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해운대가 살아있는 영화

2009. 7. 28. 09:05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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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제균 감독이 [해운대]라는 ‘블록버스터’ 재난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영화계(저널포함) 일부에서는 반신반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윤제균 감독은 <두사부일체>, <색즉시공>, 그리고 <1번가의 기적> 등의 전작이 말해주듯 우선은 스케일에서는 아기자기한 코미디가 장기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윤제균 감독이 영화판에 뛰어들기 전에 광고회사에서 일했었고 영화가 좋아 영화판에 뛰어들었다는 것을 안다면 그의 재능을 너무 한쪽으로 재단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윤제균 감독은 주위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형 블록버스터, 윤제균 스타일의 재난영화를 만들어낸다. 그것도 놀랍도록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말이다.

2008년 10월 3일 해운대 이면도로에서 박재환 촬영


   작년(2008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던 어느 날. 부산 해운대 백사장 이면도로에서는 아침부터 교통 통제가 시작되었다. 파라다이스호텔에서 길 건너 (메가박스 극장이 위치한) 스펀지에 이르는 2차선 도로에 <<영화 촬영 중 교통에 불편을 들여 죄송합니다>>라는 입간판이 섰다. 윤제균 감독의 신작이 촬영 중이라는 것이었다. <해운대>라는 재난영화를 찍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도대체 어떤 장면을 찍나 궁금했다. 처음엔 이면도로 추격전을 찍는 줄 알았다. 그런데 완성된 영화에서는 맙소사! 초대형 츠나미 (영화에서는 메가 츠나미라고 표현됨!)가 해운대 백사장을 한번 휩쓸고는 해변도로를 따라 근사하게 들어선 고층건물들을 폐허로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이면도로로 쏟아져 들어오는 파도는 사람들을 순식간에 휩쓸어버린다. 바로 그 장면에서 사용된 것이었다.

영화의 시작은 <퍼펙트 스톰>

   영화 <해운대>의 첫 장면은 지난 2003년 서남아시아를 휩쓴 츠나미(쓰나미) 이야기를 보여준다. 폭풍우의 한복판에 작은 어선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일엽편주 흔들리던 배 위에서 한 사람이 희생당한다. <퍼펙트 스톰>이 세상에 나온 것은 2000년. 10년이 채 되기도 전에 한국 영화계는 ‘겉으로 보이는 수준’을 따라잡은 것이다. 물론 이 영화는 <퍼펙트 스톰> 등의 특수효과를 만든 할리우드의 폴리곤 엔터테인먼트와 CG작업을 같이한 것이다. 윤제균 감독은 <디 워>의 심형래와는 달리 필요한 부분의 필요한 기술은 적절한 곳에서 적절하게 갖다 쓴 것이다. 영상효과는 충분히 관객에게 전달된 셈이다. 츠나미가 끝난 뒤 이야기는 몇 갈래로 동시에 진행된다.

   서남아시아 츠나미에서 선원을 희생시킨 최만식(설경구)은 죄책감에 연희(하지원)의 주변을 맴돈다. 애 딸린 홀아비 신세로 말이다. 설경구의 작은 아버지(송재호)는 어선을 여러 척 거느린 유지. 해운대에 대형 유통센터 건립을 추진하면서 해운대 토박이 사람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만식(설경구)의 동생 형식(이민기)은 119 해양구조대 대원. 서울에서 놀려온 삼수생 희미(강예원)와 ‘윤재균 스타일-정확히는 색즉시공 류’의 연애담을 펼치게 된다. 해마다 여름피서 최고 절정기에 이르면 해운대에는 100만 피서객이 모인다. 이곳에 츠나미가 덮친다면? 그런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 있다. 해양지질연구소 김휘 박사(박중훈)이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일본 열도에서 꾸준히 지진이 일어나고 있고 대마도에서 대형 해저지진이 일어난다면 10분 안에 해운대에는 최고 수백 미터의 파고가 수반되는 ‘메가 츠나미’가 덮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런 미치광이 연구 때문에 아내(엄정화)와는 7년째 별거 중. 아내가 해운대 동백섬 누리마루에서 열리는 국제적 규모의 문화엑스포 행사의 홍보책임을 맡아 딸과 함께 해운대로 온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수많은 인간 군상들이 해운대 백사장을 달군다. 옛날 유원지에서 흔히 보았음직한 건달 오동춘 역으로 김인권이 발군의 ‘건달’ 연기를 보여준다.

부산사람이라면 롯데 자이언츠

  윤제균 감독은 부산출신이다. 부산 사직고 출신이다! (나는 내성고 출신!!) 외지사람들은 부산사람들에 대한 이미지가 있다. 억센 남쪽 사투리에, 마치 싸우는 것 같은 높은 억양. 여자들이 “모르겠스예~” 스타일의 어투에 대한 이야기 등등. 게다가 장동건의 <친구> 영향으로 부산은 이래저래 낭만적 리얼리즘의 화신이 되었다. 그런 투박한 낭만적 부산 이미지에 롯데 자이언츠 야구사랑이 포함되어있다. 이 지역의 과도한 야구사랑은 이 남도(南都) 뱃사람(?)의 열정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영화에서 설경구가 하지원을 데리고 사직구장을 찾았다. 프로야구를 보기 위해. 사직구장에 가보면 롯데 팬들의 야구 사랑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직구장 관중석으로 좀 더 가까이가보면 야구보다 더 인간적인 드라마를 볼 수 있다. 소주 팩에 빨대 꽂아 알코올 화끈 닳아 오른 가운데 불같은 응원전이 펼쳐진다. 롯데가 이기면 더 좋고, 롯데가 지고 있으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안전그물망을 붙잡고는 그라운드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선수들에게 고래고래 욕설을 퍼붓는 진상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 진상들을 설경구가 아낌없이 재연한다. “이대호, 이 돼지새끼야! 오늘 병살타 치러 나왔어?”라고. 그 코믹한 리얼함이란 역대 야구장 등장 영화 중 최고이다.

부산사람이라면 해운대

   부산권역에는 해운대말고도 해수욕장이 있다. 광안리, 송정, 영도, 일광, 기장까지. 그런데 그 규모나 인지도 면에서는 역시 해운대가 톱이다. 여름이면 최대 100만 명의 피서 인파가 몰린다. <해운대>의 CG를 담당한 폴리곤의 한스 울릭 대표는 처음에 100만 명이라는 해운대 인파 설정에 대해 믿지를 않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 좁은 백사장에 100만 명이나 가서 무슨 피서를 즐기겠나? 참 특이한 피서풍속이긴 하다. 이젠 해운대는 여름 피서 한 철과 곧바로 이어지는 부산국제영화제로 세계적인 곳이 되어버렸다. 윤제균 감독은 그 해운대의 명성을 100% 활용한다. 그렇다고 바나나보트가 바다 위를 날아다니고 백사장의 비키니 아가씨를 보여주는 멍청한 짓에 시간을 빼앗지는 않는다. 뱃사람과 횟집 사람들의 일상을 오밀조밀 파고들며 츠나미의 파고를 점점 높이는 솜씨를 보여준다. 츠나미를 기대하고 온 관객들은 영화의 기류가 코믹 드라마라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윤제균 감독이니까. 특히 설경구가 ‘겔포스’인줄 알고 마시는 샴푸는 그의 숨길 수 없는 개그장기를 보여준다.

츠나미가 남긴 것

    비록 CG에서는 외국 기술을 활용했지만 츠나미 효과는 확실하다. 한국 영화에서 자연스레 용해된 특수효과는 이제 한국영화의 지평을 십분 넓힌 셈이다. CG에 주눅들 필요 없이 필요하며 갖다 쓰면 되는 편리함과 영화제작의 효율제고라는 성과를 안겨주었다. 그만큼 드라마 자체에 공을 들이고 완성도에 신경 쓰면 되는 것이다.
 <해운대>는 할리우드 재난영화에서 볼 수 있는 영웅주의와는 또 다른 한국식 블록버스터의 전범을 만들었다. 영웅의 활약상에 초점을 맞추고 희생을 강조하지 않는다. 평범한 일반인들이 최악의 순간에 보여줄 수 있는 착한 마음씨가 결국은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이끄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엄정화가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장면은 <클래쉬>의 영향이리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지적하자면 막판 박중훈이 “내가 네 아빠다.”라고 하는 장면은 확실히 윤제균 감독의 개그욕심인 것 같다.

  올 여름 <해운대> 영화를 보고 여름휴가로 해운대를 가면 제일 좋을 것이다. 아니면 가을에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동안 부산의 어느 극장에서 <해운대>를 보는 것도 재미난 추억거리일 것이다. 어찌 아냐. 앞으로 해마다 여름이면 부산 어디에선가는 항상 <해운대>가 상영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사족

  영화를 보면서 세세한 것까지 신경 썼다는 것이 눈에 띤다. 김휘 박사의 연구소 책꽂이에는 <<감사원 감사자료>>같은 게 꽂혀있었다. 해양지질연구소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자료란 게 어떤 것일까. 아마도 이런 내용이 있지 않을까?  김휘 박사 같은 미치광이 주장 (혹은 비주류 학설) 때문에 연구소 측은 “일본 대마도가 폭삭 내려앉고 그 여파로 500미터 높이의 파고가 10초 내로 해운대를 덮치면 100만 해운대 피서객이 다 죽을 수 있으니 이 해변에서는 놀지 마세요....”라는 입간판을 해운대 곳곳에 붙였다고 하자. (<죠스>에서 상어출몰지역이라는 간판 때문에 일어나는 소동과 유사할까?) 어느 선에서, 얼마의 예산으로 그런 무리수를 둘 수 있을까. 아마도 츠나미 발생 시 주의사항하는 경고판 붙이는 비용에 대해서도 감사원에서는 “적정수준 이상의 홍보비 지출‘이라고 하지 않을까. 김휘 박사의 연구소 벽에는 태극기가 걸려있다. 할리우드 영화 보면 성조기 자주 나와 짜증내는데 이 영화가 많이 수출되어 세계 곳곳의 극장가에 태극기가 휘날렸으면 좋겠다. 해운대가 부산에 있다는 것을 알렸으면 진짜 좋겠다.

  영화에서 하지원이 설경구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곳은 아버지 산소이다. 비석에 쓰여 있기로는 ‘姜旲奎’이다. ‘旲’는 처음에는 ‘昊’(호)자를 잘못 쓴 줄 알았다. 그런데 찾아보니 ‘旲’라는 한자가 있다. 햇빛 [대]나, 클 [영]자로 읽힌단다. 그럼 뭐야. 강대규라는 말인가 강영규라는 말인가. 크레디트 찾아보니 조감독 이름이 강대규이다. 푸핫! 확인해봐야겠다. 묘비명에 자기 이름을 새기다니!  (박재환 2009-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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