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 보호구역] 김기덕 N0.2 (Wild Animals 1997)

2013. 1. 2. 09:15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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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01.8.7.) 김기덕 감독의 네 번째 작품 <섬>이 개봉되었을 때 감독 자신은 “대한민국에 김기덕 영화를 좋아하는 팬은 최대한 5만 가량 된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그동안 그의 영화가 극장에 내걸릴 때마다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개봉관에서 그의 영화를 직접 찾는 영화팬의 수치는 이에 훨씬 못 미쳤다. 하지만, 이제는 적어도 김기덕 영화라고 하면 ‘이창동 영화’와 ‘홍상수 영화’와 함께 하나의 브랜드 파워(혹은 네임 밸류)를 가지는 작품으로 취급받는다. 당연히 김기덕 감독은 오래 전에 ‘작가감독’으로 분류되었고 말이다. 그의 두 번째 작품 <야생동물 보호구역> 또한 그러한 김기덕 감독의 이름값을 하는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김기덕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나 개별적인 사건을 보면 관객은 쉽게 그 이야기가 적어도 김기덕의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도 프랑스에 그림 공부하러 갔다던 김기덕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나 경험담이 투영되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김기덕 감독 자신이 직접 쓴 시나리오에서는 놀라운 대결구도와 화합구도가 그려져 있다. 그것은 남과 북의 대치라는 고전적인 이데올로기 대결이 탈색된 대신, 어디에선가 낙오된 두 남자의 궤적을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의 부조리함과 뜻대로 되지 않은 인생사를 이야기한다.

사실, <공동경비구역>에서 송강호와 이병헌이 직조해내는 이야기는 이데올로기의 대치에 따른 갈등구조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 남자에게 경도되는 다른 한 남자의 성적인 판타지로 이해하면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 충분히 그렇게 만들 수 있는 박찬욱 감독이 전혀 그렇게 만들지 않은 것은 다소 의외이지만 말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장동직과 조재현에게서도 그러한 또 다른 감정의 전이를 느낄 수 있다. 버디영화의 또 하나의 매력인 ‘상대적’ 강자에 의한 약자의 보호라는 것이다.

영화에서 청해(조재현)는 프랑스로 미술공부를 하러온 남한사람이다. 그는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거나 동포애를 발휘하는 것과 같은 익히 보아온 착한 미술학도는 결코 아니다. 동료 미술학도의 그림을 훔쳐서 길거리에서 관광객에게 팔아먹거나 기차역 물품보관소에서 친절을 베푸는 것처럼 하다가 물건을 훔치는, 그리고, 영화가 계속될수록 ‘비열함의 극치’를 볼 수 있는 그러한 인간말종이다. 그런 조재현에 비해 홍산(장동직)은 인간의 순수를 가진 내적인 강자로 볼 수 있다. 청해처럼 그의 자세한 배경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지갑에서 보게 되는 가족사진과 몇 마디 대사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북한군 출신이며, 돈벌이가 된다는 용병에 입대하기 위해 프랑스로 온 북한사람이라는 것이다. 마치 시골사람이 도시에 올라와서 사기 당하듯이 이 북한사람은 프랑스에서 남한출신 뺀질이에게 사기당하고, 이용당하고,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겪게 된다.

이 정도로 사기꾼 남한사람과 우직한 북한사람이 프랑스에서 뒷골목 생활을 하면서 우정을 느끼게 되는 구도는 <미드나이트 카우보이>에서의 더스틴 호프먼과 존 보이트의 처연한 만남처럼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외로운 이국의 땅에서 그들에게도 각기 사랑이 있지만, 그 사랑은 그들의 사랑을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과격한 김기덕 감독의 작품답게 그들의 사랑은 과격하고, 운명은 빗나간다.

‘엽기전문’감독 명성답게 이 영화에서도 김기덕의 독특한 앵글을 엿볼 수 있다. 우선, <파리 텍사스>이후 최고로 기억에 남을 ‘핍 쇼’씬을 보여준다. 빔 벤더스 감독처럼 핍 쇼 장면에서 너무나 불쌍한 ‘홍산’의 사랑의 감정과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청해가 짝사랑하던 여자-헝가리 출신의 행위예술가-가 그의 지긋지긋한 애인을 죽일 때 사용하는 방법은 냉장고에 얼려놓은 고등어로 남자의 배를 찌르는 것이다. 아마도 이처럼 고안된 살인의 장면들이 김기덕 감독의 악취미를 도와주는 것이리라. 냉장고의 고등어는 평소 그녀를 학대하고 때리던 흉기였다.

부대자루에 넣어져서 바닷물에 던져지는 장면과 그 다음 가까스로 살아남는 장면.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총격장면은 영화팬의 심정을 극도로 흥분시킨다. 그의 영화는 너무나 과격한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연결시켜놓아 관객에게 끊임없는 감정의 널뛰기를 강요한다. <야생동물 보호구역>또한 그처럼 관객에게 친절하지 않게 들려주는 사랑의 노래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김기덕 영화가 퇴행적이라거나 남성주의적인 것은 아니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이 그러하듯이 이 영화도 보고 있노라면 감정이 격해지면서 정신적 피곤함을 겪게 된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영화이다. 누가 이 영화를 비극적 결과라고 하는가. 삶이 그러하거늘… (박재환 2001.8.7.)

 

 

야생의 영화

데뷔작 <악어> 때부터 김기덕 감독을 주목한 이는 드물었다. <씨네21> 전 편집장이었던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마켓 실장은 그 드문 경우 중 하나였다. <악어> 이후 김기덕 감독을 꾸준히 응원하고 지지해왔던 그의 감회 또한 남다를 터. 그에게서 김기덕 감독과의 첫 만남부터 최근의 만남까지, 숨겨진 이야기를 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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