단다. 영친왕과 마사코 사이에는 진(晉)과 구(玖)를 낳았단다. 일본 패망 후, 마사코는 일본왕족에서 제외되어 거처와 재산을 몰수당했고 병석의 영친왕과 함께 한국으로 날아왔다. 마사코가 나중에 일본천황이 된 히로히토의 왕비가 되지 못하고 멸망한 조선왕조의 영친왕과 결혼하게된 데에는 내막이 있단다. 그녀가 임신할 수 없는 육신이라는 일본국의 은밀한 진단이 있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일본정부는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일본왕족을 한국왕족과 혼례를 시켜 한국의 왕가 혈통을 끊겠다는 것이었다!) 어쩄든 한국에 와서 각종 사회사업(신체장애자재활협회 등)을 하던 그녀는 1989년 5월 11일 창덕궁 낙선재에서 지병으로 비운의 생을 마쳤단다. 정말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참, 이 영화는 아카데미영화 역사에 있어 흥미로운 기록을 남겼다. 골든글로브 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등을 수상했고, 아카데미상도 휩쓸 것으로 예상했었단다. 그런데 1개부문이나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한 것이라곤 의상상 하나만 달랑 받았단다. (작품상과 감독상은<미드나이트 카우보이>(존 슐레진저 감독)에게, 남우주연상은 <진정한 용기>의 존 웨인에게 돌아갔다. (이보다 더 불운한 영화는 1977년 미하일 바리니쉬코프가 나온 허버트 로스의 발레드라마 <터닝 포인트>와 애어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컬러 퍼플>이다. 두 작품 다 11개 후보에 올라 단 하나의 오스카도 받지 못했다!)  (박재환 2003/1/3)

Anne of the Thousand Days (1969)
감독: 찰스 재로트 (Charles Jarrott)
출연: 리처드 버튼, 제느비브 뷔졸드,  존 콜리코스,  앤서니 퀘일
2002/12/29 EBS-TV 일요시네마 방송 
1969년 10개 부문후보(의상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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