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볼란티어]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는 영화 (조경덕 감독 Sex Volunteer , 2009)

2010. 4. 15. 11:14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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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리뷰는 영화 자체만큼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은 내용과 상황을 담고 있습니다. 글이 불편함과 불쾌함을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비위 약하신 분은 읽지 마시길 바랍니다.  *

 

  언젠가 들은 이야기이다. 장애아동을 키우는 부모들의 가장 절실한 소망이 무엇인지. 사회의 질시와 제대로 구축되지 못한 사회안전망과 복지제도의 미비 등으로 가슴에 큰 멍에를 안고 사는 장애인 부모들의 단 하나의 소망은 “우리 아이보다 하루 더 사는 것!”이라고. 무슨 말인가 생각했는데... 그 장애아이, 그리고 장애인으로  살아갈 자식에게 쏟아질 사회의 편견과 눈길을 너무나 잘 알기에 부모마음이 그런 것이란다. 그나마 아이를 돌보던 엄마마저 먼저 세상을 떠나면 세상에 홀로 남은 그 장애인은 누가 돌볼 것인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터진다는 것이다. 2010년 한국 장애인의 솔직한 모습이다.

 곧 영화 한편이 개봉된다. <섹스 볼란티어>라는 다소 황당할 정도의 선정적인 제목의 영화이다. 이 영화는 장애인의 섹스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작품이다.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찍은 영화라는 말이다. ‘장애인의 섹스’라고 하면 우선 당장 불쾌한 감정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에서도 보았듯이. 그러나 비장애인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장애인의 섹스 문제도 주요 이슈로 부상하게 되었다. 그것은 노령화 사회가 급속하게 진전되면서 우리사회에 ‘노인의 성생활’이 사회복지문제의 하나의 다루어지듯이 말이다. 물론, 당연히 존재론적 철학문제가 아니라 인권과 법률이 뒷받침되는 사회문제인 것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장애인은 중증뇌성마비 장애남성이다.

맹랑한 여학생, 섹스봉사를 하다

‘볼란티어’는 자원봉사를 이야기한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자원봉사’란 게 일종의 취업 ‘스펙’이 되어버렸다.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 많을 것이지만.. ) 고아원이든, 도서관이든, 영화제행사장이든 어디서든지 학생들이 자원봉사 표식을 달고 ‘정해진 시간만큼’, 할당된 업무를 무사히 마치고 확인도장 받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과연 모든 사람이 이 학생들의 봉사활동 모습에 “훌륭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말할 수 있다. 그럼 이 경우에는? 재판에서도 활용된다. 사회적 물의를 야기한 연예인들이나 정치가, 기업가들이 벌금과 함께 ‘사회봉사활동’을 부여받는다. 당신은 이들에게 “훌륭하다”라고 바로 말할 수 있는가? ‘봉사’란 단어의 취지와 의미를 무색하게 하고, 때로는 분노를 자아낼지도 모른다. 여기 이 영화에서 한 맹랑한 여학생이 ‘봉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준다. 이 여학생은 대학 영화과 학생이다. 감독지망생이다. 이 학생의 문제적 작품은 집창촌 여성들의 자활의지를 다룬 짧은 영화이다. 이 여학생이 집창촌 여성을 다룬 작품을 찍다가 새로운 작품을 구상한다. 집창촌을 이용(?)하는 남성들의 문제를 뒤쫓다 장애인의 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여학생은 신부님을 섭외한다. 장애인을 오래 보살펴온 신부님은 여학생과 함께 영화를 찍게 된다. 신부님은 장애인의 성문제를 잘 알기 때문이다. “배가 안 고파요. 사람이 고파요.”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학생은 장애인의 성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작품을 찍는다. 첫 의도와는 달리 극중 영화의 여주인공은 ‘여대생’에서 ‘창녀’로 바뀐다. (도저히 여대생의 섹스 자원봉사를 찍을 수가 없기에 그나마 무난한 창녀의 섹스 자원봉사로 바꾼 것이다) 매춘행위로 재판을 받고 사회봉사활동을 부여받은 이 ‘창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자원봉사로 바로 장애인과의 섹스를 선택한 것이다. 분노하냐고? 글쎄 그런 일차원적인 분노와 대중적인 색안경 쓰기가 이 영화의 주제는 아닐 것이다.

왜 ‘장애인의 성’이 문제가 되는가

히틀러가 유태인 600만 명을 가스실로 보내어 인종말살 정책을 펼칠 때, 그들이 내세운 ‘우수한 아리안’의 영광을 위해 희생이 된 것은 유태인만이 아니었다. 장애인들도 대상이었다. 중세에는 장애인에 대한 시각은 콰지모도가 대표하듯 비난과 경멸과 히틀러적 말살의 대상이었다. (우리나라는? 사실 글 쓰는 필자도 자신이 없다. 임신초기 초음파 검사에서 장애아임이 확인되면 대부분 어떤 조치를 취하는지를 생각해보라!)

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여대생이, 그리고 창녀가 장애인을 대상으로 섹스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다음 문장은 굉장히 역겨운 문장일 수도 있다.

극중 여감독 ‘예리’가 영화를 찍기 위해 사전 접촉하는 사람 중에는 ‘장애인 섹스자봉단체 대표’가 있다. 그런 자원봉사단체도 있을까? 이 남자는 자신의 정체와 단체를 밝히는 것을 극히 꺼려하면서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스런 자원봉사’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당신은 지금 섹스의 구체적 형태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오해이며, 오버이며, 이 사람들의 고뇌에 대한 무지일지도 모른다)

이 남자의 충격적 증언...“제가 이런 일을 하게 된 것은 장애인 형이 있기 때문입니다. 형은 장애인 기관에 다녔고....... 그곳에서... 형은 자원봉사 나온 여학생에게 자위를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난리가 났어요. 쫓겨났고요. 그런데 얼마 뒤 집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어요.... 방문을 여니 엄마가.....” (이 충격적 내용은 절대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불능의 장면일지도 모른다)

장애인의 성문제, 한 개인의 인권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이 영화 제작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후원했다고 한다.

이 영화를 만든 조경덕 감독은 일본에 어학연수 갔다가 <섹스자원봉사>라는 취재리포트를 읽었다. 일본과 네덜란드에서의 섹스자원봉사를 다룬 책인데 순수한 개념의 자원봉사가 아니라 돈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성매매일 뿐이라고 생각했단다. 조 감독은 줄곧 장애인의 성문제를 파고들었고,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아했던 이 문제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 것이었다.

영화를 보지 않은 당신 생각은? 영화에서는 거리 시민인터뷰 장면이 나온다. “병신 육갑하네. 자기 몸도 하나 못 건사하면서 장애인이 무슨 결혼이야. 장애인들끼리 결혼하던가, 588을 가던가, 아니면 혼자 해결하던가....”  영화는 장애인에 대한 일반인, 아니 비장애인의 사고방식을 쿨하게 표출한다. 부정할 필요는 없다. 현상인식이 문제해결의 첫걸음일 테니.

이 영화에서 중증 장애인 역을 맡은 배우는 실제 중증장애인이다.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조경호 씨와 이윤호 씨이다. 여기 출연하는 배우는 거의 대부분 비전문배우이다. 신부님으로 출연한 사람은 영화판에선 이미 유명해진 홍승기 변호사이다. 영화처음 성매매 현장을 급습하는 형사로 출연한 사람은 홍창진 신부이다. 극중 (실제) 장애인 천길의 어머니 역으로 나온 사람은 조경덕 감독의 친이모란다. 물론 첫 영화출연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 영화는 매끄러운 연기를 기대할 순 없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진실된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과 여학생이 영화 속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점에서 보자면 이 작품은 영화에 대한 가장 유쾌하면서 가장 심각한 작품이며, 장애인의 섹스문제를 다룬 점에서 보자면 이 영화는 인간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탐색을 한 셈이다. 

영화 마지막에 우리나라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법조항을 보여준다. 놀랍게도 이런 조항이 있었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타)일부개정 2009.5.22 법률 제9705호]

제29조(성에서의 차별금지)
①모든 장애인의 성에 관한 권리는 존중되어야 하며, 장애인은 이를 주체적으로 표현하고 향유할 수 있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다.

②가족·가정 및 복지시설 등의 구성원은 장애인에 대하여 장애를 이유로 성생활을 향유할 공간 및 기타 도구의 사용을 제한하는 등 장애인이 성생활을 향유할 기회를 제한하거나 박탈하여서는 아니 된다.

③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이 성을 향유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관계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필요한 지원책을 강구하고, 장애를 이유로 한 성에 대한 편견·관습, 그 밖의 모든 차별적 관행을 없애기 위한 홍보·교육을 하여야 한다.

다음 주 장애인의 날(4월 20일)에 국회에서는 이 영화 시사회를 가질 예정이란다. 장애인차별금지법까지 만드신 의원나리들께서 이 영화를 흔쾌히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박재환 2010.4.14)

 

 

 

영화에서는 낯익은 장소가 나왔다. 우리 동네이다. 일요일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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