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살로, 거짓의 제국 (장선우 감독, 1999)

2013. 1. 3. 11:13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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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1999/10/21) 영화 <거짓말>이 '감독의 오리지널 버전'으로 일반에게 공개된 것은 지난달 국내 언론기자를 상대로 한 최초 공개와 베니스영화제에서의 상영, 그리고 이번 제 4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서였다. 영화제 시작 전부터 이미 폭발적인 화젯거리로 부상한 이 영화는 예매 시작 20분 만에 매진된 올 부산영화제 최고의 인기 작품이 되었다. 실제로 부산영화제 동안 예매티켓 교환, 구매정보센터에는 <거짓말>티켓을 5만원에 구매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기도 할 정도였다. 적어도 어떤 영화가 이 정도 관심과 인기를 끌었다면, 영화 자체의 완성도나 작품성과는 상관없이 대중적 흥행은 보장받았으리라 생각된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GV시간을 잠깐 가진 후, 장선우 감독과 주연배우인 이상현, 김태연씨는 부산의 한 선상 카페로 이동하였다. 한 영화단체 주관으로 한밤에 부산의 바다 위 선상에서 내외국 영화관계자, 평론가들이 포럼을 가졌다. 배가 부산연안부두를 떠나 1시간 정도 바다 위를 유람하는 동안 배안에선 <거짓말>과 어쩔 수 없이 한국의 검열-심의문제가 논의의 핵심이 되었다. 하지만, 이내 그 자리는 그저 그런 영화인들의 교류장소가 되어버렸고, <거짓말>에 대한 집착과 관심은 희석되어버렸다. 이유는? 외국인들 입장에선 <거짓말>, 이 영화는 단지 국제영화계에 있어서, 3세계 '한국'이란 나라의 소문만 무성한 화젯거리 영화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리고 국내 영화 관계자들에게 있어서는 이 영화는 많은 탄압받는 영화 현실의 한 돌파구로서 필요 이상의 환대와 접대를 받고 있는 작품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장정일의 97년 출간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기본으로 장선우 감독 자신이 직접 각색한 것이다. 장선우 감독은 이미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영화에 대한 논쟁적 사태 진전에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까지 하였다. 그가 보인 반응 중 하나로, "성적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듯하다"라고 했었다. 그로서는 이 어이없는 소극에 대한 담론을 한 수준 끌어올리기까지 하였다. 물론 그런 창작의 주체의 시각과는 달리 이 영화는 어쩔 수 없이 우리 사회가 끌어안을 수 있는 한계와 심의의 잣대에 대한 자의적 해석에 대한 논란으로 번지고 말았다.

"미성년자와의 변태적 성관계와 가학해위로 인해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는 것이 1차 심의 등급에서 등급보류 판정대상에 오른 이유였다. 실제로 이 영화는 국내에 소개된 영화 중 가장 많은 시간을 SM장면에 할애하였다. 그래서 이 영화가 유일하게 국내 팬에게 웃길 수 있었던 장면들은 모두 그와 관련된 장면이다. 전혀 보지 못했던 SM장면의 심각성이 뜻밖의 웃음거리로 비하되어버린 것이다. 남녀 주인공이 벌거벗고 회초리, 몽둥이를 들고 서로를 때리며, 연신 "사랑해"라고 외치는 장면이 수도 없이 반복됨에 따라서 관객은 어렵게 들어온 만큼 어려운 이해의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는 잠시 뒤로 하고, "저 배우 얼마나 아팠을까?" "저 영화 찍은 후 얼마나 슬펐을까" 하는 여태 볼 수 없었던 1차적 반응을 내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장선우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 것은 사실이다. 그 험악한 원작을 아주 유려하게 풀어나갔으니 말이다. 관객은 'Y'와 'J'라는 인물의 대책 없는, 극단적 사랑놀이에 빨려 들어간다. 그것은 오래 전 영화 <스캔들>이나 <베티 블루>, 그리고 최근의 <샤만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랑에 빠진 당사자 두 사람 말고는 모든 것이 없는 것이 사랑의 한 방식인 것이다. 그러니 'Y'와 'J'가 그 어떠한 극단적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은 오직 그들만의 세상이며, 그들만의 대화이며, 그들만의 사랑방식인 것이다. 그것을 영상화시켜 전달하는 것은 감독의 시각일 테니 우리는 일단 감독의 성(性) 정체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만하다. 하지만 물론 감독 자신은 이러한 변태적SM에 대해 그다지 즐거운 시각은 아닌 모양이다. 게다가 어제 GV시간에 한 외국인이 질문하기를 영화 속 대화를 인용하여 SM에 대한 인식을 물어보았다. 장선우 감독은 그 질문에 대해서 "원작에 나왔을 뿐"이라고 다소 맥 빠진 대답을 해 주었다. 그러니 감독은 SM에 대한 자의식 없이 SM장면을 영화에 담은 것이다.

 바로 대부분의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SM이 문제가 아니라, 그 행동의 동기와 집착의 끝없는 연속이 가져오는 느낌의 문제인 것이다. (톰 행크스의 <필라델피아>와 확실히 다르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두 사람이 그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상황이며 현실일 뿐인 것이다. 둘의 극단적 사고는 적어도 한쪽이 자살하거나, 한쪽이 다른 한쪽을 죽이지 않는 이상 마지막 선택은 헤어짐뿐일 것이란 것은 영화 시작 몇 분 후, 첫 섹스 이후 바로 가질 수 있는 생각인 것이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 이상을 보여주지 못한 장선우 감독의 99년 작품 <거짓말>은 단지 심의와 관객의 자세만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든 작품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박재환 199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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