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을 찾아서] 알고 보면 백배 재밌는 중국영화

2009. 8. 3. 11:28중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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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 밤 EBS <<세계의 명화>>시간에 흥미로운 영화가 한편 방송되었다. 평소 보고 싶었지만 구해 보기 힘들었던 중국영화인 닝잉 감독의 <즐거움을 찾아서>(找乐)라는 작품이었다. ‘닝잉’(寧瀛,녕영)은 한국 사람에겐 발음하기도 힘들다. 그의 언니는 닝다이(寧岱,녕대)이다. 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두 사람 다 중국영화계에서는 유명인사이다. 1980년 중국이 개혁개방의 거대한 바다로 뛰어든 해. 문혁 이후 오랫동안 문을 닫았던 북경전영학원이 다시 신입생을 받아들였다. 이때는 아직 학교 체계가 잡히지 않았다. 진개가(천카이거)는 감독 파트에, 장예모(장이머우)는 촬영 파트에, 그리고 닝잉은 녹음 파트에 입학했다. 그의 누나는 문학 파트에 진학하여 영화를 배운다. 이후 닝잉은 국비 유학시험에 합격하여 이탈리아로 영화공부를 떠났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중국에서 <마지막 황제>를 찍을 때 조감독으로 활약했다. 닝잉은 <즐거움을 찾아서> 외에 <민경고사>, 그리고 최근의 <무궁동>까지 정말 중국영화계에서는 보기 드문 독특한 영화를 감독했다. 닝잉 - 닝따이 두 사람 남편도 다 영화인이다. 닝잉의 남편은 이태리 촬영감독 안드레아 카바주티(Andrea Cavazzuti )이고, 닝따이의 남편은 그 유명한 장원(張元,장위앤)이다. 닝따이는 여동생과 남편 영화의 시나리오를 담당했다. 뭐, 이런 이야기만 하면 이 집안사람들이 된장녀 혹은, 조금은 서구화된 엘리트 패밀리로 받아들일 소지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적어도 닝잉의 작품은 100% ‘북경의 실제모습’을 담은 소(小영)화라는 점이다.

 <즐거움을 찾아서>는 닝잉 감독의 두 번째 감독 작품이다. 누나 닝따이와 함께 각본을 썼다. 원제목도 ‘즐거움을 찾아서’(找樂)이다. 과연 어떤 즐거움일까.

  영화는 1993년 중국영화답게, 그리고 오늘날 구해보기 힘든 작품답게 굉장히 거친 화면이다. 게다가 보여주는 중국의 모습도 현대화, 개발화 되기 전의 북경 뒷골목이야기이다. 그렇다고 건달의 이야기가 아니라 서민의 모습이란 말이다. 영화는 허름한 경극 극장의 오랜 문지기(수위) 라오한(老韓)의 늘그막 인생을 다룬다. 라오한은 지난 40년 동안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 자리를 지켜왔다. 아침 6시면 자명종 소리에 눈을 뜨고 부리나케 극장으로 달려와서는 극장 출입구를 차지한 잡상인(전병장수)를 쫓아낸다. 아침에 배달된 신문을 챙기고 극장 문을 열 준비를 한다. 극장에서는 손오공이 하늘나라에서 소란을 피우는 장면이 한창 공연 중이다. 라오한은 극장 수위이지만 경극에 필요하다면 소도구담당이 되기도 하고, 엑스트라가 되어 잠시 뒤에 서 있기도 한다. 그는 40년 동안 이 극장을 지켜왔고, 경극을 보았기에 그 누구보다도 경극에 대해 잘 알고, 경극을 사랑한다. 그가 이제 정년퇴임을 하고 내일부터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하는 것이다. 자기 후임으로 들어온 놈을 보니 뺀질거리는 것이 맘에 썩 내키지 않는다. 어쩌겠는가. 이제 자신은 자신의 새 삶을 찾아야지. 이미 오래 전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의 사진을 챙기고 라오한은 극장을 떠난다. 다음날 그는 골목 대중목욕탕 창문을 기웃거리는 조금 모자라는 소년 허밍(何明)을 만난다. 허밍과 함께 공원에서 소일하고 있는 노인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도 자기처럼 정년퇴임하여 공원에서 소일하는 사람들. 그들의 공통점은 경극을 무지 사랑한다는 것. 그들은 공원 한편에서 얼후를 연주하고, 박자를 넣어 자기들이 알고 있는 경극 가락을 한껏 뽐내고 있다. 그런데 노인들의 소일거리가 항상 그렇듯이 이들 사이에 의견충돌이 일어난다. “야, 그 곳에선 두 번 꺾어야한다고.” “네가 박자를 늦게 넣었어....” 이때 경극 극장 경력 40년에 빛나는 라오한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매란방은 이렇게 했고, 상소운(尙小雲)은 저렇게 했고... 경극은 각자의 스타일로 자유롭게.... 어쩌고저쩌고...” 이들 퇴직노동자들은 곧바로 노인경극단을 구성한 셈이다. 라오한은 열심히 뛰어 마을 문화회관의 방 하나를 얻어 노인들은 추운 겨울에도 모여서 열심히 경극 연습을 하게 된다. 그리고 춘절문화축제에도 참가하게 된다. 라오한의 욕심과는 달리 상을 하나도 타지 못한다. 라오한은 몹시 속이 상한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소일거리, 취미생활로 경극을 하지만 라오한은 40년 생활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연습시간에 지각하고, 박자는 틀리고, 상도 하나 못 타는 이들이 밉고 싫다. 그러면서 이들 사이에 트러블이 생기고 언쟁이 생기고.. 결국 라오한은 같이 못 놀겠다며 ‘노인경극단’을 나가 버린다. 게다가 마을회관도 재개발한다고 문을 닫게 생겼다. 다니던 일터에서 정년퇴직하고 그나마 정을 둔 노인 서클에서도 왕따 당한 라오한. 쓸쓸하게 공원을 거닐다 어디서 경극 소리가 들려오자 벽에 쭈그리고 앉아 가만히 들어본다. 노인들이 모여서 여전히 연습 중이다. 주저하던 라오한은 그들에게 다가가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 제목 ‘즐거움의 찾아서’는 대강 이해가 간다. 소일거리, 취미거리로 시작되는 인생의 낙을 말한다. 그게 프로페셔널한 경극 배우는 아니어도 누군가가 은퇴 뒤에, 한번쯤은 도전해보고 싶은 인생의 진정한 낙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것이 문혁 직후의 중국이거나 IMF직후의 한국이거나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인생을 즐기는 진정한 즐거움을 말할 것이다.

   고집불통 라오한 역을 맡은 배우는 황종락(黄宗洛,황쭝뤄)이다. 1926년 북경출신으로 중국의 1급 무대배우이며, 영화인이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경극 장면은 <료천궁>(鬧天宮,손오공,천궁에서 소란을 피우다)과 <봉환소>(鳳還巢 , 봉황이 둥지로 돌아오다) 등이다.

 닝잉 감독의 이 작품이나 <민경고사>도 훌륭하지만 <무궁동>은 정말 독특하다. 한번 꼭 보시기 바란다.  (박재환 200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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