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자오선] 코맥 매카시의 묵시록적 서부극

2010. 5. 20. 17:01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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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박재환 북리뷰)와 <로드>의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의 이전 작품이 궁금했다. 이미 그 두 책을 읽었기에 그의 소설을 읽는다는 게 꽤나 고통스런 시간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했다. 무얼 먼저 읽을까 생각하다가 <핏빛 자오선>을 읽었다. 미국 서부시대(Old West)를 배경으로 하였기에 우선 손이 갔다. 요즘 서부극에 필이 꽂혀 서부영화만 수십 편 잇달아 보고 있다. 민음사에서 나온 김시현 번역본이다.

<핏빛 자오선>(Blood Meridian)은 매카시 작품답게 꽤나 묵직하고 읽기가 건조하다. 예쁜 문체나 유장한 문장 같은 것은 애당초 기대를 말아야한다. 게다가 우리가 잘 몰랐던 그 시절의 역사적 사실까지 더하여 꽤나 무시무시한 작품이다.

  우선 이 작품을 읽기 전에 먼저 알아두어야 할 역사적 사실이 있다. 소설은 1849년에서 1850년 사이에 (지금의) 미국과 멕시코 국경일대에서 일어난 일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때 이곳의 상황은 어떤가. 미국은 동부에서 서부로 급속하게 땅을 넓혀가는 - 그들의 입장에선 국경을 개척해가던 - 시기였다. 알라모 전투(1836)가 있었고, 마침내 미국과 멕시코의 전쟁(~1848)이 싱겁게 끝나고 미국은 엄청난 땅을 멕시코에서 빼앗는다. 지금의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와이오밍주 지역을 차지한다. (솔직히 말해 등신 같은) 멕시코는 그 넓은 땅을 빼앗기고도 남은 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입장이었다. 미군/탈영병 혹은 미국인 모험가뿐만 아니라 이 일대에서 원래 살았던, 그리고 미국 땅에서 쫓겨난 인디언까지 휘젓고 다니던 혼란스런 상황이었다. 멕시코 정부- 아니 지역단위 지도자, 주지사나 시장, 혹은 장군-는 새로운 방법을 택한다. 일종의 용병을 고용하는 것이다. 보통 미국에서 건너온 탈영병이나 무법자들이다. 그들은 멕시코 사람들과 계약을 맺고 인디언을 없애면 두당 얼마씩 받기로 한다. 한반도보다 더 넓은 땅, 그리고 사람은 훨씬 적은,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서 훨훨 날아다니는 인디언을 어떻게 처치한단 말인가. 인디언 사냥꾼은 인디언을 잡아서 그 머리 가죽을 벗긴다.(Scalp hunting) 머릿 가죽을 가져가면 멕시코 주지사가 셈을 치른다. 당시 활약했던, 그래서 가장 악명을 떨쳤던 인디언 사냥꾼이 존 글랜턴(John Glanton)이 이끌던 글랜턴 갱(Glanton gang)이다. 이들은 잔인무도했다. 인디언을 싹쓸이 할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눈에 띄는 존재라면 멕시코인 이든 뭐든 마구잡이로 죽이고 머릿 가죽을 벗겼다. 실제 있었던 일이다. 글랜턴 일당과 함께 이 무지막지한 사냥에 나섰던 미국인 새무엘 챔블린(Samuel Chamberlain)이 나중에 <나의 고백: 악당의 회고>(My Confession: The Recollections of a Rogue)라는 책을 내었다. 이 책은 이후 사실여부, 객관성 여부에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기억과 기록의 문제라는 측면을 떠나면 이 시대 이 사실을 다룬 꽤나 주요한 저작이 되었다.

Samuel Chamberlain

코맥 매카시도 챔블린의 책을 바탕으로 한편의 잔인한 소설을 썼다. 바로 1985년에 출판된 <핏빛 자오선>이다. 

매카시의 <핏빛 자오선>은 테네시에서 태어난 한 ‘소년’(the Kid)의 행적을 통해 글랜턴 갱의 잔혹사가 재현된다. 단지 ‘소년’으로만 등장하는 주인공은 14살에 집을 나와 모험을 하게 된다. 글도 모르고, 무법천지인 서부 사막지역에서 죽거나, 혹은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해지는 서부의 삶이 시작된다. 몇 년을 힘겹게 굴러먹다가 어느 날 타고 말과 탄약, 옷, 소총을 준다는 꾐에 빠져 입대한다. 인디언 토벌작전에 뛰어들었다가 코만치의 습격을 받는다. 코맥 매카시의 건조하고 잔인한 문장은 여기서 도드라진다.

 (코만치 인디언은...) 기묘하게 굽은 다리로 달음질해서 시신에서 옷을 벗기고 산 자나 죽은 자나 가릴 것 없이 머리채를 움켜쥐고 두개골에 칼날을 박아 피투성이 머리 가죽을 하늘 높이 쳐들고, 벌거벗은 몸을 조각조각 썰어 팔다리와 머리를 떼어 내고, 기묘한 하얀 몸통에서 뽑아낸 창자와 성기를 두 손 가득 그러쥐는가 하면, 몇몇 야만인은 피웅덩이에서 개처럼 굴렀는지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 있고, 죽어 가는 자를 마주친 자는 동료들에게 큰 소리를 외치며 신이 나 비역질을 했다. (79쪽)

 이 장면은 인디언(코만치)이 미군을 급습하는 장면이다. 미국 기병대가 등장하는 서부극에서 인디언의 잔혹함을 돋보이게 하는 장면으로 묘사되던 그런 모습과 일치한다. 물론, 미국 서부극의 역사에서 수정주의 서부극이나 양심적 서부극 등의 등장으로 토착 원주민으로서의 인디언을 다루면서 이런 잔혹성에 의문을 품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이 시기엔 닭과 달걀 논쟁처럼, 전쟁의 한복판에서 이루어지던 상호 무자비와 무관용의 원시시대 형국이었다. 멕시코 또한 그들의 땅에서 아파치 부락을 도륙하였다. 살아남은 아파치는 복수를 하였고, 백인 사냥꾼은 그들 인디언의 머릿가죽을 벗긴다. 그런 식이다.

 여하튼 코만치에게 사로잡혀 죽음 일보 직전까지 갔던 소년(이미 19살이다!)은 글랜턴 일당에 합류하게 된다. 글랜턴은 주지사 트리아스와 계약을 맺는다. 인디언 머리 가죽 하나에  100달러, 그리고 추장 고메스의 머리를 가져오면 1000달러를 받기로.  챔블린의 회고록에는 글랜턴이 멕시코 소노라의 주지사 호세 우레아(José de Urrea)와 그런 계약을 맺었다고. 1000달러가 걸린 아파치 추장의 이름은 산타나란다.

‘소년’은 글랜턴 일당 (스물 명 남짓이다)과 함께 멕시코와 미국과의 국경을 이동하며 광란의 사냥을 하게 된다. 매카시 잔혹미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장면이 여기서 등장한다. 19명의 글랜턴 갱이 한밤에 인디언 야영지를 급습하는 장면이다. 매카시는 이 부분을 ‘길레뇨 학살’이라고 명명했다.

글랜턴은 잠든 채 누워 있던 1000명의 영혼을 박살냈다. 글랜턴은 첫 번째 오두막으로 말을 몰고 달려가 말발굽으로 거침없이 짓이겼다. ....첫 1분이 지나자 사방에 살육이 만연했다 여자들은 비명을 질러댔고.... 아기 발꿈치를 차례로 쥐고 머리를 돌덩이에 짓이겼다. 아기의 정수리 숨구멍으로 시뻘건 구토물 같은 뇌수가 콸콸 쏟아졌다... 시체들이 바다에서 일어난 대재앙의 희생자인 양 물가에 나뒹굴었다. 소금으로 얼룩져 잇던 호숫가는 순식간에 피와 내장으로 뒤덮였다. 군인들이 핏빛 호수에서 시체 둘을 끌어내는 동안 물가를 가뿐히 달려가는 포말이 떠오른 태양에 연분홍으로 발그레했다. 군인들이 시체 사이를 거닐며 칼로 검은 머리털을 수확하고 나면 희생자들 머리에는 시뻘건 양막을 뒤집어쓴 듯 한 뻘건 두개골만이 남았다.. 군인들은 시신을 아무 이유 없이 난도질하며 시뻘건 물속을 돌아다녔고, 몇몇은 호숫가에서 죽어가거나 죽은 젊은 여인네의 구타당한 몸뚱이에 들러붙었다. (207~209)

 글랜턴은 그렇게 인디언을 학살하고 머릿가죽을 챙겨 치와와에 입성한다. (1849년 7월 21일) 이후 글랜턴 일당은 미쳐간다. 나중에는 멕시코 측도 이들의 무리한 학살 행위를 감당/제어 못할 정도가 되어 버린다. 치라카후아 인디언을 뒤쫓다 유마 인디언의 습격을 받아 글랜턴 갱들은 거의 괴멸한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는 뿔뿔이 흩어진다.

소설의 마지막은 매카시답게 우울하다. ‘소년’은 1878년 텍사스의 그리핀 요새에 나타난다. 그곳에서 그는 꿈에 나타날까 무서운 갱단의 리더, (판사라고 불리던) 홀던과 마주친다. 매카시 소설을 읽어본 독자라면 아마도 소년이 변소간에서 홀던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지옥을 생각한다면 그 ‘소년’이 죽기 전에 어떤 악몽을 겪어야했을지까지  짐작할 것이다. 하지만 매카시답게 말이 없다!)

정말 끔찍한 소설이 아닐 수 없다. 이 소설은 <<뉴욕타임스>>에 의해 ‘최근 25년간 출간된 최고의 미국소설’로 선정되었다. 코맥 매카시의 문체에 대해서는 성서적 수사법과 묵시록적 접근을 이야기한다. 당연히 이 책도 그러하다. 그것은 등장인물이 읊조리는 광기의 설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총과 피가 야기하는 끔직한 그림에 의해서 도드라지는 것이다.

미국과 멕시코는 그때 그렇게 살았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엘 토포>가 더 쉽게 읽혀질 것이다. (박재환 201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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