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용호투] 고혹자, 여섯번째 이야기

2008. 2. 16. 11:07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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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by 박재환 2000/8/29] 홍콩의 인기 만화 중에 <고혹자>시리즈란 것이 있다. 이 인기만화는 96년부터 영화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고혹자 인재강호>를 필두로 <맹룡과강>, <쌍수서천>, <전무불승>, <용쟁호투>까지 다섯 편이 만들어졌고, 올해 초 그 여섯 번째 작품으로 <승자위왕(勝者爲王)>이 만들어졌다. 이번 여섯 번째 시리즈는 모종의 이유로 영화사는 '고혹자'라는 표기를 붙이지 못한 채 홍콩과 대만에서 <승자위왕>이라는 제목만으로 개봉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뜻밖에 <동경용호투>라는 새로운 제목을 붙였다. 영화 마지막에 오르는 크레딧을 보면, 이 영화가 <고혹자> 시리즈에서 따왔음이 나타난다. <고혹자> 시리즈는 홍콩의 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폭력써클 학생들의 이야기이다. 진호남(陳浩南)과 산계(山鷄) 등 학생 몇이 나중에 사회로 진출하고, 흑사회(암흑가)까지 연계되면서 펼쳐지는 폭력활극이 현지에서는 꽤나 인기를 모았다. 물론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정이건, 진소춘이라는 불세출의 스타를 키우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고혹자>시리즈가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비디오로 몇 편 출시되기는 하였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는 정이건이나 서기 팬들만 바라보고 개봉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비디오 출시에 앞서 잠깐 인사드리는 영화이지만, 홍콩-중국어권 영화팬에게는 꽤나 흥미진진한 영화이기는 하다. 그것은 오랜만에 홍콩-대만의 커넥션을 볼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홍콩-대만-일본의 암흑가 조직이 나온다. 삼련방(三聯幇) 같은 중국 전통의 흑사회나 야마다(山田祖)같은 일본야쿠자, 홍흥(洪興)파 같은 것은 유명 조직이다. 대만을 배경으로 할 때 나오는 인물 중 그런대로 한국인이 알만한 배우는 진송용(陳松勇)과 김사걸(金士傑)이다. (기억을 환기시키자면 진송용은 <비정성시>에서 양조위 아버지로 나왔던 배우이며 눈썰미 있는 영화팬이라면 <로빙화>도 생각해낼 것이다. 김사걸은 우리나라에 <음식남녀2>라는 터무니없는 제목으로 개봉된 <四個廚師一圍菜>라는 영화에도 나왔던 국내에 알려진 얼마 안되는 대만출신 배우중의 한명이다.) 물론 일본측 배우로는 언제부턴가 홍콩영화에서 일본 악당역이라면 도맡아서 하는 치바 신이치(千葉眞一)라는 배우가 나온다. 물론 홍콩 배우로는 정이건, 진소춘을 비롯하여 <진심화>에서 풋풋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하윤동 등이 나온다. 좀더 중국어권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가수량(柯受良)이나 장료양(張耀揚) 얼굴도 알아볼 것이다. 

영화는 상당히 스케일이 큰 각본을 다룬다. 홍콩-대만-일본의 대표적 흑사회 조직이 강철같은 대오를 형성하자고 약속하지만 배반자가 생겨나고, 하나씩 제거하면서 점점 세력을 확충시켜나간다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야기가 나뉘어 진행된다. 두 조직의 정략적 결혼식이 <대부>의 오프닝 씬을 터무니없이 따라하는 것 같지만 그런대로 갈등구조 혹은 이야기의 국제성을 환기시킨다. 물론 규모가 클 것 같았던 이 영화는 뒷수습을 고사하고, 인물 설정부터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있었던 부분은 대만의 총통 취임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아시다시피 대만 정국은 지난 50년간의 국민당 통치시대를 끝내고, 만년 야당이었던 민진당의 천 수이삐엔(陳水扁)이 대만의 새로운 총통으로 당선되었다. 천 수이삐엔은 대만의 수도 타이뻬이 직선시장으로 재임할때 강력한 개혁드라이브를 펼쳤었다. 당시 타이뻬이에 즐비했던 터키탕, 도박장, 사창가... 등등은 천수이삐엔 시장의 밀어붙이기식 개혁으로 다 쫓겨나다시피 하였다. 그런 그가 대만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뽑혔으니 사실 대만의 흑사회는 불안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흑사회 이야기를 다루면서 대만의 세태를 꼬집기도 한다. 지난 50년간 국민당 세력과 암흑가 세력은 부인못할 정도의 커넥션을 맺어왔다. 영화에서는 천수이삐엔 정부의 연락책이 대만의 한 암흑가 조직 보스에게 "당신이 암흑가를 정비하는 조건으로 당신만을 살려놓겠다. 나머지는 모두 처단하다" 뭐 이런 식의 언질을 준다. 물론 나중에는 "우리 천수이삐엔의 새 정권은 암흑가의 어떠한 조직과도 연관이 없으면 이들을 철저히 응징하고 뿌리뽑을 것이다" 이렇게 선포한다.

관심을 갖고 보자면 이 영화는 상당히 재미있을 법도 하지만, 만들어진 영화는 결코 그러하질 못하다. 정이건의 눈빛 연기조차 볼 틈도 없이 미미한 역할에 만족해야 했고, 진소춘의 장난기 어린 연기는 여전하고, 그것보다 더 변함 없는 것은 서기의 대책없는 어리광 연기이다. 차라리 진송용이나 치바신이치의 묵직한 연기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지기도 한다.

원래 홍콩영화가 그렇다고 실망하지 말고, 정권교체기에 적절한 영화를 기획하는 왕정이나 문준, 유위강에게 경의를 표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이 세 사람은 'BOB-최가박당'이라는 영화사를 만들어 각자 제작-각본-감독이라는 철저한 제작라인을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진심화>의 그 순진한 하윤동이 이 영화에서 그렇게 나쁜 놈 역할을 한 것도 의외지만, 그렇게 형편없는 연기를 한 것은 정말 의외이다.

<고혹자>시리즈의 영문 제목은 < Young and Dangerous>이다. 

 古惑子之勝者爲王 (2000)
감독: 유위강
출연: 정이건,서기,진소춘,하윤동,여자,오군여,장요양,만자량,진송용,윤양명,가수량,금사걸,안아
한국개봉: 200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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