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자] 남자의 눈물은 피보다 진하다

2010. 9. 9. 17:47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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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가, 그리고 한류드라마가 아시아에서 인기를 끌게 되면서 ‘한국적 정서’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같은 아시아인들이 보아도 한국인은 끈끈한 가족애와 유교적 질서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흥미로운 전범인 모양이다. 그런 한국에서 홍콩의 대단한 영화 하나가 리메이크된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컸다. 기대하는 사람은 1986년에 만들어진 <영웅본색>은 멋진 영화이긴 한데 기본적으로 B급 정서의 홍콩스타일(대강 찍은 액션영화!)이기에 주윤발-장국영-적룡을 능가하는 매력적인 오늘날의 아시아 톱스타들을 끌어 모은다면 충분히 ‘걸작은 아니지만’ 명품 화보집 영화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생각해 보라. 한국의 원빈, 일본의 기무라 타쿠야, 태국의 닉쿤이라도 캐스팅 했다면 얼마나 간지가 좔좔 흐르는 영화가 될 것인가. 문제는 “그런데 왜 만들죠?”이다. 아시아 시장을 노려서? 그런데 의외로 캐스팅은 한류스타로 한정되었고 줄거리는 한국적 소재로 구속당하고 말았다. 왜일까. 굳이 오우삼의 <영웅본색>을 똑같이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우삼의 <영웅본색>은 주윤발의 영웅본색이며, 장국영의 영웅본색이며, 잘 모르지만 곧 서극의 영웅본색이니 말이다. 그때는 분명 그랬다.(<키노>라는 현학적 영화잡지가 나오기 전에 <스크린>이라는 영화잡지가 홍콩영화를 펌프질할 때의 그 멋진 1980년대 중반이었다!) 주윤발의 바바리 코트자락이 휘날릴 때, 뜬금없이 비둘기 떼가 날아오르고, 쏟아지는 쌍권총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멋과 청춘의 열정, 의리와 풋내기 의협심이 극대화되던 시절에 통하던 영화였다. 유치하지만 남자의 도와, 형제의 의와, 한번 사는 삶의 ‘때깔 ’에 대한 홍콩느와르 철학의 집대성 작품이 바로 <영웅본색>이었다.
 
송해성 감독은 처음 <영웅본색> 리메이크 제의를 받았을 때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파이란>을 만든 감독으로서는 <영웅본색>의 남성미학을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시나리오를 대폭 한국식으로 변용한 후에야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송승헌이 기자회견장에서 밝힌바와 같이 그 시절, 그 영화를 제대로 느낀 사람이라면 2010년에 생뚱맞게 한류스타가 나오는 리메이크 작품을 원한다는 자체가 의아한 일이다. “단지 욕만 듣진 않으면 다행일 것”이라는 자세로 영화가 완성되었고 어제 기자시사회를 가졌다. 욕 들을만한 영화냐고? 물론 그럴 필요는 없다. 단점보단 장점이 많고, 오리지널 <영웅본색>보다 나은 점도 발견되는 작품이니 말이다.
 
북한 남자, 한국 양아치에게 죽다
 
혁(주진모)은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오래 전 북한을 탈출할 때 손을 꼭 잡고 데려오던 남동생 철의 손을 한순간 놓고는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혁은 하나원을 거쳐 남한사회에 정착한다. 배운 게 죽음과 폭력뿐이어서 그런지 그의 직업은 무기밀매 조직폭력배이다. 같이 북한을 넘어온 영춘(송승헌)과 함께 태국과 한국을 오가며 위험스런 거래를 계속하며 언젠가는 동생을 다시 만나리라 다짐한다. 그런데 ‘찌질이’로만 알았던 보스의 조카 태민(조한선)의 비열한 계략에 넘어가서 혁은 태국의 감옥에 갇히고 영춘은 절름발이가 된다. 이런 상황에 혁의 동생 철(김강우)은 탈북에 성공하고 우여곡절 끝에 한국의 경찰이 된다. 철의 희망은 자신을 버리고 간 형, 그래서 어머니를 죽게 만든 그 나쁜 형을 만나 복수하는 것이다. 혁과 영춘, 그리고 철이는 알게 모르게 비열한 태민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게 되고 마지막에 가서는 분노가 폭발하고 만다.

홍콩 영웅본색과 한국 무적자

오우삼의 <영웅본색> 첫 장면은 형(적룡)의 악몽으로 시작한다. 동생(장국영)이 밤거리에서 총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에서 형은 악몽에서 깨어난다. 적룡은 세계적인 위조지폐 조직원. 적룡은 매사에 껄렁대지만 조직 동생에겐 씀씀이가 큰 주윤발과 함께 대만에서 큰 거래를 한다. 그런데 찌질이인 줄로만 여겼던 똘마니(이자웅)가 배신을 하고 적룡과 주윤발을 나락에 떨어진다. 동생은 이후 홍콩경찰이 되지만 조폭범죄자인 형 때문에 되는 것이 없다. 형제의 갈등은 깊어가고 배신자를 둘러싸고 강호의 의리가 도마 위에 오른다. 송해성의 <무적자>는 크게 보아 <영웅본색>의 줄거리를 충실히 따른 셈이다. 하다못해 “오브 코즈”라는 주윤발 특유의 영어는 송승헌에 의해 능숙하게 재연된다.


송해성 감독과 시나리오 작업을 함께한 김해곤(그도 이런 남성/액션 영화에는 일가견이 있다)은 <영웅본색>을 뛰어넘는, 혹은 ‘같아도 확실히 달라야’하는 작품을 만들자는 의욕에 넘쳤다. 그래서 많은 무리수를 둔 셈이다. 북한 이탈주민이 한국의 경찰이 되거나 마약도 아닌 무기밀매를 저렇게 간 크게 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동남아국가와의 대형 범죄커넥션은 등장해야하고 갈라진 형제의 비극적 해후에 대한 설정이 꼭 필요했으니 말이다. 아쉽지만 탈북자 신세를 질 수밖에 없다. 탈북자는 이미 우리 영화에서 이데올로기와 휴머니즘의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곽경택 감독의 <태풍>, <크로싱>, 그리고 최근의 <의형제>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어느새 우리 주위에 탈북자가 이런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적 특성상 탈북자는 동남아조폭만큼 흥미로운 캐릭터로 한국영화에 자리잡았다.
 
<영웅본색>은 오우삼 특유의 미학이 콸콸 넘치던 작품이다. 그것은 장철 감독의 조감독을 거치며 배운 양강(陽剛)미학이다. 지금 곧 죽어도 ‘폼생폼사’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설정이지만 그 설정에 본능적으로 열광하게 만들었던 작품이다. 그러나 그 영화가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조폭사회에서 통하는 형편없는 강호의 도보다는 마치 부성애를 느끼는 듯한 형제애에 있다. 적룡의 우아한 연기는 장국영의 섬세함과 조화를 이루었고 주윤발의 능글맞음은 이 영화를 25년이 넘게 ‘멋진 영화’로 남게 한 것이다.


 
<무적자>는 그런 면에서 무모한 도전을 한 셈이다. 배우들의 표피적 이미지는 <영웅본색> 못지않다. 주진모도 이제 연기자의 연륜이 느껴진다. 김강우의 눈빛 연기는 장국영만 아니었다면 충분히 빨려들 우수와 동정, 연민의 수준이다. 조한선이 연기하는 비열한 조폭 역할은 의외로 인상적이다. 초반에 너무 비굴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금세 원작을 뛰어넘는 자갈치 생양아치 날건달의 본색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아마도 <친구> 유오성 이래 최고의 부산 양아치 연기일 듯하다. 연기자 중 어깨가 가장 무거웠을 배우는 송승헌일 듯하다. 송승헌이 아무리 잘 하더라도 주윤발의 아우라를 뛰어넘기에는 한계가 있다. 어쩌겠는가. 주윤발은 홍콩식 조폭 드라마로 남성적 매력을 키워왔던 배우이니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윤발이 <영웅본색>을 찍은 것은 31살 때이다. 송승헌은 올해 34이다. 왜 우리는 <영웅본색>의 주윤발을 멋진 장년의 남자로 기억하고 있을까. 송승헌은 자신의 여린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쉽다.
 
아마도 <무적자>를 본 사람은 <영웅본색>을 다시 보고 싶어질 것이다. 장국영이 부른 애잔한 주제가들과 함께 ‘조폭들에게도 의리와 강호의 도를 논하던 그 시절’을 회상할 것 같다. (박재환 201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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