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 톨스토이는 왜 객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는가

2010. 12. 8. 18:07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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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기간에 중국에서 발행된 한 주간지의 커버스토리는 톨스토이였다. 정확한 제목은 <<짜르 시대의 톨스토이>>이다. 왜 뜬금없이 이런 문학기사, 혹은 혁명관련 이야기가 다루어졌는지 보니 11월 20일은 톨스토이가 타계한지 딱 100년이 되는 날이란다. 중국의 유명 시사주간지에서 커버스토리로 다룰 만큼 톨스토이의 영향력이 지대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문학적 성취이든, 정치사상사 측면에서의 거대한 영향력이든 말이다. 미국에서도 톨스토이의 작품이 영화화되었었다. 물론 아주 오래전에 말이다. 그런데 작년에 톨스토이가 숨을 거두기 전 마지막 1년 정도의 삶에 초점을 맞춘 영화가 만들어졌다. 마이클 호포먼 감독의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원제 The Last Station)이라는 작품이다. 이미 재미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소문이 났기에 개봉이 기다려졌었다. 톨스토이는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가 몰락하고 레닌에 의한 공산혁명이 성공할 때 혁혁한 정신사상적인 영향을 끼친 대문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그런 이데올로기 차원을 뛰어넘어서 인류의 영혼과 순결을 작품에 승화시킨 위대한 작가로 추앙받고 말이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이런 이야기도 전해진다. 톨스토이 바로 옆에는 악처 소피아가 존재하고 있고, 그의 주위에는 그의 위명과 재산(저작권)을 둘러싼 불나방이 많았다는 사실. 그리고 또 하나 거의 언급되진 않지만 톨스토이가 불타오르는 성욕과 인성의 불일치에서 오는 갈등을 혼자만 감수한 것이 아니라 아내 소피아의 인생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줬다는 사실 등. 이런 흥미로운 내용이 타계 100주년 기념작품이라 할 <마지막 정거장>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톨스토이의 저작권을 사수하라!

톨스토이는 살아생전 문학작품으로서 뿐만 아니라 그의 사상, 철학이 거의 종교적 수준에서 수많은 러시아 인민들을 감화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톨스토이의 말년은 ‘톨스토이 운동’(톨스토이주의)의 최전성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집단농장 같은 공동체 사회를 형성하고 이곳에서 금욕적 사고방식에 연연하며 사랑과 순수, 평화의 종지를 내걸고 청교도적 청빈생활을 할 정도였다. 한편 짜르나 귀족사회, 그리고 러시아정교회에서는 톨스토이를 위험천만한 과격분자 내지는 사회불순 사상가로 보았기에 끝없는 감시와 견제를 한다. 그 와중에 톨스토이는 야스나야 폴리야나에 칩거하며 가족과, 가끔 그를 찾아오는 추종자의 열정적인 보필을 받는다. 그의 집 주위에는 언제나 그의 일거수일투족, 말씀 하나하나의 토씨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받아 적는 기자와 카메라맨이 진을 치고 있다. 모스크바에 본부를 둔 톨스토이주의자의 지도자 체르트코프는 열성 톨스토이 추종자인 젊은이 불가코프를 톨스토이의 비서로 보낸다. 불가코프에게는 톨스토이의 모든 일상을 기록하고 보고하라는 특명을 내린다. 체르트코프의 목적은 톨스토이의 전 인류적 사랑에 기인한다. 체르트코프는 톨스토이를 충동질하여 그의 모든 저작권을 사회에 환원하라고 촉구한다. 이미 농노제 토지 등 사회제도에 대해 혁명적 관점을 가지고 있던 톨스토이는 기꺼이 자신의 유서에 그런 ‘은혜’를 베풀 생각이다. 그런데 단 한 사람,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는 극구 반대한다. 소피아가 보기에는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포기하면서 아이만 13명을 낳아주고, 톨스토이의 모든 저작물에 대해 그 악필을 정서해주며 반백년을 같이 살아온 인생의 동반자이며 문학의 반려자인 자신의 의견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남편이 마냥 미운 것이다. 이들 노부부의 갈등은 갈수록 격화되며 결국 문학사에 ‘천하의 악녀’로 남게 된다. 결국, 유서작성 과정에서 톨스토이는 소피아와 대판 싸우고는 한밤에 몰래 집을 빠져나온다. (톨스토이는 수도원의 누이를 찾아갈 예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추운 러시아에서 영혼의 안식처를 떠난 할아버지는 곧 객지에서 쓰러진다. 지금은 톨스토이 역으로 이름이 바뀐 아스타포보 역에서, 정확히는 그 시골역의 역장의 거처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게 되는 것이다.

유쾌한 톨스토이 부부




영화에 나타나는 톨스토이의 문학적 분위기는 그의 서재에서 풍기는 한기만큼이나 중요하지 않다. 대신, 톨스토이의 순수성을 둘러싼 본인과 그 추종자들의 인지부조화에서 파생되는 유머와 휴머니즘이 영화의 전편을 가로지른다. 늙은 대문호는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고, 한평생을 고생한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지만 ‘유서’에서 파생되는 문제는 극단적 파국을 이끈다. 그동안 톨스토이의 문학적 성취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아내에 대해서는 ‘뒷담화’수준의 이야깃거리만 넘쳐난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자면 마이클 잭슨 사후 그의 노래에 대한 유언, 골프황제 우즈 이혼 뒤의 재산문제만큼이나 톨스토이의 저작물에 대한 이야기도 여러 변호사가 달라붙을 만큼 현실적인 문제였을 것이다. 천재의 가족, 혹은 위인의 아내에 대한 판단과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명분과 실리가 뒤엉킨 세속적 문제만 제외한다면 톨스토이와 소피아는 러시아에서 가장 행복한 문인 부부임에는 분명하다. 영화에서는 이들 노부부의 부부싸움에 대해 애정과 존경의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톨스토이 부부 역의 크리스토퍼 플러머와 헬렌 미렌의 연기가 ‘판타스틱’할 뿐만 아니라 제임스 맥어보이와 케리 콘돈의 연기도 ‘뷰티풀’하다.



톨스토이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문득 ‘클래식(고전)’에 대한 요즘 정의가 떠오른다. ‘제목은 다들 알지만 실제 읽은 사람은 얼마 없는 작품’을 말한단다. <전쟁과 평화>,<안나 카레니나>,<부활>같이 호흡 긴 소설을 읽고 러시아의 황량한 겨울바람과, 러시아혁명의 낭만적 분위기를 만끽할 여유가 있을까. 그런 여유가 없다면 극장에서 2시간으로 압축하여 보여주는 러시아혁명기 대문호의 부부싸움을 보는 것도 괜찮은 속독법이리라. 12월 15일 개봉예정. (박재환, 201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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