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김기덕의 넋두리 (Arirang, 2011)

2011. 12. 6. 13:19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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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11.12.6.) 대한민국 영화계의 살아있는 전설 ‘김기덕’ 감독은 참으로 기이한 감독이다. 1996년 <악어>라는 영화로 인상적인 감독 데뷔를 한 뒤 (<아리랑>,<아멘>까지) 모두 17편의 작품을 내놓았다. 이 얼마나 놀라운 생산력인가. 어느 해인가 김기덕 감독은 자신의 영화가 한국 영화관객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다면서 더 이상 한국에서 자신의 영화를 개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더 나아가 기이한 이유로 영화제작 현장에서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어디론가 숨어들고 말았다. 그러다가 지난(2011년) 5월 깐느 국제영화제에서 김기덕의 신작이 전격적으로 공개되었다. <아리랑>이란 ‘1인 작품’이었다. 일단 그의 작품의 만들어지고 또, 세계적인 무대에서 먼저 소개되었다니 기쁘기도 하지만 그 영화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역시나 김기덕!”이라는 또 다른 뉴스거리를 제공해주고 말았다. 그의 <아리랑>은 태생부터 ‘ 영화작품’이 아니라 ‘김기덕작품’이 되고 말았다.

김기덕의 탄생

이제는 웬만한 영화팬들은 김기덕 감독을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제대로 교육도 못 받았고 어려서부터 공장 막일을 하다가 해병대에 들어갔고 그 이후 화가가 되겠다며 프랑스로 날아간 기이한 인생역정을 가진 인물. 그리고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영화란 것을 보고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각오했단다. 한국에 돌아와서 시나리오 작업에 매달렸고 끊임없이 공모전에 도전하여 마침내 데뷔작 <악어>를 찍는다. <악어>는 굉장히 거친, 그러면서도 김기덕 영화의 원형을 고스란히 보존하는 작품이었다. 이후 김기덕 감독은 쉼 없이 달리며 자기영화를 만들어나갔다.

김기덕 감독을 다룬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김기덕, 야생 혹은 속죄양>을 읽다보면 김기덕은 무슨 생각으로 영화를 찍는지 두려움을 느끼게 할 정도이다. 김기덕은 자신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잡초 같은 인물처럼 한국영화판에서 꿋꿋이 버틴다. 그의 새 작품이 나오면 영화평론가들은 혹평을 하거나 열광을 하였고, 영화팬들은 기겁을 하거나 외면을 하였다. 그의 작품이 아무리 해외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상찬을 받더라도 항상 돌아오는 것은 ‘엽기적’, ‘비주류’, ‘비정상’ 이런 단어였다. 그의 영화는 그런 식으로 한국영화팬에게 각인되었다. 그렇게 10여 년을 버틴 셈이다. 하지만 그것이 김기덕 영화미학인 셈이다. 평론가들은 마침내 그것이 ‘그의 영화’라는 사실에 동의하였고 말이다. 그의 신작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김기덕이 김기덕영화를 또 만들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 사이에 기이한 일이 터졌다. 김기덕의 독창적인 영화사랑과 영화 작업방식을 배우겠다며 알음알음 그의 조감독으로 들어왔고 그렇게 ‘김기덕영화’가 세포분열을 하는 듯 했다. 그런데 이제는 다 알려졌다시피 그 조감독이 어느 날 그의 곁을 떠나 대형영화사로 가버린 것이다. 영화팬에게는 그것이 무슨 큰일인가 싶을 정도이다. 자본주의 운운할 필요도 없이 ‘버젯’과 시나리오 ‘스펙’에 따라 영화감독이 움직인 것일 텐데 말이다. 그러나 김기덕 감독에게는 그 충격이 꽤나 컸던 모양이다. 세상에 김기덕이 폐인이 되어버렸다는 소문이 나돌 만큼 말이다. 김기덕은 한국 영화판을 떠나 세상을 등지고 어느 산골마을로 들어가서 수염도 안 깎고 사람도 안 만나고 여하튼 칩거한다는 소문이 나돈다.

김기덕의 분노

<아리랑>은 김기덕의 분노가 점철된 독특한 모노드라마이다. 영화는 어느 시골마을 외딴 집에 칩거하고 있는 김기덕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촬영감독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김기덕 감독은 혼자서 디지털카메라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담는다. 혼자서 연기하고, 혼자서 편집하고, 혼자서 감상한다. 영화에서 그는 혼자서 먹고, 혼자서 자고, 혼자서 욕한다. 그의 작품을 오래 전부터 보아온 사람이라면 그가 손재주가 많아 무엇이든지 뚱땅거리며 잘 만든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그의 달인 같은 소품제작이나 영화제작방식을 보여준다. 김기덕은 아마도 겨울 한철을 그 집에 살며 이 영화를 찍은 모양이다. 그는 보일러조차 돌아가지 않는 집안에서 그렇게 고독을 씹고, 저주의 마음을 달래며 <아리랑>을 찍은 것이다.

김기덕은 영화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먹는다. 과일도 먹고, 라면도 먹고, 밥도 비벼먹고, 생선도 구워먹고, 고기도 먹는다. 그리고 손재주를 부려 에스프레스 머신도 직접 만들어 커피도 내려 마신다. 나중엔 소주도 마시고 말이다. (의외도 김기덕 감독은 술을 잘 못 마시는 영화인으로 유명하다!) 여하튼 본인은 그것을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꾸역꾸역 먹어댄다. 그리고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는다.

김기덕의 욕지거리

김기덕 감독은 카메라를 향해 넋두리를 펼친다. 자신에 대한 회한을 끊임없이 늘어놓는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이 과묵하고 거친 영화감독이 알고 보니 굉장히 속으로 쌓인 게 많은 사람이란 것 알게 된다. 그가 <아리랑>에서 그 자신에게 쏟아놓은 말은 이렇다.

“이런 텐트 속에서, 오두막에서 텐트치고 사니깐 좋냐? 매일 이렇게 술만 먹고 사는 게 좋냐고? 야 김기덕 말해봐. 2008년도부터 3년째 이렇게 사냐고. 영화 안 만들거야? 영화 그만 뒀어?

“물도 안 나오고, 화장실도 없고. 이게 뭐냐. 사는 게 뭐냐. 밥그릇이 이게 뭐냐? 개밥그릇이지. 그리고 세계지도는 왜 걸어놨냐?”

그러다가 놀라운 이야기도 한다.

“<비몽> 찍다가. 여배우가 감옥 씬 찍다가 목매다는 장면에서 사고 난 것 때문에 그러냐? 너 그때 구석에서 울었다며? 그건 사고잖아. 너도 아찔했지? 예상 못했던 일이 일어났지. 너가 사다리 타고 뛰어 올라가 구했잖아. 영화 찍다가 살인자 되는 아찔한 순간이었지. 그때 충격 때문에 영화 안 찍는다는 거야?”

“너는 영화 한편 끝나면 바로 다음 작업 들어가고 그랬잖아. 편집도, 미술도, 시나리오도 너가 다하잖아. 일이 얼마나 많냐. 너한테 영화 배우려는 스탭들 많잖아. 상처받은 거 알아. 몇 시간동안 비 맞으며 기다리고 있던 사람, 이메일로 간절히 호소하던 사람 받아줬는데.. 5년 지나서.. 자본주의 유혹을 받아서 너를 떠난 거 알아. 너, 인생이 그런 거 알잖아. 사람이 오면 가는 거야. 존경한다고 와서 경멸하며 갈 수 있어. 너가 도덕적인 문제가 있거나 그 사람들이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어. 오래 함께 할 수 없어. 다들 자기 꿈이 있어. 자기 욕망이 이루어지길 원하지. 인생이 그런 거야. 가까우면 멀어지고. 사랑하지만 그냥 지루해지는 거야. 너가 너 영화에서 그랬잖아. 나를 찾아온 것도, 영화를 보러 온 것도, 돈과 유명배우를 선택해서 가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김기덕의 넋두리는 사방팔방으로 튀면서 계속된다.

“난 무지 외로워. 초등학교 때 내 유일한 친구가 혼혈아였다. 미군이 낳은 혼혈아. 그 애가 유일한 내 친한 친구였어. <수취인불명> 영화에서 나왔던 그 아이. 사람이 많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난 근본적으로 외로워..”

김기덕의 푸념은 뜻밖의 대화로 이어진다.

“해외영화제에서 상을 타오면 국가에서 상을 주고 그래. 국위선양 했다고. 그런데 자세히 보면 내 영화에선 국가를 창피하게 한 것도 있거던. 과도기에서……. 혼란스런 상황을 그린 거야. 그런데 상 받았다고 국가가 내게 상을 주는 거야. 지금 영화감독들 국가에서 상 받은 사람에게 연금 준다면 거부할 사람 몇이나 되겠어. 예술이란 게 모호한 거지…”

그러던 김기덕 감독의 감정은 극도로 격해진다.

“나는 영화를 찍고 싶다고. 영화를 찍고 싶어서 카메라에 나를 비쳐놓고 내가 연기를 하고 있다고. 내가 영화감독 한다는 것 보여주고 싶다고. 그런데… 이제 나는 영화를 어떻게 찍는지.. 배우들을 어떻게 연기를 시켜야 되는지 나도 까먹었다고. 솔직히 영화가 뭔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불같이 화를 낸다. 욕을 하기 시작한다. 세상에 대한 욕설, 자신을 몰라주는 세상에 대한 욕설일 것이다. 김기덕은 톱스타들에 대해 욕지거리를 퍼붓는다. 그리고 자신의 조감독에 대한 욕설까지. 김기덕은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한다.

그러면서 육두문자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아마 그의 인생 수십 년을 옭아맨 억압된 감정의 분출일 것이다. 영화를 하기 전에 겪었을 경멸과 영화판에 나온 이후의 비굴에 대한 가장(!) 김기덕다운 되갚음일 것이다. 욕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대사가 섞여있다.

“…영화를 통해 너가 보여주는 것들. 내가 너를 모를 줄 알아. 악역이 제일 쉬워. 개새끼들아….”

김기덕의 복수

김기덕은 이 영화 속에서 꾸준히 무언가를 만든다. 결국엔 총을 만든다. 사제 총을. <김기덕론>을 보면 그가 젊은 시절 사제 총을 만들고 다니다가 경찰에게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관통하는 기류가운데 하나가 군대 혹은 폭력에 대한 암묵적 체화이다. 김기덕 감독은 자신이 직접 끌과 공구로 총을 만든다. 그가 만든 총은 어설픈 모형총이 아니라 정교한 사제권총이다. 손잡이에 꼼꼼하게 문양까지 새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뜻밖에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설경구는 자신의 인생을 망친 사람을 찾아 불법적으로 권총을 구입하여 총을 쏘았다. 김기덕 감독은 자신과 세상을 향해 욕지거리만 퍼붓는 것이 아니라 정교하게 만든 사제권총을 들고 세상에 나온다. 그는 세 곳을 찾아가서 세 명에게 총을 쏜다. 김기덕 감독이 굳이 갇힌 공간을 나와 열린 세상에서 총을 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기덕 감독 영화가 보여주는 세상에 대한 저주와 분노가 투영된 것일까. 아마도 김기덕 감독의 삶과 영화를 조금이나마 이해한다면 이런 화면에 대해 쉽게 어떤 해석을 내리긴 어려울 것이다.

김기덕 감독의 <아리랑>은 알다시피 지난 5월 깐느에서 상영되어 해외영화평론가들로부터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여름 서울에서 열린 CinDi(시네마디지털서울)에서 깜짝 상영되었다. 그리고 이번 주부터 시네큐브에서 열리는 <<김기덕신작열전>>에서 <아멘>과 함께 2주일간 상영될 예정이다. <아멘>은 김기덕 감독이 <아리랑>을 들고 깐느에 갔다가, 간 김에 유럽에서 찍은 또 다른 김기덕의 최신 ‘푸닥거리’ 영화이다.

<아리랑>의 깐느상영 때 우리 영화기자들이 전한 소식에서 제일 많이 나온 말은 이른바 ‘배신한 감독’이야기였다. 깐느에선 그 감독의 실명이 나왔단다. CinDi에선 상영될 때는 실명이 빠졌고 깐느에서 이 영화가 상영되는 장면이 추가되었단다. 이번에 상영될 버전에서는 깐느 장면도 빠지고 실명도 나오지 않는다. 이게 다 김기덕 감독이 직접 편집한 것이란다.

김기덕 감독 작품은 워낙 호불호가 분명한지라 <아리랑>과 <아멘>의 특별상영에 대한 반응도 비슷하리라. 단지 영화가 너무 좋아, 영화밖에 모르는 한 영화감독의 한 맺힌 푸념을 지켜보는 것은 고역이면서도 성스러운 경험임에는 분명할 것이다. 특히 그의 초창기영화의 열정과 감독의 숫기 없음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하나 더… 이 영화에서는 시골 허름한 집 작업실에서 경이로운 전시품을 잠깐 엿볼 수 있다. 베니스, 베를린, 깐 등지에서 김기덕 감독이 ‘수집’한 영광의 트로피들이다. 김기덕 감독은 자신의 작품을 알아본 이들 영화제의 ‘인증품’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아마 그가 그린 그림들이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다. 김기덕 그림을 갖고 싶다. 그리고 그의 시나리오 <무단횡단>도 잠깐 보인다. (박재환, 20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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