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상황] 김기덕의 실험극 - 지푸라기 인간 (김기덕 감독 2000)

2013. 1. 2. 09:01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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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00.5.24.) 김기덕 감독은 메이저 영화사를 등에 업고 <섬>을 극장에 개봉시키자마자 또 다른 신작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 말이 채 충무로에 다 퍼지기도 전에 그 영화의 촬영을 끝내 버렸고, <섬>이 극장에서 완전히 간판을 내리기도 전에 그 신작을 내걸 준비를 하고 있다. 아마도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빨리 만들어지고, 가장 빨리 극장에 내걸리는 영화가 될 것 같다. 그리고, 다행인 것은 그 동안의 김기덕 감독의 작품에 대해 존재했던 악의적 평가보다는 긍정적 요소를 더 찾게 될 것이란 점이다. 이 영화에서는 적어도 감독의 전작에서보다 훨씬 더 유연해진 사고의 한 면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종합예술이다. 단지 광학적으로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들의 결정체가 화학체인 ‘필름’위에 착상되는 물리적 요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작업에 참여한 개개인의 창조적인 마인드와 예술혼이 제 1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할리우드 CG 실력이 현실 세계까지 뛰어 넘는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드라마 요소이고, 결국은 크리에이티브이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는 감독의 역량, 시나리오의 힘, 배우의 연기, 음악의 매력, 편집의 묘미, 더 나가자면 소품의 정교함, 홍보의 적확성 등등이 모두 주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하루만에 – 정확히, 감독은 100분 내에 찍을 것이라 했고, 결국은 200분 동안 찍어, 그것을 90분짜리 영화로 편집하여 완성하였다 – 영화 한편을 찍어낸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우려한 첫 번째 것이 그러한 독창적 ‘실험성’에 앞선 제반 요소들의 ‘충실도’에 대한 의문이었다.

물론, 연극 무대를 그대로 비디오에 담아 TV에서 보여주기도 한다. 영국왕립극단의 셰익스피어 무대극을 그대로 찍은 비디오도 결국은 작품적 인정을 받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창극을 비디오로 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한 것과 영화의 결정적인 차는 사실 없다. 그럼, 이 영화는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가졌고, 어느 정도의 작품성을 가졌으며, 김기덕 감독의 독창성은 어디까지 갈 것인지 궁금하였다.

김기덕의 영화는 사실 직접 본/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어느새 그의 영화는 보기에 상당히 껄끄럽고, 상당히 기분 나쁜 영화라는 인식을 받고 있다. 이미 “김기덕 감독 영화 = 엽기적 충격적”이라는 등식이 통용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영화에서 단 한 차례도 빠지기 않고 등장하는 몇몇 요소들로 인해 평단으로부터는 배척, 경시, 무시, 평가절하 받기도 한다. 그러나, 또한 그러한 변별적 요소 때문에 필요 이상의 작가 감독 취급을 받게 되었고, 웬만한 영화관련 매체로부터 한번쯤은 집중 조명을 받기도 하였다.

영화가 영화내적인 면에서 평가받아야지 영화외적인 요인들로 평가받아서는 안 될 일이다. ‘한국 최초의…’, ‘세계 유일의..’ 이런 수식어가 작품성을 보장해주지는 않으니 말이다. 김기덕 감독도 그러한 외형적 관심보다는 영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줄 것을 요망했다.

영화는 반나절에 찍은 것만큼 반나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대학로에서 오가는 행인들의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가난한 화가 ‘나’는 어느 날 그림을 그려주고 돈을 떼인다. 그 일대에서 활개 치는 폭력배들에게 말이다. 그리고, 그는 한 ‘소녀’의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 따라 간다. <또 다른 나>라는 연극이 공연되는 무대 위다. 그곳에서 ‘나’는 ‘또 다른 나’로부터 자신의 내면에 잠복해 있던 분노의 소리를 듣게 된다. “왜 당하고만 살아야 하냐? 나가서 그들을 응징하라”고. 그리곤, 영화는 줄곧 ‘나’의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살인의 공간으로 이동된다. 그는 만화방으로, 꽃집으로, 정육점으로, 옥상 위로, 부지런히 자리를 옮겨가며 8번의 살인을 저지른다. 그 모든 과정이 주진모의 논스톱 연기로 이어진다.

계속되는 살인은 ‘김기덕’영화 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잔인하거나 엽기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칼로 찔러죽이고, 벽돌로 내리찍고, 총으로 쏘아 죽이는 것쯤이야 요즘 영화에선 너무나 일상적인 살인방식이니 말이다. 오히려 김기덕 감독은 그러한 매 순간의 엽기성이나 선정성을 제어한 흔적을 보일 정도이다. 그래서, 그 동안 엽기성에 머물렀던 느낌이 들 정도였던 그의 전작보다는 훨씬 누그러진 화면을 보게 된다. 그만큼 의미심장해졌다고나 할까.

결국 그렇게 많은 살인이 일어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고, 노상강도에게 늘 맞고 빼앗기기만 하던 그에게서 어떻게 그런 폭발적 살인 본능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과연 <실제상황>일까. 관객은 연속되는 살인에서 어떠한 공감도, 대리 만족도 느낄 수 없는 도덕적 격리감을 느끼게 된다. 감독이 의도했든 아니든, 이러한 방식은 결코 훌륭한 해결점이 아니란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세상의 악당이 다 없어질 수도 없을 뿐더러, 세상의 악당을 다 없애는 그런 폭력적 방식으로는 세상을 조금도 진화시키지 못함을 감독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지막에 대학로의 일장춘몽이 되어버리는 사건 전개는 관객에게 또 다른 생각을 심어준다. 바로, 가난한 ‘화가’만큼, 억눌러 지내던 인형가판대 주인의 폭발에 의문을 느끼는 것이다. 누적된 분노는 어느 순간 터질 개연성은 있지만, 그것이 그렇게 허망하지만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아마도 그 가판 주인은 그때부터 또다시 살인 여정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김기덕 감독이 실제로 <실제상황 2>를 만든다면, 그 가판 주인의 행각이 아니겠는가.

물론, 김기덕 감독은 서둘러 이러한 살인행각을 마무리 짓고, 서둘러 이 모든 것이 영화였음을 환기시킨다. 그것은 감독이 영화를 찍는 또 다른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스크린에 있는 배우와 그 배우의 연기를 호기심에 지켜보는 통제된 구경꾼들 사이에서 관객들은 어쩔 수 없이 화면에 나타나는 모든 것을 영화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한 인식은 살인이 계속됨에 따라, 이것은 결국 ‘꿈 아니면 영화’라는 사실을 깨우쳐주는 것이다.

감독은 살인을 통해 분노의 허망함을 다루고, 전복할 수 없는 현실의 괴로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위에 영화라는 매체의 재미있는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리 웃고, 아무리 울고, 아무리 섹스를 해도 그것은 그 화면을 지켜보는 관객들에겐 구경거리 일뿐이니 말이다. 그래서 김기덕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소녀’를 벽돌로 쳐 죽여 버렸는지도 모른다. 김기덕 감독은 그 소녀의 카메라를 감독의 시선이라고 했다. 아마도 김기덕 감독은 다음엔 평론가의 손을 잘라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성의 없는 영화평만큼 감독을 분노케 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김기덕 감독의 사유하는 자유는 어디까지 갈 것인지 다음 영화가 기다려진다. 정말로… (박재환 2000.5.24.)


[실제상황 2000] 감독: 김기덕 출연: 주진모,심이영,배중식,장현성 (2000년 6월 2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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